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로알드 달의 동화는 상투적이지 않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어리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그를 괴롭히는 나쁜 어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신 합당한 복수를 실행한다. 동화 속 주인공은 항상 아름답고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도식의 틀을 그는 거부한다. 이러한 의외성과 (아이의 입장에서) 반격의 쾌감이 그의 작품의 매력이다.

 

<마틸다>는 나쁜 어른 vs 착한 아이의 대결 구도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주인공 마틸다의 부모는 한마디로 최악의 부모다. 그들은 딸에게 매우 차별적이며, 마틸다의 빼어난 능력을 외면한다.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동시에 중고차 사기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도덕적 불감증도 지녔다. 마틸다를 무시하고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마틸다는 복수와 반격을 가한다. 초강력 접착제 소동, 유령 소동, 머리 염색 소동이 그것이며, 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지 않았다면 소동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니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마틸다보다 한층 더한다. 부모의 사별 후 보호자가 된 이모에게 갖은 학대와 착취를 겪은 그녀는 불행하게도 마틸다만큼 강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말처럼 어렸을 때 싹이 짓밟혀 버렸기에 성인이 된 후 집을 뛰쳐나와 오두막에 초라하게 머무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던 셈이다.

 

암흑과 악몽의 유년 시절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그들이 맞닥뜨린 거대한 적은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이다. 이 동화에서 트런치불 교장은 나쁜 교사로서 거의 신화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크고 당당하며 거친 외양과 태도. 비교할 데 없이 막무가내인 언사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 등. 교육자로서 전혀 부적절한 아이들에 대한 험담과 적대감의 노골적이고 반복적인 표출은 물론이다. 투포환 하듯이 멀리 집어던진 아만다, 머리칼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 루퍼트, 두 귀를 잡고 높이 들어 올린 에릭, 한쪽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린 윌프레드. 현실로는 불가능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트런치불 교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다. 악역이지만 워낙에 개성적이며 압도적인 캐릭터이기에 강한 인상을 주는 사례에 해당한다.

 

하니 선생님이 자신의 초라한 오두막으로 마틸다를 데리고 간 것은 무슨 목적이었을까? 분명 의식적으로는 아니었겠지만, 마틸다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그의 초능력의 목도는 혹시 그가 자기의 뒤엉킨 삶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다 어른에게 고통받는 어린 시절이라는 유대감에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하니 선생님의 집 상태와 사는 모습을 알게 된 마틸다는 하니 선생님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만나서 잃어버린 삶을 되찾을 수 있었고, 마틸다는 반대로 자신을 아껴주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마틸다의 부모는 끝까지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기꺼이 마틸다를 던져버리고 외국으로 도망간다. 더는 퉁명스러운 부모에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게 된 마틸다가 하니 선생님과 함께 행복하고 정상적인 아이로 살아갔을 거라고 믿는다.

 

현실 세계에서 마틸다의 부모와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 같은 어이없고 괴팍스러운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너무나 극단적인 악인의 유형이기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로알드 달은 이렇게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형을 표현한다. 여기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작품해설에서 읽어볼 수 있다.

 

나는 내 인물들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과장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못되고 잔인하다면 아주 못되고 잔인하게 만든다. 만일 못생겼다면 아주아주 못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재미있고 효과적이다.’

 

동화의 제일 미덕을 무엇으로 볼지는 의향이 다를 수 있다. 혹자는 재미를, 혹자는 교훈성을 중시할 수 있다. 마틸다는 작중에서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작가의 의견과 동일하다. 동화를 쓰는 주체는 어른이지만, 읽는 주체는 결국 아이다. 동화에 지나치게 어른의 사고와 이념을 투영한다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마뜩잖으리라. 로알드 달 이야기의 황당함은 재미를 우선 추구하는 데서 오는 보수적인 어른들의 당혹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마틸다의 독서 목록이다. 조숙하고 영특한 마틸다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혼자서 도서관을 찾아가서 펠프스 여사의 배려로 여러 책을 읽는다. 어쨌든 청소년들에게 읽혀도 괜찮을 수준의 책으로 봐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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