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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ㅣ 비룡소 클래식 3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박광규 옮김 / 비룡소 / 2013년 3월
평점 :
모든 사람은 천사와 악마 그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선인은 천사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고, 악인은 악마에 더 가까울 뿐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천적 본성과 후천적 학습과 사회의 규율에 따라 악을 억누르고 선을 표방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의 모습이다. 권선징악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구호다. 우리는 악을 혐오하고 악인을 미워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럼에도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발생하는 악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은 우리에게서 악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증명할 뿐이다.
지킬 박사의 비극은 그가 제2의 파우스트 박사가 되려고 한데 있다. 절대 지식을 추구하고 선악의 극한을 탐험하는 위험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잃을 가능성이 커짐을 뜻한다. 절제되지 않는 쾌락이 탐닉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듯이 제어되지 않는 악은 타락의 덫에서 놓여나오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심신이 쇠잔해질 때까지 그리하여 인간성이 상실될 때까지 말이다. 그 끝에서 하이드 씨가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하이드 씨를 접할 때 보이는 공통적 반응은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현상을 목도함에 따른 것이다. 순수 악 또는 절대 악의 구현, 즉 악마를.
뭔가 불쾌하고 싫거든요. 그렇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은 평생 처음이었지만, 왜 싫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는,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P.20)
이 소설의 전반부가 변호사 어터슨의 시각에서 사건을 조망하는 반면, 후반부는 래니언 박사의 진술과 헨리 지킬의 참회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하여 추한 모습을 하나의 실체로 구현하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이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자신의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하이드에게 지배당하였다.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한발 두발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그는 사악한 탐욕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였다.
죄를 범하는 것은 결국 하이드였으니까 그건 하이드인 거라고 생각했지. ‘지킬’은 잘못이 없다고. 다시 자기로 깨어나 보면, 선량한 본질은 상실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니 ‘지킬 박사’는 기회만 있으면 하이드가 저지른 죄를 서둘러 지워 버리고자 애쓰기도 했지. 이렇게 하는 동안 양심은 차츰 마비되어 갔지. (P.132-133)
지킬 박사의 참회는 결국 궤변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별개의 인물이므로 하이드가 누린 쾌락은 물론 그가 저지른 온갖 악행은 지킬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육체에 두 인간이 공존할 수 없음을 그는 알지 못하였다. 하나의 생명체라고 인정하는 즉시 하이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것이 생명체의 본성이므로. 하이드는 지킬을 제거하고 완전한 하이드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 나는 ‘그’라고 하고 있네. ‘나’라고는 부를 수가 없어. 이 지옥의 아들에게는 인간다운 데가 조금도 없었네. 마음속에 공포와 증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지. (P.147)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그’라고 부르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인정한다. 최초에 그의 것이자 동시에 자신의 것인 추한 얼굴에 기쁨을 느꼈던 그가 이것을 부인하고 만다. 영혼의 공존이 영혼의 분열로 이어지고 끝내는 반쪽 영혼의 소멸로 귀결된다. 남은 반쪽에 대해 지킬 박사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지킬 자신이 아닌 남인 하이드 씨이므로. 지킬은 이제 죽었다고 말하며.
나는 상관없네. 지금 나는 정말로 죽음을 맞이하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펜을 놓고 이 참회록을 봉하고 불행한 헨리 지킬의 생애를 마치고자 하네. (P.153)
여기서 반문한다. 이 소설에서 하이드 씨는 옴짝달싹 못 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말지만, 만약 그가 세상 속으로 활개 치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그가 남긴 온갖 흔적은 정말 지킬 박사와는 무관한 것인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그는 너무나 무책임하지 않은가. 나는 그럴 줄 몰랐어요, 애초에 의도는 순수하고 좋았어요. 그것과 나는 상관없어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면 그걸로 끝인지. 오늘날 과학연구의 순수성을 주창하는 일부 과학기술자들이 그러하듯이.
부디 내게 주어진 어두운 길을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게나. 나는 지금 비할 데 없는 천벌과 위험을 스스로 불러들였다네. 세상에 다시없을 죄인임과 동시에 더할 수 없는 고뇌를 짊어진 인간이지. 이토록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고뇌와 두려움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네. (P.71)
이 글만 읽으면 우리는 글쓴이의 고뇌와 연약함에 동정을 금할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허덕이는 가련한 인간의 한계. 거짓 필적으로 하이드의 존재를 숨긴 인물은 누구인가.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하이드를 지켜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지킬 박사는 위태로운 동거의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죄악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락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결코 그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이 소설을 인간에 내재한 선과 악의 모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생생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자체로서도 빼어난 성취이지만, 작가는 제어되지 못한 지식과 욕망의 위험성을 현대판 파우스트 박사를 소환하여 다시금 일깨우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래니언 박사에게 제안하는 하이드는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닮은꼴이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식과 명예를 얻을 새로운 길을 지금 당장 이 방에서 눈앞에 열어 드리겠습니다. 악마도 놀라 당황할 정도의 기적으로 당신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드리지요. (P.118)
완전하고 더없이 순수하다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그것이 반드시 올바르고 좋은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 속에 내재한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본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인간적인 이유는 불완전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