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1
염명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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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많은 예술가가 그러하듯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더 유명하게 된 화가다.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은 그저 자기 귀를 자른 미치광이 화가 정도로 더 기억한다. 이 책은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시리즈 중 하나인데. 청소년 대상으로 고흐의 생애와 미술 세계를 안내하고자 기획한 책이다. 일반적인 책보다 판형이 더 큰데, 주요 작품들을 고급용지에 올컬러로 보다 큼지막하게 수록하여 화집의 성격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며 고흐의 대표작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양면에 걸쳐 수록된 그의 작품들은 이러하다. 감자 먹는 사람들(P.48-49), 별이 빛나는 밤(P.116-117), 빈센트의 방(P.128-129), 실편백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P.162-163), 올리브나무(P.164-165), 실편백나무가 서 있는 길(P.170-171), 까마귀가 나는 밀밭(P.186-187). 단면을 차지하는 작품들의 목록은 해바라기, 자화상, 씨 뿌리는 사람, 탕기 영감의 초상, 가셰 의사의 초상 등등 몇 배나 숫자가 많다.

 

고흐 하면 흔히 인상주의를 떠올리는데, 의외로 그가 인상주의에 경도된 기간은 매우 짧음을 알 수 있다. 파리로 오기 전 그의 경력 초기는 책에서도 지적되었듯이 네덜란드 미술의 전통에 따라 어두운 색상으로 일관한다. 소재도 감자 먹는 사람들, 탄광 광부, 옷감 짜는 사람 등 가난한 노동자 계층을 주로 택하였다. 그의 후기작에서도 농부들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걸 보면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빈센트가 즐겨 그린 이러한 그림의 소재를 통해 이 화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가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그림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터입니다. (P.38)

 

그의 삶에서 중요한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그의 동생 테오인데, 동생이 아니었다면 고흐의 예술가 생활은 단명했으리라. 형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박봉을 쪼개 생활비를 보내준 테오. 형이 죽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갓난아기를 남긴 채 역시 세상을 떠난 테오. 죽어서나마 세상의 갈채를 받게 된 형의 뒤늦은 인정에 저승에서나마 기뻐했으리라. 그리고 고갱. 예술가들의 공동생활이라는 고흐의 꿈은 비현실적이다. 일반인들조차도 남들과 함께 생활하기 힘든데, 개성 강하고 유아독존적인 예술가들이 순수한 공동생활 공동작업을 한다? 그들의 짧은 동거는 고흐의 자해라는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으니, 차라리 함께하지 않는 편이 양자에게 나았을 텐데.

 

이 책은 고흐를 태양을 훔친 화가라고 평하지만 내게는 격정과 광기의 화가로 비친다. 그의 격정은 비단 후반부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부에서도 이미 드러난다. 탄광촌에서의 극단적인 전도사의 모습은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다. 사촌 누이에 대한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자 램프 불에 손가락을 태우는 고흐의 태도 또한 범상하지 않다. 격정적이고 극단적인 그의 행동은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르는 상황으로 악화한다.

 

빈센트는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인간의 무시무시한 열정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냥 열정이 아닌 무시무시한 열정은 무슨 뜻일까요? 아마 앞에서 말한 인간을 파멸시키고, 미치게 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열정일 성싶습니다. 빈센트는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어두운 열정을 허름하고 쓸쓸한 밤의 카페 내부에 빗대어 이 그림처럼 표현했습니다. (P.108)

 

<밤의 카페>에 대한 화가 자신의 해석이다. 아를르의 한밤중 몇 명의 손님만 자리를 지키는 카페에서 화가는 어떠한 무시무시한 열정을 발견하였을까. 혹 그것은 화가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환상의 연상일지도 모른다.

 

파리로 건너온 이후 그의 화풍은 강렬한 원색과 밝은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인상주의와 들라크루아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한낮의 그림은 확실히 과감한 색의 사용과 색상의 강렬한 대비가 두드러진다. 반면 밤을 소재로 한 그림은 어둡고 기괴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소용돌이치는 대기와 하늘,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꿈틀거리며 비틀린 나무들은 스스로 온전히 서 있지 못하게 된 화가의 몸과 마음을 반영한 게 아닐는지. 유명한 해바라기의 꿈틀거림조차도 왕성한 생명력의 뻗침보다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 같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생레미 요양원 시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실편백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이 무렵 그가 그린 실편백나무는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전에 비해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여 있거나, 여기에서 보듯 소요돌이치고 있습니다. 앞의 <추수하는 사람>에서도 보았듯이 일정한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형태는 이 시기의 큰 특징입니다. (P.160)

 

고흐는 극히 내성적이어서 타인과의 교류를 거의 갖지 못하였다. 가정도 없는 그가 타지에서 온종일 그림만 그려내는 장면은 성실한 화가의 이미지보다도 외로움에 갇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오로지 그림그리기로만 일관하는 슬픈 자화상을 떠올리게 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자신의 그림은 전혀 이해받지 못한 채로 남과의 대화는 단절되었고 한 가닥 기대하였던 고갱과의 공동생활도 처참한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제 그에게는 더는 버텨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음을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아 정말이지 우리는 오직 그림으로만 말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림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세상과 이야기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그림에 내 삶을 걸었건만 내 이성은 반쯤은 허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무렵에 발걸음마저 휘청거린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황금빛 밀밭 속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P.184)

 

성실한 화가 고흐가 남긴 그림은 모두 이천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그의 수많은 그림이 그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후대에 불후의 명성을 남기게 되었으니 인간 고흐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그는 성공한 셈인가. 그의 그림 못지않은 평판을 받은 게 그가 동생 테오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기회가 닿으면 그가 남긴 편지글들을 통해 그의 내면을 좀 더 가까이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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