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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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그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 우선 평등해야 한다. 과학은 교양이다. (P.14)

 

인문학에 관심을 지닌 이론물리학자가 쓴 교양 과학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문제의식은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의 바로 아래 문장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속으로 뜨끔하다. 나조차도 제법 독서를 좋아함에도 감히 과학책을 읽어보겠다는 발칙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이 책도 순전히 나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읽어보도록 권유하기 위한 학교 추천도서의 하나라서 펼치게 된 것임을 밝힌다.

 

우리는 왜 교양으로서 과학에 등한시하는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일 것이다. 소위 인문학은 첫째, 진입장벽이 낮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알면 극단적인 사례를 빼면 대부분 따라갈 수 있다. 둘째, 우리 주변의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다룬다. , 가족, 사회, 국가, 세계와 같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이해와 관계설정이 필수 불가결한 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관심도와 집중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타인과 대화에 소외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확히 반대 사유가 과학에 적용된다. 첫째, 진입장벽이 높다. 수학적 지식을 기본으로 한다. 자연과 현상에 흥미를 갖고 다가서다가도 수학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많은 학생에게 수학은 공포의 대상이며, 학업을 마친 성인들에게 수학은 학창 시절의 추억일 뿐이다. 둘째, 과학적 지식은 잘 알지 못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물론이려니와 저자가 전공하는 양자역학은 다른 세상 얘기다. 일상적 화제에 과학 관련 사안이 오르내리는 때는 사회적 이슈와 연관된 아주 드문 경우뿐이다.

 

그럼에도 과학 없이 우리가 살 수 없다는 점을 모두가 인정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휴대폰, 컴퓨터, TV, 전기, 가전제품은 물론 의류, 생활용품 등은 모두 과학기술의 혜택이다. 날씨를 예보하고 지진과 태풍을 예측하며,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행위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해와 연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근년 들어 전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리는 암울한 미래는 과학기술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과학기술이 비관적 미래를 가져올까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제대로 과학기술을 해야 한다. (P.59)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의 편익을 누리면서도 미래에 한 가닥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 주제로 한 무수한 SF소설과 SF영화도 있다. 과학의 발전 끝에는 어떠한 미래가 있을까. 유토피아 아니면 디스토피아?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오는 의구심에 저자는 돌직구를 날린다.

 

저자의 이 책이 여타 과학자들의 것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순수한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과학적 사고와 과학 정신에 충실하지 못하다. 권위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P.127) 과학자로서는 사실을 은폐하고 사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방해하고 죄악시하는 불합리한 권위와 여론, 권력을 인정하지 못하리라. 세월호 참사, 국정원 부정선거 의혹, 부조리한 총장선거 등과 함께 국정 교과서의 폐해를 토로하는 저자의 심정이 절절하다.

 

과학에서 올바른 답은 많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으로부터 얻어진다. [......] 만약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정부가 결정하는 거라면, 우리는 지금도 천동설을 믿고 있을지 모른다. 노벨상은 이렇게 우리에게서 더 멀어져간다. (P.146)

 

저자가 언뜻 본령을 넘어서는 영역에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쏟는 이유는 그가 우주에 고립된 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이전에 그는 인간이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과학 지상주의자가 되고 만다. 저자는 과학과 과학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변하지만 이의 해악도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자이기에 잘못될 가능성에 더욱 경각심을 지닐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경고한다.

 

과학적 지식 역시 독점되면 해악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과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민사회는 그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P.166)

 

교양 과학서이므로 당연히 과학 지식을 얻는 즐거움도 누리게 되는데, 특히 저자의 전공인 양자역학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고전물리학조차 낯선 빈약한 독자에게 최첨단 물리학 이론은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저자는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할 것인가에 많은 고민을 한 자취가 역력하다. 어조를 가볍고 편하게 사용한다든지, 중첩 상황은 짜장면 우주와 짜장 우주로 비유한다든지, 확률론적 해석을 동전 던지기로 예시하는 등이다. 이 책에서 양자역학의 깊숙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지만, 양자역학이 발견한 낯설고도 당혹스러운 진실의 세계에 독자를 보다 가까이 이끄는 유인으로서는 충분하다. 카오스계와 프랙털에 대한 소개, 자유의지의 실재에 관한 뇌신경과학자의 관점 등도 흥미로운 주제다.

 

과학이라는 두 글자가 세상만사의 만능 치트키처럼 인식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확대되고 중요성이 커질수록 인간 자체는 점점 왜소해진다. 과학의 시대에 인간과 인문학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외면하지 않고 교양으로서 소양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자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그 점에서 이와 같은 교양 과학서의 지속적 대중화 노력의 가치가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그 자체로 상상이기에 우리의 상상으로 지켜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비과학적 대상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이 없다면 인간은 불행해질 거다. (P.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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