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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수림이네 가족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내 가족이라면 참 답답하고 속 터져 죽을 지경일 것이다. 의외로 세상엔 수림이네 가족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며, 쥐뿔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자신들이 우월하고 잘난 줄 아는 족속들 말이다. 철저하게 위선의 허울을 뒤집어쓴.
수림이가 자기 식구들을 1군이라고 부르며, 비교적 객관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보일 수 있는 연유는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따로 살았던 데 있다. 그들의 속물적 근성에 물들지 않고 거북 마을 사람들의 서민적이고 실용적인 생활 습관을 체득한 것이다. 가족의 눈에 수림이는 이방인이며 자신들의 고귀한 혈통에 어울리지 않는 덜떨어진 아이일 뿐이다. 반면 수림이의 눈에 비친 자신의 가족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외할아버지의 아파트를 무단 점거해서 쫓아내다시피 하고, 조금의 생활 능력도 없어 늙은 할아버지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면서도 당연하게 여기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므로.
‘이 사람들은 내 친척이다, 친척이다. 사고를 친 건 먼 친척 짓이다. 친척 짓이다.’
1군들에게 열받을 때면 되뇌는 말로 마음을 다스렸다. 뭐가 부끄러운지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으로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부모라면 더욱. (P.27)
수림이가 그네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까닭은 단 하나,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못나고 마음에 안 들고 한심해도, 부모가 자신을 낳아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림이가 엄마에게 하는 말, 즉 “목숨 걸고 낳아 준 은혜”(P.114)로 인해 수림이는 가족과 끊어질 수 없다. 마음 한구석에 자신과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1군들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말이다.
작품 전반부에서 작가는 원더 그랜디움과 거북마을이라는 대비되는 동네 풍경과, 수림이네 가족과 순례 빌라 주민들이라는 대조적인 삶의 방식을 부정과 긍정의 이분법적 형태로 보여준다. 후반부는 몰락한 수림이네 가족이 그렇게 괄시하던 거북 마을의 순례 빌라로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는 모습을 묘사한다. 유머러스하고 해학적이지만 때로는 하도 한심하여 동정심마저 품은 듯한 작가의 붓끝에는 억누를 수 없는 조소와 분개가 서려 있기도 하다. 길동 씨의 함정에 빠져 순례 빌라를 물려받을 헛된 기대감에 순례 씨와 수림이에게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수림이 부모의 태도 변화가 압권이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씨 생각 동의.”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P.53)
높은 학력을 지니고 잘난 체하며, 외할아버지와 고모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빛 좋은 개살구처럼 살아가는 수림이 부모가 참다운 의미에서 어른이 아님을 순례 씨와 수림이는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그런 면에서 1군들보다 수림이가 더욱더 어른임을 알 수 있다. 비록 학교 공부는 언니에 비해 못하지만 생각과 인격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성숙한. 수림이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긍정한다. 편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라 소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서므로 빌라 사람들이 수림이를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수림이가 건물주의 ‘최측근’이라는 프리미엄도 다소간 작용하겠지만.
“순례 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왜?”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찝찝하고 불안한 통쾌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P.226)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1군들이 온실 밖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순례 씨의 조치는 먼저 수림이 엄마에게서 변화를 이끌어낸다. 여전히 속물근성이 남아있지만 마을 곳곳을 쑤시고 다닌다거나, 길동 씨의 속임수가 드러났음에도 김밥집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무조건적 가족 봉사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에서 변화의 싹을 확인할 수 있다.
신선했다. 타인이 아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 집의 낯선 불화가. 십육 년을 헤매다 찾은 줄자 끄트머리처럼,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 (P.243)
수림이로서는 참신하면서도 반가운 조짐이다. 1군들이 조만간 위선의 탈을 벗고 진실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수림이와 1군들, 그리고 순례 주택의 주민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내 놓지 않는다. 수림이 아빠와 언니는 계속 허공에 붕 떠 있을 것인지. 엄마의 변화는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1군들과 순례 주택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 무엇보다 수림이가 장차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지를.
작가는 일부러 열린 결말을 의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림이, 1군들과 순례 주택 사람들의 앞날과 관계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전적으로 그네들의 선택과 행동에 달린 사안이다. 우리들 독자로서는 그저 지켜보며 수림이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