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 로마편 4 델피시리즈 4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이현우 옮김 / 동인(이성모)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세네카는 키케로와 더불어 로마제국 초기의 유명한 철학자이다. 이런 그가 희곡을 여러 편 썼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비극만 9편을 남겼는데, 모두 그리스 비극을 모작하였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실제 상연용이 아니라 낭독용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선 무대 재현에 적합하지 않은 표현 양식을 사용하였다는 점인데 이런 점은 기술적으로 극복하기에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더 곤란한 점은 세네카의 박학다식한 그리스 신화 지식에 기인한다. 그리스 비극 작가와 달리 세네카의 자신의 비극에서 수많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언급하거나 인용한다. 따라서 어지간히 수준 높은 관객이 아니라면 무대에서 일회성으로 내뱉는 대사를 단번에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세네카의 비극은 자체의 문학적 가치보다는 후대 극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일컫는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르네상스 시대 극작가들, 즉 키드, 말로우, 셰익스피어, 웹스터, 코르네유, 라신느 등의 유명한 극작가가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우선 세네카의 문명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유명한 문장가였으므로 그의 라틴어 저작이 교습용으로 많이 보급되었을 것이다. 또한 희랍어로 쓰여진 그리스 비극의 라틴어 번역을 직접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네카의 극은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었으리라. 세네카의 비극적 특징 중 하나는 이전과는 달리 잔혹한 장면의 직접적 노출인데,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비롯한 후대 복수극에 등장하는 잔혹한 장면은 이의 영향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과 동일한 제재를 사용한다. 원작의 구성과 표현이 워낙 강렬하므로 자칫하면 평범한 모방으로 그치기에 십상인데, 세네카는 독자적 작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원작에 변용을 가하였다. 세네카는 친부모와 양부모의 관계를 달리 설정하고, 오이디푸스의 인간성을 한층 존경받을 만한 인격으로 만들어 그가 나중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관객에게 주는 충격을 한층 강화한다. 볼거리를 요구하는 사회적 수요에 맞추어 희생 제물의 적나라하고 잔혹한 상태 묘사(2), 오이디푸스의 끔찍한 자해 묘사(5)와 역시 이오카스타의 자살 장면(5)이 무대에서 행해지도록 구성한다.

 

(오이디푸스) 내가 너희로부터 사라질 때, 나는 / 이 땅을 집어삼킨 모든 역병을 함께 데려갈 것이다. / 오너라, 가혹한 운명의 여신들아, / 오너라, 모든 질병의 음침한 혼령들아, 검은 역병아, / 부패야, 미친 절망아! / 나와 함께 가자! / 너희 같은 길잡이들과 동행한다면, / 더 할 수 없이 즐겁겠구나! (P.89-90, 5)

 

무엇보다 세네카의 오이디푸스가 소포클레스의 주인공과 비교하여 두드러진 점은 구세주로서의 의연함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만, 그가 감당해야 할 저주를 회피하지 않는다. 자신의 희생으로 나라가 정상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저주와 고통을 감내하리라는 당당함은 관객의 눈물보다는 오히려 박수를 끌어낼 만큼 영웅적이다. 그에게서 세상의 모든 악의 대속, 인류를 위한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주제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이다. 오이디푸스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숙명은 그에게 친부를 죽이고 친모와 결혼하도록 몰고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을 피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예언의 굴레에 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 운명 앞에서 어떤 영웅도, 어떤 노력도 소용없이 신의 의지에 따라 처리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 그것은 인간이 오랜 세월 겪은 회피할 수 없는 비극의 가혹함과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감내할 수 없는 슬픔을 중화하기 위한 나름의 장치이리라.

 

(코러스) 내 마음대로 내 운명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 있다면, / 내 인생의 항해, 부드러운 바람 타게 하리, / 내 배의 돛대 흔들리지 않게 질풍과는 맞서지 않으리. [......]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때마다 / 인간은 언제나 위험의 경계선에 서게 된다네. (P.79, 4)

 

한두 가지 인상적인 대목을 추가로 언급하련다. 4막에서 노인은 오이디푸스에게 출생에 대해 깊숙하게 파헤치지 말도록 경고한다. 비밀이 밝혀졌을 때 드러나게 될 후폭풍이 자칫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다며. 이때 오이디푸스는 위험에도 진실을 추구한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세상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그것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출생 비밀은 더는 개인적 영역의 차원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오이디푸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에는 그냥 놔두는 것이 옳다. / 허나, 절박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따져봐야 하는 것이며 / 그렇다고 해가 될 일은 없다. (P.76, 4)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성인이 된 네로 황제는 폭정을 행하는 데 있어 세네카의 존재가 눈에 거슬렸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에게 조언하지만 그는 결국 자살을 명령받는다. 3막에서 예언자에 의해 역병의 원인이 밝혀지지만 오이디푸스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크레온과 티레시우스가 왕권을 노리고 음모를 꾸민 것으로 오해한다. 이때 크레온은 이렇게 외친다. 사실 훗날 세네카가 네로 황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크레온) 그러나 폭정을 휘두르는 왕은 / 두려움에 떠는 백성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 두려움이란 말이 그 저자의 머릿속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P.66, 3)

 

소포클레스의 원작의 인기에 비해 극작가 세네카의 명성은 미미하여 존재감조차 없다. 구성과 표현의 예술성 면에서 원작보다 못하고 여러 요인으로 상연하기가 어렵다는 후대의 비판도 있다. 막상 이 작품을 읽어보니 비판받은 부정적 요소는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수용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 무대 관람이 어렵다면 최소한 희극 자체로서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세네카의 <오이디푸스>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는 의미에서 원작과는 다른 극적 긴장감과 구성적 역동성을 가지며, 혼돈과 극단의 상황을 노정하는 오늘의 시대 상황에 보다 근접할 수 있는 현대성을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P.94, 역자 후기)

 

테렌티우스의 희극과 마찬가지로 델피시리즈의 하나다. 작가 소개, 세네카 극작품의 주요한 특징, 소포클레스의 원작과의 비교를 통한 장면별 내용분석, 작품 이해를 위한 예제 및 모범답안 등이 특징적이다. 역시 영문판의 중역본이지만, 편집과 교정은 비교적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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