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거리의 아이들 비룡소 클래식 17
몰나르 페렌츠 지음, 한경민 옮김 / 비룡소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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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헝가리 청소년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제재, 정신 그리고 내용 전개 등에 있어 다소 의아한 점이 있다. 과연 이것이 청소년 문학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인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라고나 할까.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오늘 대장을 뽑기로 했다. 우리는 대장을 뽑을 것이다. 대장이 명령하며 모두가 복종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대장을 뽑는다. [......]” (P.44)

 

팔 거리의 아이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보커의 말이다. 강력한 대장, 절대적 복종. 군국주의와 전체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청소년 무리 사이에서 기대하고 지지받을 만한 주장과 표현이 아니다.

 

모두들 이 작은 땅을 정말로 사랑하는 표정이었다. 만약 필요하다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도 되어 있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마치 조국을 지키자.” 하고 외치듯이 그들은 공터를 지키자.” 하고 외쳤다. 모두의 눈이 반짝였고 가슴은 벅찼다. (P.49)

 

아이들은 공터를 조국과 동일시한다. 공터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조국을 지키려는 애국심과 일맥상통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공터(“거칠고 울퉁불퉁한 황무지, 집 두 채 사이의 이 작은 땅”(P.126))가 갖는 의미가 매우 남다르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터를 지키고자 다른 패거리와 전쟁을 불사하고, 거창하게 선언문마저 낭독한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배신자로 간주하며, 염탐과 매수 등의 전술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니 과잉 애국주의의 발로로 여겨질 따름이다

 

지금 우리 모두는 일어나야만 한다! / 우리 땅에 커다란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용감해지지 않는다면 / 땅을 전부 빼앗길 것이다! / 우리 땅이 사라질 수도 있다! (P.148-149)

 

이 작품이 발표된 해인 1906년 당시, 헝가리는 독립 국가가 아니었다. 오랜 독립투쟁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와 이중제국을 형성한 불안정한 정치체제 속에서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속성이 공존하며 갈등하는 양상이 여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공터를 빼앗으려고 하는 붉은색 셔츠 패거리는 작품 초반에 거의 절대 악으로 여겨진다. 부당하게 남의 땅을 빼앗으려고 하는 제국주의 세력처럼. 네메체크의 구슬을 뺏는 파스토르 아이들을 통해 이런 면모가 더욱 부각된다. 보커에 비해 거칠고 무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아츠 페리처럼.

 

작가는 파스토르 아이들에게도 벌을 가하며, 물에 빠져 감기에 걸린 네메체크의 안부를 묻는 아츠 페리를 부각함으로써 그들 붉은색 셔츠 패거리가 사악하고 무법적인 존재가 아니며 똑같이 인간적인 청소년들임을 보여준다. 그들 역시 자신만의 공터가 필요했을 뿐이다.


두 패거리의 리더인 보커와 아츠 페리가 외형상 두드러지지만 실제적으로 작품의 핵심 인물인 네메체크는 서서히 비중과 역할을 더해간다. 그는 팔 거리의 아이 중에서 유일하게 사병으로 괄시받고, 정당한 항의조차도 외면받으며 쥐새끼’(P.46) 취급을 받는 처지다. 조그마한 체구에 겁도 많은 그가 무리에서 영웅이 된 것은 오로지 공터에 대한 사랑에서다.

 

더 이상 공터를 볼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는 어린아이였다. 모든 것을 내버릴 수 있지만 공터만은, 공터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공터는 절대 버릴 수가 없었다. (P.278)

 

세 번이나 물에 빠지고 열병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몰래 빠져나와 적의 대장을 쓰러뜨림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보통의 청소년 문학과 달리 쓰러진 네메체크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아이들은 목격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낯선 경험이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친구가 죽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처음 당해 보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일 앞에서 너무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P.296-297)

 

그들은 당혹해하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온다. 산 자는 살아야 하는 당장 눈앞의 현실을 자연스레 터득한다. 네메체크의 죽음에도 학교 수업은 계속되므로 그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그 정도면 차라리 낫다. 보커는 더한 충격을 받게 된다. 친구의 목숨을 바쳐 지켜낸 땅의 배신, 전쟁의 무의미성을. 그리고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누구나 거칠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다.

 

그의 어린 마음에 처음으로 어떤 느낌이 어른거렸다. 인생은 때로는 아주 어렵고, 때로는 아주 행복한 것이며, 모든 사람은 인생을 이겨내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P.306)

 

아이들의 단순성과 순수성과 비교할 때 어른들은 오히려 몰이해와 몰인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의 정직성을 맹신하고자 다른 아이들을 의심하고 비웃는 게렙의 아버지, 죽어가는 아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재봉사에게 어쨌든 급하게 옷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체트네키 씨, 공터가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던 토트 사람.

 

시시해 보이는 본드 동아리가 작중에서 왜 그렇게 큰 비중을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와, 공터와 두 패거리의 대립에 굳이 그래야만 했는지 갸우뚱하는 독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공터 전쟁과 게렙의 배신, 네메체크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친구와의 우정, 삶과 죽음의 공존이 갖는 의미를 직접 겪고 깨닫게 함으로써 성장과 인생이 가지는 굴곡을 드러낸다. 물론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의 틀을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정묘하게 청소년 문학의 틀을 유지하기에 여전히 헝가리에서 평가받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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