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베토벤 순례 거장이 만난 거장 8
리하르트 바그너 지음, 홍은정 옮김 / 포노(PHONO)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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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바그너가 베토벤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모두 5편을 수록하였는데, <베토벤 순례>와 마지막의 <베토벤>이 핵심적이며, 나머지 세 편은 음악회 프로그램 해설문 성격에 가깝다. 바그너가 베토벤을 얼마만큼 숭배하였는지와, 자신의 음악을 베토벤과 어떻게 결부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베토벤 순례

연령상의 차이로 인해 바그너는 실제 베토벤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역사적 대가를 방문하는 내용의 글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쓴다. 예술적 가치로서는 뛰어나지 않을지 몰라도 제법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도중에 마주친 영국인 때문에 여정과 방문이 꼬여버리는 설정과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라는 현실 자각 등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 두드러진 점은 바그너가 이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 깊은 함의 때문이다.

 

기악 작곡가로서의 압도적 성공에 비해 오페라 작곡가로서 베토벤은 <피델리오> 한 편을 거듭된 실패를 겪은 후 겨우 인정을 받게 된다. 바그너는 전무후무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는데 자신의 오페라를 악극이라고 칭한다.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하였다는 걸 강조하는데, 이것의 기원을 베토벤에게서 찾고 있다.

 

이제 이 세상에는 내가 다시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게 만드는 극본이 없네요! 만약 내가 정말로 원하는 오페라를 만든다면, 아마 사람들은 모두 도망칠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아리아, 이중창, 삼중창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처럼 오페라를 구성하는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요. [......] 진정한 음악 드라마를 쓴 사람은 바보로 여겨질 테고. (P.41)

 

베토벤은 진정한 음악 드라마를 쓸만한 대본이 없으므로 더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대신 합창이 들어간 교향곡을 작곡하였다고 바그너에게 말한다. 성악과 기악의 일치를 추구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앞으로 스스로 대본을 집필하게 될 바그너가 자신의 정통성을 베토벤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1846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보고서

저자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9번 연주를 거행하게 된 경과를 전반부에 기술하고 있고, 후반부는 이 곡에 대한 악장별 해설이다. 예산 부족과 청중 반응의 문제로 난항을 거듭하면서도 뚝심 있게 연주회를 밀어붙이고 대성공을 거둔 바그너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특히 프로그램 해설은 더없이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표현과 문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바그너 개인 및 당시 시대상의 성향을 알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앞의 글과 연계하여 이 교향곡의 기악적 및 성악적 요소 간의 관계를 다룬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 같은 시작으로 베토벤 음악의 결정적 특징이 분명히 드러났다. 앞선 세 악장에서 지켜오던 특성, 무한하고 불확실한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순수 기악의 특성을 벗어던진 것이다. 이제 음악 작품이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P.70)

 

3.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4.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5. 베토벤

이 책의 분량 절반을 차지하는 이 글은 베토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바그너가 베토벤 음악의 미학적 위대성을 탐구한 일종의 논문이다. 앞에 실린 글들과는 의도와 형식이 다르며, 내용도 난삽하고 두서없어 저자의 논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베토벤 순례>에서 제시한 바 있는 음악 드라마에 관한 본인의 주장을 한층 강화 발전시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바그너는 음악의 미학적 본질을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받아들여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음악은 인간의 꿈과 같은 근원적 내면세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여 현상 세계에 인식하도록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 형태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당대 음악이 본연의 숭고하고 순수한 상태”(P.127)라는 본질을 놓치고 표피적인 현상에 매몰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오직 유일하게 베토벤만이 바흐의 뒤를 이어 음악의 본질을 꿋꿋이 추구하고 있음을 밝힌다.

 

음악을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내면적인 꿈 이미지의 발현이라고 부른다면, 셰익스피어는 깨어 있으면서 계속 꿈을 꾸는 베토벤으로 간주할 수 있다. (P.169)

 

바그너는 셰익스피어를 높이 평가하면서 베토벤과 나란한 위상을 부여한다. 기악과 성악, 음악과 드라마를 결합하여 보다 고도의 예술 미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그너가 보기에 베토벤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사례가 9번 교향곡이다. 이 곡에 대한 그의 평은 숭배와도 같다. 물론 베토벤을 계승하여 이를 완성한 것은 바로 바그너 자신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베토벤의 음악 미학을 쓴 글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의 정당성과 위대성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의도도 지니고 있다.

 

한편 1870년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통일 독일 제국의 탄생을 목전에 둔 시기에 바그너의 애국주의적 내지 국수주의적 감정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 바흐와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숭고하고 진실한 음악이 우월한 독일 정신의 반향이자 산물이라고 시종일관 반복하는 대목은 어째서 그가 훗날 히틀러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는지 짐작케 한다.

 

음악가의 탄생뿐 아니라 독일 민족의 재탄생도 기념하라. 독일 군대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으로 베토벤의 의미를 채워보라. 베토벤 음악에 감동한 마음의 에너지로 독일 민족이 행한 업적의 힘을 느껴보라. 그러면 이 둘의 의미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민족의 업적과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의 행위가 진정한 독일 제국의 작품들을 확립하게 하라. 그러면 위대한 베토벤의 작품들이 독일 정신의 고귀한 업적을 이끌어 갈 것이다. (P.200)

 

이 글은 최근에 다른 번역본 - <베토벤 음악철학의 시도>(원당희 역) -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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