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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전기소설의 여인상
장기근 지음 / 명문당 / 2004년 6월
평점 :
중국신화와 중국소설과의 관련성을 다룬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지괴소설이나 전기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여태까지는 관심도 없었고 더욱이 그런 장르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이 책 <당대 전기소설의 여인상>은 표제에 현혹되기 쉬운데 솔직히 말해서 내용과 표제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 이 책은 당나라 전기소설의 대표작 18편을 편역한 작품집이다. 전기소설에 입문하기 적합한 책이라고 하겠는데 한가지 변수가 있다. 즉 원본 번역이 아니라 편역이라는 점이다. 읽어나갈수록 옮긴이의 주관과 윤색이 많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때로는 작품 내용조차도 임의로 짜깁기할 정도이므로 원전의 충실한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추천하기 어렵다. 윤색의 정도가 가장 심한 게 <장한가전>이며, <무쌍전>의 결말은 원전과 전혀 다르기에 거의 각색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제1부 애절한 사랑 이야기 : 앵앵전, 곽소옥전, 이와전, 양창전, 장한가전
여성의 단심을 배반하는 무정한 남성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앵앵전>과 <곽소옥전>이다. 장생과 앵앵이 결합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장생은 스스로 이를 피한다. 그의 변명은 구차하지만 앵앵은 담담하며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후에 장생이 만나보고자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만나서 무엇하겠는가? 그나마 여기서는 비극적 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은 반면 곽소옥과 이익의 사연은 정염의 불꽃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곽소옥이 이익에게 바라는 바는 크지 않다. 출세하면 첩실로라도 받아들여 달라는 것, 이익이 벼슬길에 올랐을 때 죄인처럼 곽소옥을 피해 다니는 몰골은 구질구질하기 이를 데 없다. 마지막 상면 대목에서 곽소옥의 부르짖음은 너무나 처절하다. 한 여인의 순정을 짓밟아 놓고 영혼마저 말라버리게 한 죄악에 대가가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아무리 소첩이 박복하고 운수가 기구한들 남정네가 그렇듯이 박정하고 의리 없이 무고한 계집을 내팽개칠 수가 있습니까? 기진맥진한 소첩 이제는 욕할 기력조차 없으며 또 더 이상 생명을 지탱할 여력도 없습니다. 오직 남은 길은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갈 뿐이옵니다. (P.67)
양씨와 총관의 신분과 지위를 초월한 사랑이 불행한 결말로 이어짐은 안타깝다.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그저 운명일 뿐. 양귀비와 당 현종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그네들이 평범한 촌민이라면 거리낄 것 없이 행복한 사랑의 삶을 살아갔을 텐데 그러기엔 너무나 지위와 신분이 높았다. 후대인은 인정에 약한 듯싶다. 나라를 망친 임금과 여인임에도 그네들의 사랑을 애절하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게다가 양귀비는 착한 신선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와전>이 내용과 구성의 조화 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여주인공은 극과 극의 성격을 작중에서 보여주는데 공자를 파멸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는 악역을 맡다가 돌연 그를 구원하고 입신출세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내조하는 인물로 변신한다. 이와의 눈부신 변신과 공자의 생사를 넘나드는 삶, 형양공의 비정과 온정을 넘나드는 부정이 매우 잘 짜여 있다.
제2부 인간과 신괴와의 교감 : 고경기, 백원전, 임씨전, 유의전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2부와 제3부가 전기소설의 본령에 어울리는 기이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옛이야기에서 자주 보이는 소재다. 아무나 그런 게 아니라 오래 묵어 신통력을 지닌 동물이 그러한데, <고경기>의 너구리, <임씨전>의 여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 작품은 모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전자는 인간 세상의 추악함, 후자는 박정하고 표리부동한 여성들의 행태를 비난한다. 인간사회를 동경하던 너구리는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는 인간세상이 화려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와서 직접 겪어보니 참으로 겁나고 추악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을 스스로 뉘우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P.131)
<고경기>에서 재앙의 원인을 악귀 망령들의 만행으로 이해하는 대목에서 시대적 관념을 떠올릴 수 있다. 한편 구양순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한 창작이라고 평가받는 <백원전>은 정말로 비판인지 아니면 그의 위대함을 기이한 출생으로 미화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자신의 친부가 원숭이라면 응당 기분 나쁘겠지만, 고대의 제왕과 영웅들은 모두 기이한 출생을 하였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정호 용왕의 친동생이 전당강을 다스리는 전당군인데 <유의전>에서 매우 용맹한 장군으로 기술되고 있다. 전당강 물결의 사나움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니 흥미롭다. 용녀를 위기에서 구하였음에도 그녀와의 결혼을 올바르지 않다고 거부한 유의의 의연함과 지조는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으니 제2부 수록작 중 유일하게 긍정적 결말이다.
