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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다음 이야기 1 - 제2의 전국 시대,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 황제들 ㅣ 삼국지 다음 이야기
신동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평점 :
소설 <삼국지연의>의 애독자로서 결말을 항상 안타깝게 느꼈다. 의로운 촉한이 패자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반삼국지>를 읽기도 하였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궁금하였다. 시중에 이 궁금증을 달래줄 마땅한 대중 역사류의 책은 마땅치 않았다. 이후 시대는 역사서에서 흔히 5호 16국 시대니 아니면 위진남북조라고 일컫는 중국사에서 별로 인기 없는 시기였다. 훗날 수나라와 당나라로 이어지기는 과도기 정도로 여겨지는 주목 받지 못하는 때로서.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동양고전 연구자이자 번역가로서 비교적 친숙한 인물이다. 이런 그가 갑자기 대중 역사서를 들고나왔다. 이 책에서 당연히 학문적 깊이와 새로운 학설 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망각의 늪에 빠져있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빛을 비추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독자의 시선과 구미에 맞도록 일목요연하면서도 흥미롭게 기술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물론 읽다 보면 정말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의 홍수와 각종 사건에 허우적대는 나 자신을 지켜보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이를 저자에게 책임 지울 수 없다. 10권 분량으로 풀어쓰더라도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위진남북조 시대가 춘추전국시대만큼이나 격변기이자 전환의 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혼란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본격적인 역사 서술에 앞서 저자는 제1장에서 새삼스레 시대구분을 거론하고 있다. 요컨대 5호 16국과 위진남북조, 혹은 양진남북조라는 시대 구분명은 역사의 본질을 오도할 의도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신 저자는 서진남북조 명칭을 내세운다. 삼국 시대를 잇고 있으므로 역사 전개로 볼 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하면서.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용어였건만 시대구분을 통해 당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준이 바뀔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진남북조는 서진남북조로 바꾸는 게 타당하다. 사실 그래야만, 위, 촉, 오 등 삼국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다툰 삼국 시대와 그 이후의 서진남북조 시기가 확연히 구별될 수 있다. (P.20)
시대구분의 용어와 관계없이 이 시대는 일대 혼란기다. 후한 멸망 이후 당나라가 들어서기까지 어떤 왕조도 보통 몇십 년, 잘해야 백여 년을 겨우 버텨냈을 뿐이다. 조조가 기틀을 다진 위나라는 자손들이 사마씨에게 찬탈당했으니 역사는 반복됨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일국의 개창자 또는 중흥자는 당대의 영웅이다. 조조, 유연, 석륵, 석민[염민], 부견이 그러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악역을 도맡아 비난받고 있는 조조에 대한 재평가 의론이 분분함을 기억하자. 소설과 역사는 분명 다르다. 하물며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 성한(成漢)조차도 나라를 세울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이 있었기에 개국할 수 있었음은 분명한 이치다.
문제는 영웅의 후손들이 항상 선조에 걸맞은 인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명군 뒤에 암군(暗君)이 뒤따르는 게 세상 이치다. 보통 정도만 해줘도 수성에 문제가 없을 터인데 군주 자리에 있는 자의 수준이 밑바닥에 있다면 나라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지 못하게 된다. 서진의 사마염 자신은 재위 동안 호색과 방종으로 점철하였지만, 최소한의 임금 노릇은 하였다.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자타공인 우둔한 혜제에게 물려주는 순간 서진은 이미 멸망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평한다.
진혜제는 비록 암우하기는 했으나 포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광대한 진 제국을 이런 어리석은 군주 아래 다스리도록 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진무제 사마염은 멀리 보는 식견이 없었다. (P.142)
황권을 가황후가 좌지우지하면서, 왕족들과 다툼이 생겼으며 이것이 팔왕의 난으로 이어져 결국 서진은 외침이 아닌 자체 모순으로 붕괴하였다. 오랑캐의 침입은 쐐기를 박은 정도에 불과하다. 모든 조명(詔命)은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당당하게 설파하는 가황후를 통해 황권 유린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중심의 한족 주변에는 항상 유목민족이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다. 통치가 잘 이루어질 때면 평화가 이루어지지만, 혼란기에는 국경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쉽게 중원을 욕심내지 못하며 한번 휩쓸었다가 다시 원래의 거주지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유목민족이 비로소 중원에 터전을 잡고 중국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이 된 것이 서진남북조 시대다. 서진은 혼란에 빠져 제풀에 무너져 사회질서를 잡을 주도 세력이 사라졌으며, 동진은 회수와 장강으로 멀리 내려가 자기네 체제 안정과 유지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이때 흉노족, 갈족, 강족, 저족, 선비족 등은 중원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품게 되어 제각기 나라를 창건했기에 ‘5호 16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정보와 통신이 제한된 옛날에 서진이 혼란하다고 해서 유목민족들이 쉽사리 들어올 생각을 품지 못한다. 그래도 어떤 계기가 있어야 그들이 중원에 들어올 수 있다. 이것은 언제나 야만족의 힘을 빌려 세력 다툼에 이용하고자 하는 한족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팔왕의 난이 바로 이러한 계기가 되었다.
