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끼 사계절 1318 문고 18
게리 폴슨 지음, 김민석 옮김 / 사계절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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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현실에 머무를 때 비해 고난을 겪을 때 사람은 한층 빨리 성숙해진다. 옛사람이 교육적 목적에서 일부러 자식을 집 밖으로 내보내서 머물게 하는 것도, 멀리 여행을 보내는 것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브라이언의 사례도 의도치 않았지만 같은 결과를 거두었다. 캐나다 삼림지대에 불시착하여 어린 로빈슨 크루소가 된 채 생존을 위해 홀로 분투하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울먹이던 철부지 소년은 수십 일 만에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성숙한 소년이 되었다.

 

구사일생으로 호수에서 헤엄쳐 나와 거처를 만들고, 불을 피우고, 열매를 따 먹고 활과 작살을 만들어 물고기와 새를 사냥하기까지 브라이언의 눈앞에 닥친 현실은 가혹하다. 불시착에서 입은 부상, 지독한 모기떼의 습격, 큰 사슴의 막무가내식 습격과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까지. 거대한 늑대와 곰과의 조우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며, 스컹크의 강렬한 방귀는 오히려 해학적인 느낌마저 자아낸다. 모두가 브라이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다.

동기 부여를 해야지. 내 자신이야말로 지금 내가 가진 전부야. 뭔가를 해야만 돼.’ (P.56)

 

브라이언이 끝내 생존에 성공하고 구조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포자기하지 않고 행동에 나선 덕택이다. 그로서는 절망에 빠지고 자기연민에 좌절한 채 죽음을 기다릴 이유가 충분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한다. 육체적 활동에 집중하게 되자 침울하며 부정적 사고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되었으며, 실패를 통해 배우고 지속적으로 실력을 향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연민이 단지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자기 연민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소리내어 울다가 그쳤을 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는 계속 아팠고, 주위는 아직 어두웠고, 여전히 혼자였다. 자기 연민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P.81)

 

아무런 도구 없이 불을 피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한다는 것도 더군다나 경험 없는 소년으로서는 더욱 난감한 과제이다.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힘들 때 사람은 더없이 나약하고 의기소침하게 마련이다.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보인다. 브라이언 또한 그런 비참한 기분을 겪고 흐느껴 운다, 그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비록 브라이언은 자기연민이 쓸모없다고 말하지만 자기연민의 효과도 분명히 있다. 극도의 불안과 긴장 상태에서 울음을 촉발하여 마음이 안정되자 그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세상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토록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던 그를 무심한 비행기는 외면하고 그는 자살할 생각에까지 이를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 겨우 심신을 추스르고 장기전에 대비하여 거의 숙달된 경지에 이르러 홀로 사는 삶에 익숙해졌을 때 뜻하지 않게 구조의 손길이 다가온다. 불시착한 비행기 동체에서 간신히 건진 생존 키트의 풍성한 내용물도 미처 써먹기도 전에 말이다. 그의 반응이 덤덤하고 차분함에 오히려 구조자가 당황할 정도였다.

 

비행기가 브라이언을 발견하지 못하고 거 버리고 난 뒤 브라이언은 달라졌다. 좌절한 채 어쩔 줄 몰라하던 브라이언은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새사람으로 바뀐 게 한 가지 진실이었고, 다시는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또 하나의 진실이었다.

브라이언은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났다. (P.118)

 

새롭게 거듭난 브라이언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은 큰 사슴과 회오리바람의 습격이다. 이의 결과로 그는 몸을 심하게 다쳤고, 기껏 일구었던 거처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과거의 그였다면 다시 절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는 철부지 소년이 아니다. 그는 야생에서 홀로 살아남은 강인한 소년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 정말 달라. 나를 칠 수는 있지만 쓰러뜨릴 수는 없어. 날이 밝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야. 나한텐 아직 손도끼가 있어. 처음 불시착했을 때도 손도끼밖에 없었어. 덤벼, 덤비라고! 이게 전부야? 큰 사슴과 회오리바람으로 나를 치는 게 전부야?’ [......] ‘글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 모든 게 달라졌어. 난 변했어. 이제 나는 억센 사나이란 말이야. 난 지금 어느 때보다도 강인해.’ (P.150)

 

브라이언은 야생에서 문명으로 돌아왔다.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성장하였다. 홀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그의 모든 노력, 즉 감정과 생각, 행동은 그의 몸에 습관처럼 배었다.

 

많은 변화들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브라이언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신중하게 살펴보고 나서 반응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런 능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브라이언은 사려 깊은 사람이 되었는데, 그 때 이후로 말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P.183-184)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의 살아온 모습에 부모의 심정은 말할 나위 없다. 이혼한 브라이언의 부모 또한 모처럼 정다운 부부처럼 가족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그리고 다시금 이전으로 돌아간다. 브라이언은 아버지에게 말하려고 하였던 어머니의 비밀, 즉 자동차에 타고 있던 남자와 어머니에 관한 내용을 결국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다. 부모가 헤어질 수 있고,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자신이 조정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이다. 브라이언이 자연의 세계를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이 세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브라이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상당 부분 행운의 덕분이다. 계절적으로도 한겨울이 아니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 그리고 손도끼의 지분도 절대적이다. 그와 항상 함께했던 손도끼의 도움으로 브라이언의 야생 생활이 가능하였다. 로빈슨 크루소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어쨌든 도구의 인간이라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 도구 없이는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다. 도구의 힘으로 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브라이언이 갖게 되었던 희망.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손도끼였으니 이 작품의 표제로서는 합당한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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