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과학자들 - 생명 윤리가 사라진 인체 실험의 역사
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 지음, 안희정 옮김 / 다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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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생명 윤리가 사라진 인체 실험의 역사가 말해주듯 이 책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자행됐던 인체를 대상으로 한 서양의 부끄러운 근현대사를 파헤치고 있다. 분량에 비해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폭과 깊이가 제법 있다. 다만 대상 사례를 세부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과학, 특히 의학 발전을 위해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불가피하다. 자신의 몸을 학문과 기술 발전을 위한 실험 도구로 기꺼이 제공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이런 자명한 상식이 그동안 인체 실험의 역사에서는 통용되지 못하였음이, 나아가 강압과 불법이 난무하는 비윤리적 현장이었음을 알게 되어 충격적이다.

 

개인의 인권이 과학.의학의 발전과 대립할 때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P.17)

 

인권을 제대로 주장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 즉 죄수, 소수민족, 고아, 군인은 물론이고, 정보 비대칭으로 실험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힐 수 없는 환자들처럼 인체 실험의 대상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기니피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의 개발로 인류가 얻을 혜택을 고려하면 절차와 방법의 일부 일탈은 불가피한 것으로 용인되어야 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인류 역사는 언제나 훌륭한 이상의 실현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점철되지 않았던가. 과거에는 개별적으로 자행되던 비윤리적 인체 실험이 나치와 전쟁에 맞닥뜨려서는 국가 권력의 직접적인 지시와 방관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의도는 나름대로 고매한 것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벨몬트 보고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3가지 윤리 원칙, 즉 인간 존중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을 담고 있다. (P.105-106)

 

인체 실험의 연구 윤리를 수립한 뉘른베르크 강령과 벨몬트 보고서를 통해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심하면 오산이다. 벨몬트 보고서가 발간된 게 1979년이니, 이후에는 윤리 위반 사안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사안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상업화한 의학이 초래하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은 생명 윤리 따위는 무시하도록 무분별한 경쟁을 쫓고 있음을.

 

수년간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생각해 보자. 수많은 거대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임상시험의 성패는 초미의 중대사다. 먼저 개발에 성공할수록 막대한 수익을 그것도 독점적으로 거둘 수 있었다. 게다가 온 세계가 백신 수요로 넘쳐날 때 그들은 비싼 값을 지불할 수 있는 국가에 우선 공급하였다. 의술과 신약은 단순한 서비스와 상품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것임에도 자본의 논리는 빠지지 않는다. 자국과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부 개인의 피해는 눈감아도 되며 국제적 일반 기준은 준수를 거부한다. 1993년 인체 방사능 실험에 관한 자문위원회와 2008년 식품의약국의 헬싱키 선언 거부는 생명과 인권에 앞선 가치가 실존함을 여실히 입증한다.

 

과학발전은 중요하다. 사회는 엄청난 의학적 발견과 치료법 덕에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 피해를 입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학 연구는 어떤 경우라도 생명 존중과 혜택과 정의라는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권리가 대립할 때 우리는 공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P.149)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생체 표본의 사용과 배아를 활용한 줄기세포 임상시험은 그것이 가져올 인류 차원의 혜택만큼이나 사용 과정에서 또는 오남용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공정한 잣대 적용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정답이 무엇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통해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적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야만 하므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과 인체 실험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당 내용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731부대를 떠올렸는데, 때마침 부록으로 일본 731부대의 야만적인 인체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은 서양세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자가 731부대에 대해 알았다면 본문에서 이를 절대로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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