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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평점 :
제1권이 창세부터 은나라까지를 다루었다면, 제2권은 주나라와 진나라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본격적인 역사 시대에 해당하기에 수록한 내용도 신화가 아닌 전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기에 관련한 각종 사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통상적인 의미에서 신은 더 이상 존재할 명분과 근거를 상실하여서다.
왜 중국에서는 신화전설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묶어 같은 범주에 두는가 등의 문제들은 중국만의 <개별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대답이 가능한 것들이다. 서구의 보편적 틀에 맞추어 <이것이 신화이고 이것은 전설이다>라고 일도양단식으로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P.368)
제2권에 실린 전설과 고사들은 비교적 친숙하다. <사기 열전>, <열국지>, <초한지> 등을 비롯한 여러 고전을 통해 대강의 인물과 사건 등을 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화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아우라를 기대하지 않고, 공식적인 역사서의 뒤안길을 보충하는 야사 또는 야담으로 간주하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주 목왕과 서왕모의 만남 정도를 제외하면 포사를 웃게 하려다 생긴 서주(西周)의 멸망, 공자와 노자, 묵자에 얽힌 일화, 오자서와 토사구팽, 진시황 등이 이 책에서 다루는 굵직한 사건과 인물이다.
공자 자신이 <괴이한 것을 언급한> 적도 많은데, 여러 가지 기록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서 체면치레로 그랬던 것일 뿐, 사실은 그리 믿을 만한 주장이 못 되는 것 같다. (P.81)
무엇보다도 공자와 그의 제자들 이야기가 이채롭다. 소위 괴력난신과는 거리를 멀리하였던 공자에 얽힌 괴력난신의 고사들은 역설적 쾌감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고사들이 모두 실제라는 근거는 없다. 공자를 존경하여 권위를 더해주거나 아니면 공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말싸움에서 공자를 이긴 어린아이 향탁 전설만 보더라도 말싸움의 소재와 공자의 대응이 극히 유치하다. 게다가 공자는 유세술의 달인으로 보기 어렵다. 굶주린 처지에서 거대한 물고기 요괴를 쓰러뜨린 후 서둘러 요리하기 시작하는 공자 제자들의 모습도 더없이 인간적이다.
묵자에 관한 전설에서는 사상가가 아닌 기술자 묵자와 못지않은 공수반 즉, 노반의 뛰어난 기술 솜씨가 관심을 끈다. 오늘날의 로봇과 드론 종류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었으니 후대 기술자들에게는 신격화된 존재였고, 그에 관한 민간전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새로운 인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와신상담, 토사구팽, 오월동주 등의 고사성어를 양산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결, 그리고 오자서의 원한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초나라를 탈출하여 오나라로 도주하는 오자서의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못하였다. 그를 돕던 노인과 여인이 그의 의심으로 인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딱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오자서의 최후가 비극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깨닫는다. 더구나 오왕에게 충성하기 위해 자신의 일신과 가족을 희생한 후에 흘리는 요리의 눈물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요리가 몸을 일으켰는데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나는 내가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소. [......] 이런 세 가지 죄악을 범했는데 어찌 계속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수 있겠소.」 (P.214-215)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을 바친 미간척과 <삼왕묘>의 처절함, 가난한 시절 헤어졌다가 수십 년 만에 해후한 진나라의 늙은 승상 백리해 부부의 눈물범벅, 노기등등하게 진시황을 꾸짖는 맹강녀의 분노. 역사서에 빠져 있거나 들어 있다고 해도 단지 한두 줄에 불과한 사연이 전설과 고사에서는 구구절절하게 이어진다. 전설이 시간의 시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사 사건을 그대로 전하려면 역사서의 기록으로 족하다. 그것이 민간 전설이 되어 오랜 세월 전승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 전설들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P.370)
역사상의 진시황은 공과가 뒤섞인 인물이다. 민간전설에서도 만리장성과 아방궁, 불사약, 맹강녀처럼 탐욕, 잔인,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고사를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제아무리 폭군으로 치부되더라도 그는 분열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그를 하걸, 은주, 주유 같은 부류와 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영웅적 제왕이고 걸물이었기에 그의 신성(神性)을 인정하는 전설도 제법 볼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중국신화전설>을 읽다 보면 너무나 매끄럽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중국의 신화와 전설에 감탄하게 된다. 창세신화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신과 괴물, 영웅과 신선들이 눈앞에서 꿈틀거릴 정도로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 원래 그러한 게 아니라 저자 위앤커가 다듬은 결과라는 사실을 작품 해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수한 단편들을 한 줄로 꿰는 과정은 매우 힘겨웠을뿐더러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분명히 인위와 주관, 오류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한계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래 단편적인 중국의 신화 자료들을 모아 <체계적 신화>로 정리한 그[위앤커]의 작업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서사 구조를 지닌 이야기로 만들어가다가 보니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이야기들이 인위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고, 부분적인 신화 인물에 관한 해석에 있어 저자의 주관이 개입된 부분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P.372)
그럼에도 저자의 작업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부럽기도 하다. 정작 우리네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몇 개의 짤막한 건국신화를 제외하면 이 책에 비견할 정도로 신화와 전설 등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토막 난 단편으로 방치할 게 아니라 읽어서 민족의식을 앙양할 수준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언제쯤 이루어질지 막막한 심정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