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에는 자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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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견상 루시오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 희곡은 의외로 셰익스피어의 보기 드문 문제극으로 분류된다. 이 극의 어떠한 요소가 문제극으로 자리 잡는데 기여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표제의 번역명이 분분하다. 이 책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는 자에는 자로로 번역하지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말을 말로 되는 되로’, ‘법에는 법으로’, ‘푼수대로 받는 보응등으로 번역하는 사례도 제법 있다. 속뜻은 동일하다. 주는 대로 받는 법이니 타인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다.

 

(공작) 백성들에게 방종의 여지를 줬던 것은 / 내 잘못이었소. 방종을 가만두고 보면서 / 그걸 이유로 그들을 때려잡고 / 처벌하는 것은 폭정일 것이오. / 그동안 악행을 묵과하고 / 처벌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조장한 것이나 /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9, 13)

 

이 작품에서 경고의 대상은 앤젤로 경이다. 공작 대리로서 느슨해진 시민 윤리를 강화하기 위한 시범사례로 연인에게 혼전임신을 시킨 클로디오에게 사형판결을 내린다. 오랜 기간 사문화된 법령을 부활하여 적용한 그의 행위에 대해 지나치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지만, 앤젤로의 공명정대하고 이성과 절제의 평소 인품 자체는 모두가 인정한다. 이사벨라의 탄원에도 그는 단호하다. 이대로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작은 파문으로 종결되었을 테고, 수사로 변장하여 지켜보던 공작도 그의 처분에 만족감을 품었으리라.

 

(앤젤로) 내가 그런 죄를 범했다면 당신도 / 그 죄를 경감해 줄 수 없을 것이오. / 하지만 말해 주시오. 그에게 벌을 내린 내가 / 같은 죄를 범할 경우에는, / 나에게 이 재판의 예를 적용하여 / 사형선고를 내리겠다고... (P.43, 21)

 

(공작) 그분의 삶이 / 그 엄한 조처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좋겠지요. /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면 앤젤로 경은 / 자기 자신에게 선고를 내린 셈이랍니다. (P.132, 32)

 

클로디오의 죄목이 성도덕 위반이라면, 앤젤로가 더더욱 자신의 성도덕 준수에 엄격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상식은 말한다.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면 자신도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앤젤로는 이사벨라에게 어두운 제안을 한다. 오빠를 구하려면 자신에게 몸을 바치라는. 나중에 스스로도 자책하는 이 하나의 언사로 그는 통치자로서 자신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한다. 이후 그의 행동은 부정한 욕망 달성을 위한 후속 조치일 따름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흔히 자행하는 권력형 부정의 모습이다.

 

앤젤로의 몰락을 초래한 이사벨라와 마리아나의 베드 트릭과 클로디오의 목 바꿔치기는 수사로 변장한 공작이 기획한 작전이다. 공작은 앤젤로에게 권력을 맡겨서 자신의 부재 동안 그가 나라의 기강을 확립해 주길 기대하였다. 자비롭고 현명한 공작이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을 테니. 한편 공작은 앤젤로를 백 퍼센트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한시적이지만 권력을 손아귀에 움켜쥔 앤젤로가 권력의 맛에 취해 변하지 않을까 유심히 지켜본다. 일찍이 앤젤로가 사생활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알면서도.

 

(공작) 하지만 나는 보고 싶소. /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변하게 하고 /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 어떻게 변하는지를... (P.30, 13)

 

이 작품의 전반적 사건 전개와 진행은 결국 공작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그는 교묘한 책략으로 앤젤로의 위선과 부정을 폭로하고, 이사벨라와 클로디오를 구하려고 한다. 앤젤로를 완전히 버릴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그는 유능한 수하이므로 목숨을 살려주고 마리아나와 짝지어준다면 세인에게 칭송받고 당사자의 절대적 충성을 끌어낼 수 있으므로. 이를 위해 공작은 극 중에서 종횡무진 활약한다. 수사로 변장하여 이사벨라에게 조언하며, 공개 재판에서는 수사와 공작의 이중 배역을 연기한다.

 

공작은 이 연극의 주연배우이자 총연출가이므로 독자에게 신과 같은공작의 능력과 자비로움, 그리고 앤젤로의 부정한 권력과 대비되는 정의로운 권력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보여 준다. 이 작품이 문제극인 까닭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군주를 미화하고 있음에도 독자는 금방 알아차린다. 군주와 권력의 자의성과 부정 취약성을.

 

(이사벨라) , 선한 공작님께서 앤젤로 경에게 속았어! / 그분이 돌아오셔서 그분께 말씀드릴 수 있다면, / 앤젤로의 행동을 폭로하겠어요. /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P.109, 31)

 

(공작) 자신도 저지를 수 있는 죄를 두고 / 남을 잔인하게 정죄하는 자에게 치욕이 있으리라! /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앤젤로, / 세상의 죄를 제거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 스스로 죄의 씨앗을 가꾸다니! / , 겉으로는 천사처럼 보이지만 / 그 뱃속에 뭘 숨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 (P.133, 32)

 

공작의 이중성은 루시오와 이사벨라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루시오를 향한 공작의 반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는 수사로 변한 공작 앞에서 공작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과 거짓 사실을 유포하며, 나중에는 공작 앞에서 수사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는다. 앤젤로는 물론 옥중의 사형수마저 풀어주는 마당에 공작은 루시오를 용서하겠다고 하면서도 일구이언으로 그에게 창녀와의 결혼을 끝까지 명령한다.

 

(공작) 나에 대한 비방은 용서하겠다. / 네놈에 대한 다른 처벌로 면제해 주겠다.

[......]

(공작) 군주를 비방한 대가로 당연한 벌이다. (P.217, 51)

 

앤젤로의 타락은 그가 이사벨라에게 흑심을 품어서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수세에 몰린 처녀의 정조를 유린하고자 하는. 이사벨라는 수녀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다가 오빠를 구하기 위해 부랴부랴 수녀원에서 나왔다. 사랑과 결혼의 세속적 욕망보다는 신앙에 대한 간구의 정도가 크다고 봐야 한다. 오빠의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니 그녀는 다시 수녀원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다.

 

(공작) 아름다운 그대 때문에 이러는 것이니 / 손을 이리 주고 내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시오. / 그럼 클로디오는 이제 내 처남이오. (P.215-216, 51)

 

(공작) 이사벨라, 그대가 / 귀를 기울여 기꺼이 들어준다면, / 그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 하나를 제안하겠소. / 나의 것은 당신 것, 당신 것은 / 내 것이 될 것이오. (P.218, 51)

 

공작은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신과의 결혼을 요청하는. 절대권력을 틀어쥐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신과 같은 인물인 공작, 조금 전 자신의 수치와 오빠의 사형을 직전에서 구해준 은인인 공작. 공작의 요청은 이사벨라의 의사와 관계없이 거부할 수 없는 지상과제의 명령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렇다면 앤젤로와 공작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는 이사벨라의 대답을 굳이 기술하지 않았다. 결론이 너무나 자명하므로.

 

마지막으로 <작품 해설>에서 공작 평가 부분을 인용한다.

 

공작은 사실 이 작품에서 마음대로 자신을 은폐하고 가장하며, 또한 적절한 시기가 오면 본모습을 드러내 전지전능한 힘을 과시하는 신과 같은인물이다. 오직 그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상황을 독점한다. 공작은 때가 되면 모든 사건의 종결자로서 사면을 통해 권력의 자비로운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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