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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이것은 한 개인의 자서전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처절한 체험을. 그것은 과거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에도 개인에게 아픔을 주는 상흔으로 남아 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은 많이 나왔고 개인의 체험을 수록한 책도 역시 많이 출간되었다. 어찌 보면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도 서서히 역사 속의 사건으로 묻혀간다고 볼 수 있다. 전혀 새롭지 않고 상당히 익숙한 소재를 다룬 책임에도 불구하고 199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은 이 책이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그것도 아주 뛰어나게 성취했기 때문이다. 만화로의 접근이라는.
이 책은 만화책이다. 여느 만화와는 닮지 않았다. 이 안에는 유머, 즐거움, 공상처럼 흔히 떠올리는 만화의 요소가 일체 들어있지 않다. 유익함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학습만화와 일부 공통점을 지니지만 이 책은 학습만화도 아니다. 게다가 어떤 유형의 만화에도 항상 들어가 있는 코믹적 요소가 여기에는 없다. 이 만화를 보고 읽는 과정은 어쩌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다면, 그건 만화에 실릴 수 없다고 생각되던 내용이 실려 있기 때문일 거예요. 만화라는 장르에 포용할 수 없다고 간주되던 사고방식 말이에요. 그리고 독자를 즐겁게 만드는 재미있는 이야기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사실 역시 일종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거예요. (P.307-308)
글을 통한 경험은 머릿속에서 재구성을 하는 과정에 상상이 추가되어야 하므로 직접적이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만화 같은 시각 매체는 보는 즉시 직접적으로 작가의 메시지가 머릿속에 들어오므로 한결 강렬한 호소력을 지닌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책이 대중과 독자에게 미친 충격과 파급력은 만화였기에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인 블라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나치와 히틀러의 폭압을 오롯이 맨몸으로 맞닥뜨리고 헤쳐나간 블라덱의 뛰어난 생존력에는 감탄할 따름이다. 물론 그의 생존은 많은 부분 행운 덕분이지만 그의 준비력과 적응력, 맹렬한 삶의 의지가 없었다면 그 역시 아우슈비츠를 극복하기는커녕 이전에 진작 스러졌으리라.
그렇다고 블라덱을 존경할 만한 인물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현재의 삶의 모습, 즉 그와 말라의 관계, 그와 아들 슈피겔만의 관계를 볼 때 전쟁이 남긴 상흔이 그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을 갉아먹은 정도를 짐작케 한다. 그에게 나치와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해소될 것이므로. 그런 그를 아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그런 아들을 그도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가 겪은 역사 체험이 다르기에 서로 간에 공감이 불가능할 수밖에. 같은 아우슈비츠 체험을 하였다 하더라도 생존자가 모두 블라덱과 같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아냐처럼 끝내 자살을 하는 사람, 블라덱처럼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적어도 겉으로는 상흔을 극복하고 비교적 무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
이 만화는 특이하게 인물을 사람이 아닌 동물로 표현한다. 유대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미국인은 개 등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끔찍한 상황과 장면을 사람으로 그리기보다는 동물로 묘사하는 게 훨씬 부담감이 덜하고 덜 직접적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또한 제2권 첫머리에 인용된 독일의 신문 기사 내용처럼 당시 독일인은 미키 마우스로 상징되는 가장 저열한 동물인 쥐를 유대인과 동일시하도록 선동하고 있으므로 유대인=쥐는 자연스럽게 연결 가능하다. ‘톰과 제리’처럼 쥐를 괴롭히는 동물은 당연히 고양이이므로 독일인=고양이도 저절로 성립한다.
(프랑소와즈) 말도 안돼요! 어떻게 아버님이 인종차별을 하실 수 있죠? 마치 나치가 유태인 얘기하듯 흑인을 대하시는군요.
(블라덱) 난 네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검둥이는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어! (P.263)
나치의 인종주의로 비극을 겪은 유대인. 직접 원인제공은 물론 나치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폴란드인도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나치의 선동이 잠재되어 있던 반유대주의 감정을 촉발했던 것이다. 온갖 고통을 겪은 블라덱이라면 이러한 인종주의에 극심한 혐오를 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우리는 그가 드러내는 흑인 비하 사고와 발언에 충격을 받는다. 나치에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그의 시각에 그래도 자신들이 흑인보다는 우월하다고 여긴다면, 우리가 나치를 비판할 윤리적 토대는 너무나 취약하기 그지없다. 블라덱의 관점은 오늘날 미국과 유럽 사회에 뿌리 깊은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와 반감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치의 망령은 아직 전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지분을 계속 요구하는 셈이다.
부록으로 조엘 개릭에 의한 작품 해설이 있어 아트 슈피겔만의 작품세계와 그가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 과정 및 사용 기법을 세부적으로 알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쉽게 쉽게 그린 만화가 아니라 내용, 표현 및 크기, 배치 등 세심하게 고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1부와 2부로 각각 출판된 두 권의 책을 하나로 합권하였다. 튼튼한 양장본, 좋은 종이로 만듦새에 별 불만은 없다. 유일한 아쉬움은 다만 판형이 좀만 더 컸으면 하는 것, 그림과 글자가 작고 보기에 답답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