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집 창비청소년문학 34
윌리엄 슬레이터 지음, 최세진 옮김 / 창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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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막혀 있고 오로지 계단만 존재하는 공간. 크기도 위치도 확인할 수 없으며, 인공조명에 의해 밝혀져 시간조차도 알 수 없는 곳. 영문도 모른 채 그곳에 끌려온 아이들은 보편적 인간 성격과 행동 유형의 전형적 인물형이다. 그곳의 환경과 방식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뚜렷한 차별성을 드러낸다.

 

독자는 소설 내내 그리고 끝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궁금해하게 된다. 원체 독립심 강하고 반항주의자인 롤라야 그렇다 하더라도 제일 소심하고 약골인 피터가 아닌 나머지 아이들이 기계의 조작에 길들여지는 까닭을. 유쾌한 올리버는 깊은 생각이 없으며 지배욕이 강하고, 블라썸은 음식을 중시하는 물욕주의자인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들의 험담과 이간질도 서슴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권장되는 인물형이다. 상냥한 애비게일이 제일 안타까운데, 그녀는 기계의 작동 원리를 언뜻 예감하였지만 더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진실을 마주 대하는 두려움과 용기 부족. 이것은 전형적인 현대 사회의 대다수 소시민의 모습이리라. 결국 이런 것들이 그들의 타락을 가져왔다.

 

그녀는 직전에 느꼈던 소름 끼치는 예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동안 답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돌연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게 무서워졌다. 그녀는 춤추는 일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춤추고, 또 춤추고, 먹고, 잊어버렸다. (P.144)

 

가장 소심하고 나약한 피터의 반전은 놀랍다. 롤라의 의견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유혹에 빠지려고 하는 롤라를 오히려 올바로 이끄는 인내와 단호함. 끝내는 롤라를 저버릴 수 없어 기계와의 싸움에서 기꺼이 패배를 감수하려는 용기를 보여준다. 굶주림으로 육체가 약해질수록 그의 내면은 더욱 강건하게 성장하였음을 우리는 에필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이라고?”

올리버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왜 책을 봐? 너무 느리잖아. 게다가 대부분 프로그램화도 안 돼 있고 말이야.” (P.115)

 

그의 반전의 근원은 바로 남들과 달리 그가 책을 본다는 사실에 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당대가 아닌 알지 못할 미래를 설정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시대가 더는 책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음을 피터의 말에 대한 올리버와 애비게일의 반응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프로그램 화면과 실시간 홀로그램의 효율성과 편안함에 비할 때 독서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노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독서를 통해 스스로 상상하며 주체적 사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그와 다른 아이들의 차이점이다. 다른 아이들은 소리와 불빛의 메시지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음식을 얻기 위해 변덕스러운 기계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수렁에 빠지듯이 그들은 서서히 기계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감옥에 있는 거야, 알겠니? 감옥, 이건 그냥 평범한 감옥도 아냐. 고문실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고문실. 하지만 우리 몸을 고문하는 건 아냐. 팔다리를 뽑는다는가 벌겋게 달군 칼을 손톱 밑에 쑤셔 넣는 것처럼 간단하고 직접적인 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지, 이건 더 지독해. 우리를 미치게 하려는 거야. 알겠니?” (롤라, P.70)

 

그곳의 본질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롤라다. 피터도 롤라의 생각에 동의한다. 기계가 하라는 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포기하고 욕망에 굴복하는 동물로 전락하는 것임을 두 아이는 알아차린다. 다른 아이들은 하지만 욕망의 노예가 되기를 선택한다. 눈앞의 배고픔과 두려움을 거부할 용기와 판단이 결핍된 탓이다. 롤라의 너무나도 명료한 설명에도 그들은 자신들만의 껍질 속에 틀어박힌다.

 

그래서 피터와 난...... 우리는 기계를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어. 이건 피터의 생각이기도 해. 우리가 모두 함께 기계에 맞서 싸우면, 그들도 우리를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그들은 포기하고 우리는 승자가 되는 거지. 하지만 누구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들 편에 서서 기계를 따른다면 그들은 우리 모두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거야. 그러면 우리가 가진 기회는 거의 사라지겠지. 그러니까 제발 함께 맞서 싸우자.” (롤라, P.173)

 

이 모든 게 거대한 실험이었음이 에필로그에서 드러난다. 로런스 박사는 행동의 조건화 이론을 토대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최고지도자가 원하는 유형의 인간을 양성하고자 하는 의도를 밝힌다. “언뜻 부당하거나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명령에든...... 의심 없이 따를 수 있는”(P.239) 인간이라! 명령에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군대라든지 일체의 독자적 사고기능이 없는 기계를 연상하게 된다. 그것은 히틀러의 나치가 제3 제국 신민들에게 요구한 가치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다수의 보통의, 평범한 독일 국민들이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거부함 없이 따랐던 것이다.

 

로런스 박사는 고아원 출신 아이들만을 실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혹시 모를 사회적 저항을 방지하려고 하였다. 박사의 실험은 부분적으로 실패하였지만 - 롤라와 피터는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더 나은 곳으로”(P.244) 떠난다. - 세 명의 아이들은 신호등 불빛에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을 보인다.

 

이 소설은 스키너와 밀그램의 심리학 이론에 근거를 두고 씌어졌다.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불합리한 제도와 명령에 기꺼이 순응하는 인간 행동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 이론의 소설화다. 체제에 무조건 순응하고 복종하는 인간은 정치권력자로서 흐뭇한 유형이다. 전체주의 체제 또는 독재정치라면 더더욱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나치와 파시스트가 권력의 강제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헌신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그들의 권력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닌 민주적 선거 수단으로 권력을 쟁취하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사회의 부당한 지배 가치에 대항하여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전체주의 체제는 계속해서 순응적 인간을 길러내고자 할 것이다. 인간 본성의 약점을 노리는 로런스 박사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작가는 소설 속에서 분명히 알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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