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의 베토벤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바라본 베토벤의 삶과 음악
에드먼드 모리스 지음, 이석호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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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바흐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다. 오래전부터 그의 주요 작품들을 다양한 연주로 반복하여 감상하지만, 그때마다 새록새록 듣는 재미를 안겨준다. 확실히 음악가로서의 그의 역량은 대단하여 괜히 최고의 음악가로 평가받는 게 아니다.

 

로맹 롤랑의 전기로 그의 삶을 대강 훑어보았지만 미진한 느낌이 드는 건 20세기 초에 쓴 글이다 보니 현대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서다. 메이너드 솔로몬 또는 얀 카이에르스의 두툼한 본격적 평전은 쉽사리 도전하기 부담스러워 적당한 책을 찾은 게 모리스의 전기다. 저자는 전문적인 전기 작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고 하니 작가로서의 기본 역량은 인정받은 셈이다. 책 뒤표지의 보통의 독자를 위한 이상적인 베토벤 평전이라는 광고 문구는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저자는 베토벤이 위대한 예술가인 건 맞지만 위대한 인간은 아님을 여러 자료를 인용하여 보여준다. 번역자도 이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원제에 없는 인간으로서의라는 문구를 표제에 추가하였다. 베토벤의 인간으로서의 면모와 음악 해석은 기존에 그의 비서였던 쉰들러가 남긴 글과 자료에 많이 의지하였다. 쉰들러가 사실은 베토벤의 삶을 조작했음이 연구 결과로 밝혀진 게 1970년대였다고 하니, 우리가 아는 베토벤의 모습은 실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음악의 성인으로서 또는 영웅으로서 베토벤을 신성시하는 견해는 오히려 베토벤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 적합하지 않으므로 저자는 베토벤을 성인화하는데 반대하며 쉰들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성인전 작가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마당에 이쯤 해서 안톤 펠릭스 쉰들러를 소개해야 하지 싶다. 쉰들러는 다른 물고기에 붙어 그 피를 빨아먹는 칠성장어처럼 어떻게든 위대한 사람들 가까이에 붙으려 하는 특색 없는 젊은이 가운데 하나였다. (P.304)

 

이 책은 베토벤의 치부까지도 가감 없이 독자에게 드러낸다. 인간 베토벤은 약점이 많은 인물이다. 육체적으로 잘 알려진 난청 외에 근시였고, 각종 질병에 일생토록 시달렸다. 그의 연인들과는 플라토닉한 사랑만 거듭한 채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정욕을 달래기 위해 사창가를 들락거렸다. 후반부에서 상세한 경과를 밝히고 있는 조카의 양육권을 둘러싼 제수씨와의 법정 소송은 치졸함과 추잡함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의 행동과 글을 보면 과연 그가 정신적으로 온전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장엄미사> 악보출판을 두고 벌이는 출판업자 간 다중 계약의 음모 또한 제아무리 생활고에 항상 시달린 베토벤이라고 하더라도 금전적으로 타락하였음을 변호하기 힘들 정도다.

 

1813년부터 1820년 사이에 베토벤이 겪었던 개인사에서처럼 병치레와 돈 거래, 가족 간의 알력 다툼, 개인적 기벽 등이 온갖 하나로 범벅이 되는 걸 보고 나면, 당시 그가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과연 정신을 꽉 붙들고 있었을지도 우리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P.243)

 

그럼에도 우리는 베토벤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음악가에 치명적인 난치병을 앓는 것도, 사랑하는 여인과의 행복한 삶 대신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삶을 살아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오죽했으면 유서를 남겼고, 연인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는 부치지 못한 채 서랍 속에 묻었어야 했겠는가. 저자는 불멸의 연인의 정체에 관해 앞선 연구의 내용을 반영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못다 보낸 편지의 내용도 인용한다. 애절한 그의 심경이 참으로 안타깝고 저절로 동정심을 품게 한다.

