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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 위대한 투쟁 ㅣ 거장이 만난 거장 7
로맹 롤랑 지음, 임희근 옮김 / 포노(PHONO) / 2020년 11월
평점 :
베토벤의 음악을 알고 좋아한 지 오랜 시일이 경과하였고 명곡의 작품 배경과 해설을 통해 그의 삶도 대강 헤아렸다. 이제 새삼 베토벤의 생애를 알고 싶어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의 삶과 음악의 연관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조감하고 싶다는 바램과,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의 참모습을 다시금 살펴보고 싶다는 것
베토벤을 일컬어 흔히 ‘악성(樂聖)’으로 일컫는다. 9개의 교향곡, 7곡의 협주곡,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16개의 현악사중주곡, 7개의 피아노 삼중주곡,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5개의 첼로 소나타 등 그가 남긴 거의 모든 곡은 자체로 서양음악사에서 우뚝 섰으며 후대에 미친 영향력 또한 거대하다. 그가 남긴 족적이 너무나 명확하므로 일반인들은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존경하지 그가 난청(難聽)이라는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장애를 극복한 인물이라는 점을 자칫 간과하는 때가 많다.
말이 나온 김에 베토벤 작품 목록에서 Op.1(삼중주 세곡)만이 1796년 이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Op.2, 즉 첫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은 1796년 3월에 나왔다. 그러니까 베토벤의 작품 전체가 귀먹은 베토벤이 작곡한 것이라는 얘기다. (P.30, 각주)
위의 글에서처럼 베토벤의 주요한 거의 모든 작품은 난청 이후에 작곡한 곡들이다. 자신에게 난청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사람은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한 삶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우며, 사교적인 생활도 포기해야 하며, 스스로 자신 속으로 위축된 채 인생의 비참함을 한탄하며 지내기에 십상이다. 요즘도 그러할진대 1800년 전후 베토벤이 살던 시대를 떠올려보자. 게다가 그는 음악가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음악가는 매우 이율배반적 인상을 풍긴다. 그러면 그가 남긴 음악 유산이 결코 범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선(善)을 위해 고통받았던 위대한 영혼들을 말이다. 이 총서 ‘유명인들의 삶은 야심만만한 자들의 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불행한 이들을 위해 펴낸 것이다. (P.11)
저자는 초판 서문에서 이 책의 저작 의도를 분명히 한다. 그는 이 책이 “학문을 위해 쓴 책이 아니”(P.8)라고 개정판 서문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저자는 오히려 전기 작가들이 쓴 일반적인 베토벤의 전기에 비판적 견해를 나타낸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세밀한 자료들의 죽은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본질적 요소인 인물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놓쳤다고.
로맹 롤랑의 이 책에 대해 여러 비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베토벤을 역경을 극복한 영웅이라는 이미지로 지나치게 미화하였기에 인간 베토벤의 실체를 오히려 가리고 말았다며. 여기에 대해서 저자는 일찌감치 항변하였다.
나는 결코 베토벤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그의 면모 ‘전체’를 그리려 할 뿐이다. 베토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지닌 강력한 균형의 자연적 저울을 형성하는 이 과도한 대조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P.208-209, 부록: ‘1800년, 서른 살 베토벤의 초상’)
저자는 베토벤을 찬양한다. 때로는 그의 굴곡진 운명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가 삶에서 금전 면에서나 애정 면에서 행복을 성취하지 못하였음에 더없이 감상적 표현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으나 베토벤의 생애를 들여다볼 때 동정적이고 감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음악가 베토벤이 아닌 인간 베토벤은 딱한 삶을 살다 갔으니.
난 혼자였지. 완전히 혼자였어.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세상에 나서볼 수도 없었다. 나는 추방된 자처럼 살 수밖에 없었단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까이 가면 남들이 내 상태를 눈치챌까 봐 말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지. (P.92,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리라는 희망만 있을 뿐. 이 병만 아니라면 벌써 그리로 갔겠지! 오! 이 병에서 놓여나기만 하면 온 세상을 내 품에 안을 텐데! (P.111,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
고작 서른 살 무렵에 자살을 각오하고 유서를 남긴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야심만만하고 음악으로 세상을 정복하리라는 자신감을 지닌 그의 앞날이 이렇게 비참함에 빠졌을 줄 어찌 알았을까. 난청 장애가 남긴 영향과 후유증은 이렇게나 심대하였다. 사랑의 동반자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그는 독신의 처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그는 현실은 밝지 않았다. 우리는 베토벤이 슈베르트와는 달리 죽을 때까지 음악계의 거장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착각하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매우 가난하였고, 당대인들은 그의 작풍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조카를 둘러싼 가족사도 어수선하였다.
그런 베토벤이 인류문명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엄청난 성취를 이루고 후대에 영원한 유산을 남겼으니 그를 영웅이라고 칭하지 않으면 누가 영웅의 자격이 있겠는가. 저자는 오히려 반문할 것이다. 그로서는 찬미의 문장으로 끝맺음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떤 정복이 이만하겠으며, 보나파르트의 어떤 전투가, 아우스터리츠의 어떤 태양이 이 초인적 노력의 영광, ‘정신’이 일찍이 이뤄낸 가장 혁혁한 이 승리의 영광만 하겠는가. 가난하고 장애가 있으며 외롭고 고통으로 점철된 듯한 불행한 남자, 세상이 그에게 기쁨을 주길 거부하니 스스로 ‘환희’를 만들어내 세상에 가져다준 한 인간의 정신이 말이다. (P.87)
이 책은 베토벤의 생애를 다룬 본문 외에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와 친우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음악과 비평에 대한 베토벤의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전기 문학은 아니며, 그의 삶을 세세하게 포괄하기에는 분량적으로 짧은 편이다. 이러한 한계를 참작하면 거인 베토벤의 삶을 조망하기엔 충분하며, 독자는 저절로 저자의 감상에 젖어들게 된다.
한편 부록으로 로맹 롤랑의 다른 저서 중 일부 대목인 <1800년, 서른 살 베토벤의 초상>을 수록하여 다른 번역본과 차별화를 꾀하고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