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 라임 청소년 문학 40
코슈카 지음, 톰 오구마 그림, 곽노경 옮김 / 라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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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잠길 운명에 처해 있는 인도양과 남태평양의 섬나라에 대한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천재지변을 다룬 소설이라면 으레 재해 자체에 초점을 맞춰 흥미진진하게 전개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철저히 사람들, 특히 한 가족에 집중하고 있다. 특별히 극적이고 자극적인 전개와 표현도 자제하며 작가는 나니네 가족이 맞닥뜨린 상황과 점차 벗어나는 과정을 매우 차분하고 나직한 어조로 기술하고 있다. 분량과 비교해서 무게감이 한층 느껴지는 까닭이다.

 

수몰된 섬 사람들은 섬을 떠나고 낯선 땅에서 힘겹게 정착하는 현실에 충실하다. 친숙한 공간을 빼앗긴 상실감, 소중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슬픔, 말도 통하지 않는 생소한 곳에서 수중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땅에서 일어서야만 하는 막막함. 작가는 이것에 대한 관심을 나니네 가족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섬의 수몰을 가져온 자연재해의 본질을 직시하게 된 것은 에필로그-‘우리는 기후 난민’-에 이르러서다. 인식의 확장이라고나 할까.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그동안 묶여 있던 밧줄을 푸는 작업이란다. 나니야, 이 섬을 버려야 해. 종려나무, 야자수, 레몬나무, 고운 모래... 이 모든 것들은 등 뒤에 남겨 둬야 한단다. (P.15)

 

해수면 상승과 폭우로 섬이 가라앉을 위기가 목전에 도래한 시점, 망설이던 나니네 가족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남들처럼 자신들이 살던 섬, 즉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는 길을. 다리가 불편하여 거동을 못 하는 나니의 외조부와 외조모는 떠날 수 없다. 떠나지 못함은 섬에 남아있음을 가리키며, 이는 조만간 수몰될 섬과 운명을 같이함을 의미한다. 오로지 나니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부모를 죽음 앞에 놓아두고 떠나야 하는 나니 엄마의 심정은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다. 허망하게 할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보내게 된 세메오의 심정은 누군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니야, 세메오야! 이런 도움이 필요하면 억지로라도 얻어 내야 해. 아픔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말고 슬픔에서 벗어나렴. 뭔가 멈춰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그곳에 시선을 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삶은 결코 끝나지 않아. 너희가 서로 이어지게 놔두면 삶은 네 주위 어디든 있어. (P.102)

 

이 작품에서는 나니 외조부가 나니에게 전해준 두 종류의 물건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세 가지의 물건은 추억과 소통의 상징물이자 교감의 매개체이다. 나니의 외조부가 쓴 편지는 내용 및 의미 차원에서 더욱 깊은 호소력을 지닌다.

 

편지 속에서 외조부는 헤어짐의 불가피성과, 추억의 불멸성, 삶의 지속성 그리고 형제애적 인류애의 가치를 담담히 외손녀를 위해 풀어놓는다. 특히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작가가 지향하는 바가 더 깊고 넓음을 알게 해 준다.

 

네가 육지에서 어떤 선한 분을 안아준다면 네가 포옹한 사람이 바로 네 외할아버지인 거야. 육지의 어떤 할머니한테 따스하게 미소를 짓는다면 네 미소를 받은 사람이 바로 네 외할머니인 거지. 세상은 이렇게 서로서로 통하는 거란다. (P.107-108)

 

할아버지의 편지를 함께 읽으면서 나니와 세메오는 서로 공감하며 슬픔을 누그러뜨리고 한 가족으로 새로 탄생하게 된다. 새로운 형제를 배려하는 뜻에서 편지의 자구를 수정하는 나니의 따뜻함은 아이답지 않은 마음씨라고 하겠다.

 

슬픔과 아픔을 극복한 두 아이는 나중에 자신의 조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회신한다. 작가는 이렇게 글을 통하여 생사와 시공간을 초월한 세대 간 소통을 시도하는 동시에 파도 전설 이야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제각각 견해를 통해 사람과 바다, 그리고 섬에 대한 대상의 확장을 보여준다. 그것이 자연스레 에필로그로 이어져 독자는 무심코 간과했던 사안의 본질에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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