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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평점 :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속편이다. 전자가 도시와 공장으로 영역이 국한되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스케일이 크게 확장되었다. 위로는 우주공간, 아래로는 땅속 깊이로. 우주에서는 왕꿈틀이라는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고, 땅속에서는 마이너스 랜드를 방문한다. 이 모든 여행의 운송 수단은 바로 ‘유리 엘리베이터’다. 말이 엘리베이터지 그야말로 만능이며 우주선보다도 최첨단의 기술을 탑재하고 있으니 우주비행사들이 입을 딱 벌릴 만하다.
“이 안에 있는 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유리 엘리베이터는 방충격, 방수, 방폭탄, 방탄 그리고 방왕꿈틀이로 설계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안심하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P.94)
이 작품은 찰리네 일가족이 총출동하는데, 각자 개성이 명확하다.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3인방 노인네. 그중에서 조세핀 할머니와 조지아나 할머니는 완전 투덜이 전문이다. 웡카 씨뿐만 아니라 독자들마저 짜증 나게 할 정도로 매사에 “심술궂고 언제나 투덜거리는”(P.225) 두 할머니는 웡카 씨의 독주를 제어하고 소설에 다소나마 현실성을 부여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더욱 실제에 가까우리라.
가족이 아닌 남을 믿지 못하고, 고령에 침대 생활만 함에도 “살려 달라고 악을 써 대며 발버둥치고”(P.122) 있는 그네들. ‘젊음을 되찾아 주는 위대한 약’을 앞에 두고 가족과 체면 상관없이 마구 욕심부리고 이기적으로 다투는. 절대 침대를 떠나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이 백악관 초대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적적으로 몸을 일으켜 용수철처럼 달려 나가는 장면! 이 소설에서 아쉬운 건 찰리 부모인 버켓 씨 부부의 지나친 소극성과 미약한 존재감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갑자기 뒤에서 ‘휘익’ 담요와 침대보 들치는 소리가 나더니 용수철이 피웅 퉁기는 소리가 들렸다. 세 노인이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린 것이다. 노인들을 웡카 씨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기다려요! 기다리라구!”
노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 넓은 초콜릿 방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P.241)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웡카 씨며, 찰리와 조 할아버지는 충실한 조력자의 구실을 한다. 웡카 씨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지만,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과시한다. 그는 무시무시한 왕꿈틀이의 정체를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왕꿈틀이와 결부시켜 유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데 흥미롭다. 게다가 우주와 정반대의 깊은 지하공간인 마이너스 랜드의 존재도 알고 있으며, 여러 번 방문한 적도 있다. 초콜릿 단계를 뛰어넘은 웡카바이트와 바이타웡카가 보여주는 놀라운 약효는 기절초풍할 만하며 침대 3인방이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매혹적인 생산물이 아니겠는가! 한 무제와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작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차이점은 정부 고위 관료들의 등장과 그들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다. 우주 호텔과 수송용 캡슐의 유리 엘리베이터 조우, 왕꿈틀이의 공격에 맞닥뜨린 대통령과 부통령 이하 각료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조소와 냉소의 완벽한 결합이다. 온통 가짜인 정보국장, 글자 그대로 장부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재무보좌관, 쾅쾅 펑펑 부수는 것만 아는 육군참모총장 등은 일차원적인 풍자에 해당하지만, 바보 대통령과 그의 유모 출신 부통령의 역할은 냉소에 가깝다. 실제 권력의 배후세력인 부통령 팁스 양에게서는 최근에 읽은 <마틸다>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치인 풍자의 가장 압권은 부통령이 부르는 ‘유모의 노래’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지 / 아하! 이런 얼간이도 정치가가 될 수는 있을걸요. / 유모, 오, 유모! 정말 근사한 생각이야! / 하고 아이가 맞장구쳤지
[......]
이제 내 나이 여든아홉이니 /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네 / 전부 내 탓이지 / 저 미련한 돼지 같은 녀석이 /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야 (P.104)
웡카 씨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거대한 초콜릿 공장을 기꺼이 찰리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그는 위대한 약인 웡카바이트와 바이타웡카를 개발하였지만 이것으로 부를 축적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초콜릿과 위 두 가지 약, 그리고 유리 엘리베이터로 뭇사람들의 환상과 욕망을 실현하는 데 만족한다. 그것에 이기적인 욕심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웡카바이트를 둘러싼 침대 3인방 노인의 다툼에 웡카 씨는 뒷짐을 질 뿐이다.
“왜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욕심부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어야겠다. 보물이 눈앞에 있으면 누구나 예의를 걷어차는군. 정말 불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야.” (P.166-168)
사람들의 욕망과 환상 실현을 위한 웡카 씨의 활동에는 한계가 없다. 이 작품의 전반부가 우주공간, 후반부가 공장 내부와 지하세계라는 수직적 횡단을 오가는 것이 그러하다. 조지아나 할머니의 나이를 마이너스에서 메이플라워호 당시까지 극단적으로 늘려놓는 장면도 그러하다. 미국 대통령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눈가에 반짝 웃음이 스치며 예상 밖의 행동을 거침없이 벌일 수 있는 게 바로 웡카 씨다.
우리는 알고 있다. 웡카 씨가 설명이 곤란한 대목에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는 걸. 작가가 그려내는 웡카 씨의 종횡무진한 활약에는 꼼꼼한 이성의 힘으로 파헤칠 경우 수많은 빈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작뿐 아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있을 법하지만 너무나 과장하였기에 사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그럼에도 독자는 웡카 씨의 돈키호테 같은 언행에 도리어 호감과 공감을 느끼며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