제3부 환상과 영혼의 세계 : 두자춘전, 침중기, 남가태수전, 이혼기
현실은 행복보다 불행이 많다. 즐거운 일보다 고달픈 경우가 더 많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꿈과 상상의 세계를 동경한다. 만사가 내가 원하고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가닥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침중기>와 <남가태수전>이 그러하다. 각각 ‘노생지몽’과 ‘남가일몽’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처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다. 인생의 부귀영화는 봄날의 덧없는 한줄기 꿈에 불과하다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속으로는 그 꿈이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못내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모두가 꿈이었구나.”
도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그렇듯이 덧없는 것이니라.” (222)
<두자춘전>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짙게 드러낸 작품이다. 불로불사의 선약을 완성하기 위해 완전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것을 요구하는 도사. 이것에 성공하면 두자춘은 신선이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적 욕망과 본성을 포기할 수 있다면. 자식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실패하고 만 선약 완성. 선약의 실패가 그에게는 행일까 불행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한다면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신선이 된다고 해서 무슨 행복이 있을지 회의적이다.
한 사람의 혼을 둘로 갈라지게 할 수 있다면 지극한 사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부모를 떠난 천낭 아씨와, 병들어 누워 있는 천낭 아씨. 두 사람은 수년간 독자적으로 살아왔지만 결국은 한 사람이었기에 하나가 됨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별개의 삶이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오직 현실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의 힘이므로.
제4부 여협객 : 규염객전, 무쌍전, 유씨전, 곤륜노, 홍선전
일단 제4부가 왜 ‘여협객’인지 모르겠다. 수록작 중 여협객이 나오는 작품은 <홍선전> 하나뿐이다. 당대의 권세가에 당당하게 도전하는 이정을 따르는 홍불의 대담함을 인정하지만 여협객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무쌍을 구해내는 이는 협객 고압아이고, 유씨를 구출했던 것은 군관 허준이다. 안타깝게도 왕선객과 한익은 연인을 구해낼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주인을 위해 홍초를 빼내온 영웅적 역할도 최생이 아니라 그의 검둥이 노복 곤륜노였다.
<규염객전>에서 주목할 점은 협객이 아니라 당 태종이 되는 이세민을 향한 예찬이다. 새로운 세상을 수립할 야망을 품은 규염객을 좌절시키는 이는 천명을 받은 이세민이다. 그가 있는 곳에는 왕기가 서리고 천명을 받았음을 규염객과 그의 스승 도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천명을 받은 이에 대항할 수 없기에 규염객은 모든 것을 이정에게 건네주고 남만으로 떠난다. 시대적 성격을 반영한 동시에 후대인들의 당 태종에 대한 존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의외의 인물에게서 예상치 못한 뛰어난 능력을 발견하는 재미는 흥미진진하다. 곤륜노가 실은 누구도 상대 못 할 무예의 고수였다는 점은, 그러한 능력자가 왜 비천한 노비 생활을 살고 있는지 합리적 설명으로는 불가능하다. 곤륜노의 신출귀몰한 무술 솜씨와 아울러 당대에 남만의 검둥이 노복을 부리는 게 유행이었다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홍선전>의 주인공인 홍선이 기생 신분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공중비행술과 은신술 같은 비범한 무술을 지녔음에도 천한 가기(家妓)의 삶을 감내한다. 두 세력 간의 전면전을 절묘한 솜씨로 막아낸 후 홀연히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그녀를 작가는 신선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전기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다. 저자는 서언에서 전기소설의 개론을 통해 정의와 특성, 배경 및 분류 등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결언에서는 수록작에 대한 작품 해설을 통해 역시 각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저자의 편역 의도를 밝히고 있다. 전기소설이 기이하고 비현실적 소재를 사용한 것이 단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다층성과 다면성,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모순과 악덕을 고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전기소설의 주인공은 왕후장상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생, 노비, 상두꾼 같은 하층계급뿐만 아니라 동물도 당당한 한몫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자못 근대적이라고 할 만하다.
당대의 전기소설을 일목요연하게 훑어보려던 의도는 저자의 과도한 윤색과 각색으로 온전하지 못하였다. 보다 원전에 가까운 내용을 알기 위해 부득불 다른 책을 추가로 집어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