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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은 태양
E. R. 브레이스 웨이트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내 독서 위시리스트에 무슨 까닭으로 포함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 흑인 교사가 무너져가는 교육 현장을 힘겹게 재건한다는 내용이 관심을 끌었을 수도 있겠다. 직업적으로, 개인적으로도 학교 현장을 내게 남의 일은 아니므로.
영화를 통해 이 작품을 접한 사람(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은 이 작품의 한쪽 측면만 보았을 뿐이다. 교사 브레이스웨이트가 변두리에 위치한 열악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작품의 중요한 내용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브레이스웨이트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는 힘겨운 여정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자신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얼마나 고통을 겪고 괴로워하는지를 생생하게 보게 된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하던 것이 피부색의 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가능하고 불인정 받는 당대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장면들을. 이 작품이 출간된 게 1959년인데,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도 차별이 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짙게 반영되어 있어 주인공이자 화자는 곧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영국 식민지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활약했으며, 전후에는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그가 고등학교 교사가 된 것은 매우 우연한 기회였다. 당초 그의 계획대로 전문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면 전혀 꿈도 꾸지 않았으리라. 이 모든 게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하였다.
나는 흑인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면접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야말로, 지금까지의 내 굳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리고 인종이나 종교와는 무관하게 내 자격에 걸맞는 직업을 선택해서 일할 자유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그럴듯한 이야기도 이제는 헛소리 같이 여겨졌다. (P.63)
피부색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그가 일자리를 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하숙집을 찾고, 신문의 흥미로운 취재 대상이 되며, 레스토랑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끝내는 그가 일생의 반려자를 구하는 데도 중대한 장애 요인이 된다. 오늘날에도 간간이 유럽과 미국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뉴스로 부각될 정도이니 당대로서는 차별이 보편화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역지사지라고, 나 자신이 부당한 차별 대상이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 모멸감과 좌절, 그리고 분노 등등. 끝내는 증오만이 남았을 것이다. 여기 화자도 그러하다. 다만 그는 더 현명하여 이를 자기 극복의 계기로 삼았고, 학생들에게 차별이 옳지 않음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실즈의 모친상에 조문을 꺼리는 학생들의 태도에 좌절을 느끼는 그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수 개월간의 교육 덕택에 아이들이 편견을 벗어던졌을 거로 생각했던 자신의 믿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므로.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가르침도, 토론도, 모범도, 인내도, 걱정조차도, 그 모두가 거짓이었다. 이 아이들도 결국, 버스나 기차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오로지 피부색으로 판단할 뿐이었다. 결코 그 피부 속의 “사람” 자체를 보지는 못했다. (P.267)
오늘날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도 받아야 하고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화자가 아무런 경력과 자격 없이 덜컥 교사, 그것도 우리로 치면 고3 교사가 된 걸 보면 당대에는 요구 조건이 느슨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초보 교사로서 그가 맞닥뜨린 교실 현장은 녹록지 않다. 제아무리 교육관과 교육철학이 훌륭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초보 교사 릭도 실패를 거듭하다 어렵사리 길을 찾았으니 학생들을 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대우하는 방식에서였다. 학생이든, 자식이든 아이로 취급하는 순간 수직구조가 생성되고 지시-복종 관행이 발생하기 쉽다.
“나는 이제부터 여러분을 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성인 남자와 여자로 대해주기로 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끼리도 서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이의 위치에서 벗어나면, 지금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품행을 요구받게 마련이므로...” (P.113)
상대가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예우한다면, 내가 상대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교사를 무시하고 대들며 규칙을 위반하던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한 건 자신이 선생님으로부터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존중받는 자각에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그렇게 하는데 학생끼리 종전의 막무가내처럼 행동하기는 더 어렵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진정과 신뢰가 바탕에 놓일 때 가능하다. 릭이 안정된 틀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도전에 때때로 직면할 때가 있지만 현명하게 대처한 덕분에 그와 학생들 사이에 믿음과 사랑이 싹틀 수 있었다.
“선생님이 저희한테 말씀하시는 방식이 저희는 무척이나 좋았어요. 그러니까 애들한테 말하듯 하는 게 아니라, 꼭 어른을 대하듯 하시는 거 있잖아요. 선생님은 저희한테 정말 잘해주셨어요.” (P.299)
교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릭이 학생들의 존중과 신뢰를 얻음에 따라서 학생 개개인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커진다. 파멜라와 패트릭은 개인적 사안으로 교사가 자신의 사적 영역에 개입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요청하기에 이른다. 학교와 교실에서라면 교사의 조언과 지도는 당연하겠지만, 가정사에도 관여하는 게 바람직한지 그리고 가능한지 화자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생각할 여지가 많다. 학교는 교사가, 가정은 부모가 담당하는 게 원론적으로 마땅하지만, 그렇게 공과 사가 물 베듯 명쾌하게 갈라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교사는 학생의 사생활은 외면하는 게 타당한지 화자는 당혹해한다.
작가는 인종차별의 사안을 한 축으로, 교육 현장의 사안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작품을 전개한다. 양자는 나란히 또는 교차로 전개되면서 갈등과 해소를 거듭한다. 독자는 끝내 알아차린다, 양자의 본질이 결국은 동일함을. 즉 중요한 건 ‘사람’ 자체라는 점을. 갈등은 실즈의 모친상을 계기로 해소되고 화자와 학생들은 극적인 화합을 이룬다. 주인공 개인으로서는 질리언과의 결혼 약속으로 나타난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결혼 이후의 삶도 결코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릭은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