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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평점 :
책장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 책이 만화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둘째 아이 학교의 권장도서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표제를 보고는 아, 청년층의 고민과 현실비판이 담긴 책이라고만 생각하였다.
누구나 꿈과 직업이 일치하는 미래를 이상으로 삼기 마련이지만, 그런 행복한 삶을 갖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꿈을 가슴속 깊이 집어넣고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숨겨둔 꿈을 꺼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도, 어떻게든 중간에 꿈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삶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백수는 차츰 집안에 은거하게 된다. 친구도 친척도 대하기에는 위축감이 들고 그들의 관심과 뒷담화가 부담스럽다. 마냥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되기에 십상이다. 어른이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가 여타 동년배와 차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작가는 20대의 나이에 어머니의 권유를 좇아 청소일에 뛰어든다. 작가라고 결정에 이르기까지 고민이 없었겠는가. 사회적 시선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꿈과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그래서 전 이김보단 견딤을 택했어요. /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선택을. / 하지만 이기질 못한다면 / 자신의 판단에 믿음을 가지고 견뎌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P.124)
작가는 솔직하다. 생활을 위해 청소 일을 시작하지만 4년여가 지난 지금에도 자존감과 외부의 시선에 초연하지 못하다. 어쩌면 작가가 중간에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청소 일의 가치와 실용성은 결국 자기 위안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청소 일을 쓱쓱 하다 불현듯 흑흑흑 흐느끼는 장면(P.157)은 가장 압축적이고 상징적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진부하면서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작가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많은 부분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어쨌든 작가는 현실에 주저앉지 않았다. 청소 일을 하는 틈틈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양립하려 노력하였다. 청소 일이 자아실현의 욕구마저 충족시키지는 못하므로.
청소 일이 하기 싫었을 때 / 4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닌가 고민이 들 때 / 남들과 다른 게 무서울 때 /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 내가 필요해서 시작했고 좋은 것들도 결국 얻었다. / 확실한 건 4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P.65)
작가가 부끄러움과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청소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만화책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가장 서글프고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삶의 모습이. 경제적 자립이 없으면 인격으로서 자존감 수립은 불가능하다.
청소일을 하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떳떳이 드러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자신의 체험을 비로소 작품 제재로 그려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을 때 작가는 비로소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 결론적으로 청소 일도 하고 / 그림도 그리는, /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죠. (P.32)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구구절절하게 글로 썼다면 이토록 호응을 얻지 못하였으리라. 많은 청년층이 공유하는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만화라는 부담스럽지 않고 상대적으로 친숙한 형식을 통해 풀어놓는다. 여기에 청소일을 하는 20대 여성 작가라는 독특함도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으리라.
작가가 언제까지 청소일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말마따나 이 책 한 권의 출간으로 인생이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성공을 거두고 안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을 때까진 여전히 작가는 청소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더라도 작가의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