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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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도 매우 이채로운 유형이다. 그의 일반적 희극은 젊은 연인들의 짝짓기가 주된 제재로 삼는다. 엇갈린 상황과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랑에 성공하는 연인들. 여기에 작품 분위기를 쾌활하게 유지하는 해학적인 역할을 맡는 주변 인물이 존재한다. 여기서도 물론 펜튼과 앤 페이지의 결혼이 한 축을 형성하지만 핵심적인 제재는 폴스타프 경과 포드 부인, 페이지 부인 간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이다. 기존 희극에서의 주변부 인물과 사건이 이 작품에서는 중심부를 차지하고 흐드러지게 해학적 묘미를 자랑한다.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작품군 중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 까닭이다.

 

이 희극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폴스타프 경이다. 해학적 인물의 전형인 돈키호테가 사실은 매우 진지한 인물이라면, 폴스타프는 생김새와 대사 및 행동 모두에서 우스꽝스럽고 헛웃음을 자아내어 존재 자체로서 압도적 해학미를 자랑하는 인물이다. 늙고 뚱뚱한 몸에 단순하고 저속하며 일차원적 욕망에 매달리는 그의 모습은 미움보다는 오히려 동정과 연민을 자아낼 정도다. 그에 대한 다른 인물들의 평을 보면 그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 수 있다.

 

(페이지 부인) 어떻게 그 악마가 우리를 당신 애완용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거죠?

(포드) 말도 안 되지, 이런 소시지, 아마포 자루한테?

(페이지 부인) 퉁퉁 부은 뚱보한테?

(페이지) 늙고, 차고, 시든, 그리고 창자가 썩어 문드러진 자한테? (P.143, 5막 제5)

 

이러한 폴스타프 유형의 인물이 기존 희극에서 서민계급으로 등장하는 반면 여기서는 당당한 귀족으로 나타나는 점도 차이점을 보인다. 작품 내 유일한 귀족계급이 가장 희극적이며 이른바 망가지는 인물로 설정된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게끔 한다. 게다가 그의 화법과 행동은 전혀 귀족으로서의 품위는 찾아볼 길 없이 비속하며 분방하다. 오히려 페이지가 더 점잖고 이성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 대조적이다.

 

(폴스타프) 하 고년, 내 온몸을 훑는데, 어찌나 밝히던지, 그녀 눈의 식욕이 볼록렌즈처럼 햇빛을 모아 내 몸을 태워 버릴 것 같았다니까. (P.24-25, 1막 제3)

 

작품 속 등장인물은 펜튼과 앤 페이지를 제외하고 모두 실패를 맛본다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두 부인을 유혹하려던 폴스타프는 처참한 실패를 연달아 겪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부인의 외도를 의심하여 함정을 판 포드도 잘못을 부인에게 사과한다. 조카 슬렌더를 앤 페이지와 결혼시키려던 셸로우의 시도도, 역시 앤과 결혼을 시도했던 의사 카이어스도 마찬가지로 실패한다. 카이어스와 에번스의 결투를 회피시킨 여관 주인도 두 사람의 복수로 골탕 먹는다. 극 중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인물로 나오는 페이지와, 폴스타프를 망신시킬 정도로 재치가 뛰어난 페이지 부인도 동일하다. 둘 다 각자 딸의 결혼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둘 다 모두 실패다. 이렇게 모든 극중 인물의 행위가 실패로 점철되었다면 어둡고 슬프고 분노로 가득 차야 하지만 그럼에도 극은 화기애애하게 막을 내린다. 바로 희극정신의 반영이다. 망신살로 구겨졌던 폴스타프의 한방이 인상적이다.

 

(폴스타프) 기분 썩 괜찮구먼, 선생이 날 겨냥해서 특별히 사냥 자세를 취했는데, 화살이 빗나갔으니 말이오. (P.147, 5막 제5)

 

폴스타프의 압도적 존재감을 제외하고 작품에 희극미를 불어넣는 추가적 요소는 언어유희다. 웨일스인 목사 에번스의 불명료한 발음과 프랑스인 카이어스의 부족한 영어 지식을 놓고 다른 사람들은 놀리거나 속임수에 가까운 말장난을 일삼는다. 잠깐씩 끼어드는 이런 대목은 작품의 분위기를 바꾸거나 재미를 더하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슬렌더 역시 부정확한 어휘 사용으로 한몫을 더 하며, 미시즈 퀴클리는 제4막의 에번스의 교육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개입으로 뜻밖의 웃음을 담당한다.

 

(여관 주인) 그가 당신을 완전 개창나게 만들 거야, 골목대장.

(카이어스) 개창? 그게 뭐요?

(여관 주인) 뭣이냐, 그가 사과할 거란 뜻이오.

(카이어스) 맹세코, 그가 내게 개창 하겠죠. 맹세코, 나 그거 받고 말 거거든. (P.60, 2막 제3)

 

펜튼과 앤 페이지를 통해 작가는 다시 한번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일깨운다. 앤의 부모가 추진했던 남편감의 재력 대신에 앤은 사람 그 자체를 선택한다. 뜨뜻미지근한 구애 태도를 취하는 슬렌더가 앤에게 자신의 결혼 의사가 삼촌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점에서 작가는 슬렌더에게도 역시 긍정적인 면모를 부여한다.

 

(포드) 그래, 내가 그놈을 덮칠 테다. 그런 다음 내 마누라를 족치고, 페이지 여편네가 빌려 쓴 정숙의 베일을 확 벗기고, 페이지 놈을 멍청하고 제멋에 겨운 악테온, 오쟁이 진 사내로 까발리는 거야. 그러면 온통 벌어지는 난리통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겠지. (P.71-72, 3막 제2)

 

압권은 부인의 외도 현장을 덮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남편 포드가 우스꽝스러운 차림새의 폴스타프와 대면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도록 설정한 작가의 절묘한 솜씨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부인을 한없이 의심하며 광분하는 포드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수색하지만 오히려 조소를 당할 뿐이다. 이성과 사고보다는 본능과 욕망에 사로잡히는 인물로서 폴스타프와 포드는 페이지 부인과 포드 부인과는 대척점에 놓여 있다. 극 중에서 내내 종횡무진한 활약을 전개하는 재치와 정숙을 갖춘 두 부인의 자부심은 페이지 부인의 자평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표제와 같이 윈저의 두 부인이 맞다.

 

(페이지 부인) 우리가 한 일을 보면 알게 되겠지. / 아낙네들은 유쾌하지만, 정숙하기도 하다는 거. / 툭하면 들까불고 깔깔대지만 못된 짓은 안 한다는 거. / 옛 말 틀린 거 없지. ‘먹은 돼지는 꿀꿀대지 않는다.’ (P.108, 4막 제2)

 

김정한 번역본은 처음 읽는데, 매우 평이하고 희화적인 번역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작품해설은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에 대한 단편적 인상기에 가까워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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