도독유주제군사 왕준은 산에 앉아 호랑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곧 변경 지역의 연합 세력인 선비족과 오환족의 기병들을 이끌고 동해왕 사마월의 동생인 동영공 사마등과 합세한 뒤 업성을 향해 진공했다. (P.135)
한족의 입장에서 볼 때 유목민족의 약진을 일대 재앙이자 흑역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당시 유목민족이 침공했을 때 한족을 대상으로 무지막지한 살육과 탄압을 자행하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석민의 무시무시한 살호령(殺胡令)의 배경이 이의 반작용이라고 해도 과언을 아니다. 기실 한족과 유목민족을 상대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인권 개념이 희박한 당대로서는 피점령민들은 노예이자 착취의 대상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었다.
중국의 역사를 동아시아의 역사가 아닌 한족의 중국사로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의 역사공정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 관건은 북방 민족이 중국사의 전면에 등장해 주도권을 장악한 위진남북조 시대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있다. 필자가 본서를 펴낸 이유다. (P.31)
중국 역사를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서진남북조 시대는 새롭게 다가온다.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지리적 무대에서 한족을 포함한 여러 민족이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다투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후 중국 역사에서 수나라, 원나라, 청나라는 유목민족이 전 중국을 장악했던 시기였고, 이의 전초가 서진남북조 시대다. 또한 결과적으로 좋건 싫건 간에 한족과 유목민족은 중원에서 한데 어울려 살게 되었다. 상이한 민족 집단 간에 교류가 발생하고 이질적인 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거칠게 말해서 유목민족의 침입으로 중국 문화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문화 발전의 토대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호족의 문화는 한족 문화에 침전돼 있던 낡은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 내는 역할을 했다. 이는 훗날 수.당이 천하를 통일한 후 풍부한 사상적 기초를 닦는 근본 배경이 되었다. (P.143)
분열과 통일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난세의 영웅들은 진시황과 한 고조처럼 제각기 천하통일의 군주를 꿈꾼다. 전진(前秦)의 부견에 유달리 저자가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유는 그가 대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인물인 동시에 불가사의할 정도로 가장 어처구니없이 몰락한 영웅이어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그의 참모 왕맹이 더 살았다면 중국 역사의 미래는 달라졌을 것이다. 비수 전투의 참담한 결과는 외화내빈의 전진의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부견의 꿈은 웅대하였지만, 다민족국가를 이루고 유지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전진의 사례를 통해 주축 민족의 존재가 필요함을 더욱 깨닫게 한다.
야만적이지만 역동적인 북조의 왕조들과 비교해 남조의 동진(東晉)은 정적이고 유약함을 적나라하게 노정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유목민족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지 않았다면 동진은 일찌감치 몰락하고 말았을 정도로 취약한 국가 체제를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군주, 임금과 귀족 간 권력다툼, 가문의 이익과 번영을 중시하는 거대귀족 등이 어우러진 동진에서 북벌에 나선 유곤과 조적의 존재가 돋보이고, 실패로 끝났지만 환온의 수차에 걸친 마지막 시도는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왕돈이나 환온과 같은 인물이 차라리 옥좌에 올랐다면 그토록 형편없이 스스로 몰락하는 국가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왕돈 및 환온의 세력이 몰락하면서 동진의 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환현의 찬위 역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탓에 실패로 끝났으니 유유(劉裕)와 같은 호걸을 수하로 거두고자 하는 과욕을 부렸다. 맹수를 다스리려면 스스로 그만한 역량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환현이나 석륵의 일족을 도륙한 석호를 볼 때 토사구팽의 역설적 정당성을 생각하게 한다. 상대적으로 안정과 평화 속에 전열을 정비하여 통일을 추진할 수 있었던 동진, 끊임없는 내홍으로 자기 역량을 갉아 먹고 마침내 자멸하고 말았으니 100년여를 버틴 것만 해도 차라리 장한 일이라고 해야겠다.
정사(正史)는 승자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남쪽으로 쫓겨난 동진에서 바라보았을 때 북조의 소위 오랑캐 왕조들에 대한 평이 좋을 리가 없다. 한족이 기록한 역사를 맹종하게 되면 중국 역사의 이해는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삼국 시대 이후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점이 커다란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