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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의 시간 -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학입시를 둘러싼 미래와 성장 너머의 이야기
김보미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10월
평점 :
우리 사회에서 대입은 굉장히 민감한 교육적, 사회적, 정치적 이슈다. 한 사람의 대입 공정성 논란의 후폭풍이 작금의 정권 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입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주의 주장을 거침없이 토로하기에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도 빈발한다. 그 논란의 중심에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깜깜이전형 또는 금수저전형 등으로 온갖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여전히 입학사정관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문제는 늘 여기서 시작한다.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수록 잘못 알기 쉽고, 오해하기 쉽다. (P.57)
입학사정관이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용이한 대답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학생부를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개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실은 그들이 하는 구체적인 업무를 다 이해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입학사정관도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오로지 입학사정관 업무를 수행하는 유형을 전임사정관이라고 한다. 전임사정관은 전국에 수백 명 남짓한 매우 마이너한 직업군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들은 입학사정관을 잘 모른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이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 자질과 쉼 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대학 입학처는 원서접수 및 합격자발표 시기에만 바쁜 걸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저자는 그렇지 않음을, 일 년 내내 입학처는 입시 준비와 홍보, 시행과 후속 업무로 항상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마다 규모 및 전형유형에 따라 입학사정관의 필요성과 인원에 차이가 있겠지만 학생부 정성평가가 반영되는 입학전형에서 입학사정관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수능 100%로 신입생을 선발한다면 그때는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은 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생활 충실도로 신입생을 선발하자는 주장은 바람직하다. 수능 100% 전형의 문제점은 문제 풀이에 매몰되어 학교생활이 무의미해지고 학교가 학원화되는 경향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학교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과와 비교과활동을 장려하고 그것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한 후 대학진학에 활용한다면 꽤나 그럴듯한 장면을 눈앞에 그릴 수 있다. 반면 학생부위주전형에 비판적인 견해는 학교생활 초반에 방황하는 학생들이 재기회를 얻기가 어렵다는 점을 언급한다. 내신성적이 나쁘면 만회하기 어렵고, 비교과는 고교 시절 내내 꾸준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경쟁력에서 뒤처진다고.
학생부위주전형, 특기자전형, 논술전형 및 수능위주전형 등 모두가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해당 전형은 각각의 대상자를 타게팅하고 있다. 수험생 자신이 가진 강점을 토대로 전형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현실은 많은 학생이 자신의 강점을 확신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이 모든 전형을 다 준비하려고 하니 벅차기 그지없다. 게다가 대학별로 자유롭게 전형 구성을 하지도 못하고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전형이 쏠린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진학을 계획하는 수험생은 거의 무조건 학생부위주전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평가에서 지원학과와 전공적합성을 중시하는 경우 일찌감치 진로 방향을 잡지 못한 학생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학생부에서 꾸준하게 지원학과 관련 수업과 비교과활동을 꾸준히 할수록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신의 꿈을 고등학생 때 명확하게 설정하고 매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학생이 되어서도 졸업을 앞두고 여전히 갈 길을 몰라 갈팡질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생부종합전형도 궁극의 지향점은 아니라는 게 개인적 견해다. 당초 학생부 자체가 교육용으로 기재와 관리가 이루어진 것으로서 대입 진학용으로 의도한 게 아니다. 따라서 기재항목 자체가 진학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예도 있으며 입학사정관이 서류평가에서 보고 싶은 내용이 전부 들어있지도 않다. 고등학교 시기는 그 자체 독자적으로 교육목적이 있으며 완결된 교육 경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고교생활의 모든 것, 즉 교과와 비교과 활동 일체가 대입 진학을 위해 평가받는 구조라면, 결국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위한 중간다리 기능에 불과한 셈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수행평가, 정기고사, 동아리 활동 및 봉사 활동이 모두 대입의 목적으로 관찰되고 평가된다는 걸 알 때 학생들은 얼마나 심리적으로 피곤할 것이며 순수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저자는 현행 대입정책의 문제도 언급한다. 대표적으로 블라인드평가이다. 출신학교의 후광효과를 배제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지만, 불리한 교육 환경에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감안하는 걸 원척적으로 차단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자기소개서의 폐지도 대입 제출서류 중 유일하게 학생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한다. 우리네 입시정책은 부정적 이슈가 발생하면 무조건 금지시키기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앞으로 상당 시일이 흘러도 대입은 계속 논란을 낳을 전망이다. 모두를 만족하고 동의할 묘안은 솔로몬도 내놓지 못할 테니까. 더군다나 대입에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서 대입은 수험생 본인의 것만이 아닌 온 가족 전체의 사안이다. 특히 극성스러운 많은 학부모의 과도한 참여와 개입은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저자가 반복하여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도 대학진학 노력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고교와 대학에서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회도 학부모도 아닌 학생 자체가 탐색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그저 이 책을 통해서 입학사정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왜 그런 일을 해나가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212)
이 책이 갖는 의의는 입학사정관의 정체성과 그들의 역할과 책무를 세상에 알리는 데 있다. 입학사정관이 대입 현장에서 마주친 경험과 생각을 대중과 공유하고, 입학처에서 일하는 그들도 사회인이자 직업인이기에 갖는 애환을 세상에 풀어놓는다. 시중에 입학사정관이라는 명칭을 이용한 상업적 도서가 즐비한 가운데 이 책처럼 결이 다른 책은 더욱 뜻깊고 흥미롭다. 옆자리에서 나직한 어조로 차근차근 들려주는 듯한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멀게만 느껴졌던 입학사정관이 친근한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