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임현정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토벤에 관한 비교적 가벼운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큰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으며 다소나마 지적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책으로서. 저자는 피아니스트다. 수년 전 화제를 일으켰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의 연주자다. 그런 저자가 연주자로서 베토벤에 대해 어떤 얘기를 풀어놓을지 궁금해서다. 저자의 글 쓴 의도 또한 내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그러니까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을 논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그가 어떻게 영감을 주었는지, 삶 전반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음악학자의 시선에서 베토벤을 사유하는 책은 많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그를 조명한 책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P.4-5, 프롤로그)

 

이 책에서 가장 지적,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들을 사랑, 인생, 자연과 같은 테마로 분류하여 몇몇 작품을 딱딱하지 않게 풀어 설명한 부분에 있다. 저자는 소나타 14, 24, 27번을 사랑에, 소나타 16~18번을 영웅의 부활 암시로, 소나타 15, 21번을 자연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필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이야말로 한 천재가 스스로의 삶의 모든 양상을 표현하고 거의 회화적으로 묘사한 내밀한 일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때로는 숭고하게, 때로는 이상화되어, 그리고 자주 가슴에 사무치도록 현실적으로 삶의 모든 양상을 표현했다. (P.57)

 

물론 피아노 소나타 전체를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므로 한계는 있지만, 확실한 점은 베토벤의 음악을 절대 고전으로 신격화하고, 엄숙하고 딱딱하여 일반인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떠받드는데 저자가 반대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이들 작품을 작곡가가 자신의 삶을 음악에 투영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기존의 감성과 형식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기에 베토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이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 연주를 듣는다. 낯설면서 신선하다. 다소 급하게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 책에서도 말했던 템포 설정이 적용되어서이리라. 익숙하게 들어왔던 기존 대가들의 해석과는 방향이 다르다. 솔직히 나의 취향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개성적임은 인정하며, 과감한 시도는 좋게 생각한다. 예술을 위해 진지하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게 연주자의 자세라면, 그 노력을 호오와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대우하는 건 감상자의 몫이리라. 저자도 청자에게 이런 부분을 희망한다.

 

어떤 예술인을 평가할 때는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가 최선을 다했는지,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탐구하고 파고 들어갔는지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만들었다면 취향을 떠나서 진심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다. (P.107)

 

직전에 읽은 전기의 영향 탓인지 예술 영역이 아닌 베토벤의 인성 영역을 예찬하고 높이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공감도가 떨어진다. 그가 개인적 난관을 극복하고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사실과 예술가로서의 평범하지 않은 말과 행동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다만 예술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가 타인에게 보여준 잘못 - 특히 조카의 양육권을 둘러싼 은 변호의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바로 베토벤에 대해서 오로지 긍정적 면으로 시종일관하였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베토벤에게서 받은 커다란 영향, 그리고 애초의 저작 의도가 달라서라는 점을 알면서도 한번 언급해 본다.

 

어두운 환경을 디딤돌 삼아 운명을 극복한 베토벤을 보면서, 나 또한 스스로 더 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87)

 

베토벤의 당당함은 나에게 인생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내가 베토벤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조건없는 양심덕분이다. (P.205)

 

나는 베토벤의 끊임없는 투쟁을 보며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 갖고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P.207)

 

베토벤의 삶과 음악 세계의 전부를 이 책에서 알게 되기를 기대했다면, 결과적으로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지식 전달 위주의 목적으로 쓴 책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초심자를 대상으로 특히 베토벤이라는 인물의 삶을 음악과 연결하여 소개한다. 아울러 저자가 힘들었던 개인사를 극복하는 데 있어 베토벤이 미친 영향, 베토벤의 삶에서 저자가 찾아낸 장점 및 깨달음, 베토벤 음악의 성격과 올바른 해석 방법 및 연주자의 올바른 태도 등등을 군데군데 피력한다. 어찌 보면 베토벤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한 저자의 수상록에 가까우며, 끝 대목은 거의 인생론과 유사하다. 베토벤을 통해 행복의 본질을 깨우쳤으니.

 

제아무리 구구절절하고 정묘하게 서술해 봤자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은 직접 듣는 것만 못하다. 악곡의 주요 설명 대목마다 해당 음악을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연결되는 QR코드를 마련해 둔 점은 좋은 아이디어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베토벤의 곡이 아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도 저자의 연주로 접할 수 있게 하였음을 언급하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