 

누구도 베토벤의 육체적·정신적 괴로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남들 몰래 써서 감추어두었다가 그가 죽고 나서야 발견된 두 점의 유명한 문서가 이를 뚜렷이 보여준다. 1802년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1812년의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것이다. (P.15-16)

 

이 책은 한 유명한 예술가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저자는 인간적 약점을 지닌 한 천재 예술가가 시련을 극복하고 시대 정신을 선도하며 예술사에 불멸의 명성을 남기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베토벤의 예술을 향한 저자의 찬미와 탄복은 한결같고 진정이다. 그는 개인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에도 굴하지 않고 그것을 음악으로 통합하고 승화하여 더욱 높은 예술의 지향점을 아로새겼다.

 

대조와 갈등은 베토벤 예술의 본질적 특성이다. 베토벤은 평생에 걸쳐 막대한 역경에 맞서 싸웠고 엄청난 용기를 발휘하여 끝내 이를 이겨냈다. (P.15)

 

베토벤 음악의 거대성이 가지는 역설은 그것을 시간이나 데시벨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 한 마디로 베토벤은 현미경과 망원경을 넘나드는 공간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소리의 세포를 빚어내는 솜씨와 소리의 대성당을 지어 올리는 솜씨가 나란히 확고했던 것이다. (P.20)

 

저자는 몇몇 작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고 소개 및 분석한다. <요제프 2세 장송 칸타타>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무려 6면에 걸쳐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어 이채롭다. 오페라 <피델리오>는 잇단 참패와 더불어 이를 극복한 마지막 성공까지를 기술하면서 음악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한다. <장엄미사><교향곡 제9>의 성공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작곡과 관련한 보다 세부적인 사실을 알 수 있어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준다.

 

우리는 왜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는가?

 

베토벤의 음악은 모차르트풍의 음악과는 달랐고 언제나 다정하고 즐겁지만도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거기에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P.102)

 

그의 음악 역시 듣는 이를 뜻대로 주무르려는 측면이 강하다. 언제나 서로 대조되는 주제나 화음 덩어리를 강제로 하나로 묶고, 억지로 떼어놓고, 다시 쪼개어 더욱 혼란하게 만들고, 그러고는 다시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하나로 혼융시키는 음악인 것이다. (P.309)

 

베토벤의 음악이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다른 점은 개개의 악곡마다 독자적인 개성이 분명하며 작품에 자신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듣는 이는 누구라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 잘 모르는 곡이더라도 아! 이건 베토벤 음악 같은데 하는 느낌을 갖는 게 이런 연유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넘치는 영감에서 샘솟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시종일관 음악 전체에 흘러넘친다.

 

베토벤의 음악은 모차르트만큼 항상 영감이 넘치고 풍요롭지는 않지만, 음악적 영감에 이성적 논리구조를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확장 및 발전시켜 청자로 하여금 음악을 듣는 와중에 사고와 의지를 끊임없이 인식하게끔 하는데 이게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더욱이 중기의 음악이 구상화라면 후기의 그것은 추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의 음악은 한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계속 변화 발전한다.

 

난청에다 지독한 근시였던 베토벤은 자신의 닫힌 감각 기관들에 대해 불평하곤 했지만, 그의 음악의 음향은 그가 침묵의 저편에서의 삶에 적응한 이후로 오히려 더욱 풍성해진 것이 사실이다. (P.295)

 

베토벤 개인의 삶에 있어 청력 상실은 불행이지만, 그의 음악 세계와 후세 인류에게 그것은 아마 축복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가 보통의 음악가였다면 거친 역경에 맞서기보다 좌절하고 쓰러졌겠지만, 그는 맞서 싸우고 극복해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베토벤은 외면의 소리를 잃는 대신 내면의 소리를 얻었다. 구체성이 약해지는 가운데 추상성과 초월성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음에만 집중하였던 것이 음은 물론, 음과 음 사이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이런 위업을 성취한 음악가는 베토벤 이전에는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 없다. 그가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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