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의 두 신사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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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에 따르면 일부 연구자들은 이 희곡을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이라고 간주한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구성상의 미숙성이나 개연성의 부족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면 다른 의견이다. 상기 근거는 비단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당대 작가들에도 상당히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므로 이것만으로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탈피한 게 우리가 아는 중기 이후의 셰익스피어이다.

 

두 신사가 두 여인과 맺어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비슷한 패턴의 희극이다. 여기서 관건은 배신이다. 사랑의 배신과 우정의 배신이 동시에 발생하지만, 다시금 원래 상태를 회복하며 행복한 결말이 성립된다. 배신자의 악역은 두 신사 중 한 명인 프로테우스가 담당한다. 그의 본디 성품은 더할 나위 없는 신사임이 친구 발렌타인의 대사로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배신하게 된 계기는 사랑이다. 사랑의 정표를 주고받은 연인 줄리아가 있음에도 그는 발렌타인의 연인인 실비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다. 본시 사랑은 맹목적인 현상이므로.

 

문제는 사랑과 더불어 양심마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는 실비아를 차지하기 위해 우정을 배신한다. 친구를 추방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이전 연인에게서 받은 반지를 그녀에게 선물로 주려고까지 한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실비아를 구한 대가로 그녀의 사랑을 요구하고 거부당하자 폭력으로라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획책한다.

 

(프로테우스) 사랑의 본질에는 위배되지만 / 폭력을 써서라도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실비아) , 하늘이시여!

(프로테우스) 폭력을 써서라도 / 당신을 내 욕망에 굴복시키겠소. (P.160-161, 5막 제4)

 

실비아를 강제하는 프로테우스의 눈앞에 발렌타인이 나타나고 그의 배신행위가 일거에 드러난다. 그러자 갑자기 프로테우스는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빈다. 발렌타인은 곧바로 그를 용서하고 우정을 회복하는 증거로 실비아에 대한 사랑을 친구에게 양도하려고 한다. 사랑보다 우정? 실비아의 마음은 어떻게 하려고? 극 중에 프로테우스의 배신을 격렬히 비난했던 실비아가 갑자기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발렌타인) 네놈이 친구라고? / 우정도 사랑도 저버린 비겁한 놈! / 그런 네가 친구라고? 배신자! (P.161, 5막 제4)

 

(발렌타인) 그럼 나도 받아들이지. 다시 한번 / 자네를 진실한 친구로 받아들이겠네. / [......] / 그럼 내 우정이 분명하고 솔직하다는 걸 / 보여 주기 위해, 실비아에 대한 / 내 모든 애정을 자네에게 양도하겠네. (P.162, 5막 제4)

 

다른 황당함 중에서도 최고 압권은 딸과 발렌타인에 대한 공작의 태도 변화다. 둘의 사랑을 인정 못 하고 발렌타인을 맹비난하며 추방령을 내린 게 공작 자신이다. 인제 와서 돌연 발렌타인의 훌륭함을 칭찬하고 실비아와 결혼을 대찬성한다. 산적의 두목이 된 발렌타인이 무슨 큰 공을 세웠다는 건지?

 

(공작) 머리 위에 별이 반짝인다고 / 감히 그 별에 가까이 가려 하다니! / 썩 물러가라, 천한 침입자! / 오만한 노예 놈! 아양 떠는 그런 웃음은 / 너처럼 천한 여인들에게 보여라. (P.92-93, 3막 제1)

 

(공작) 이제 내 선조들의 명예를 걸고 말하네. / 발렌타인, 자네를 여제의 사랑도 / 받을 수 있을 만한 훌륭한 인물로 생각하네. / [......] / 자네의 큰 공에 어울릴 새 작위를 내리겠네. / 자네는 신사요 좋은 가문 출신이야. / 내 딸아이를 가질 자격이 충분해. / 그러니 실비아를 아내로 삼아 데려가게. (P.165-166, 5막 제4)

 

결말의 이런 부분들이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의 근거이다. 긴장감을 점층적으로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잘 짜인 극은 제5막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실비아의 도망을 알아차린 후 뒤를 쫓아가는 세 사람 투리오, 프로테우스, 줄리아. 그들의 대상은 하나이지만 그들의 목적은 서로 전혀 다르다, 복수와 사랑, 그리고 방해. 그리고 마지막 장의 프로테우스와 실비아의 대결 장면은 절정인 동시에 대단원이다. 그런데 대단원에 접어들면서 극은 일거에 무너진다. 갑작스럽고 어이없고 황당한 끝맺음은 누가 봐도 희극을 빨리 종결시키고자 하는 애매한 조급함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용서와 화해와 행복한 결말을 향한 무조건적인 종결!

 

이 작품에서 두 신사보다는 두 숙녀가 더욱 돋보인다. 프로테우스와의 헤어짐을 견디지 못해 남장을 한 채 그를 찾아 나서는 줄리아.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의 배신을 목격하면서 너무나 비참함에 어이없어할 뿐인 그녀는 적어도 연인을 향한 사랑의 간절함에서 아름답다. 실비아는 어떤가. 발렌타인과 비밀 약혼한 그녀는 프로테우스의 비열함과 교활함에 굴하지 않으며, 아버지 공작의 결혼 명령도 거부한 채 가출을 감행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연인에 대한 사랑에 충실한 그야말로 사랑의 순결함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스피드) 우리 도련님이 굉장한 러버’(lover, 연인)/ 되셨는데, 어떻게 생각해?

(룬체) 언제는 그렇지 않았나?

(스피드) 늘 그렇다고?

(룬체) 네 말처럼 굉장한 러버’(lubber, 바보)란 말일세. (P.70, 2막 제5)

 

두 신사의 하인인 스피드와 룬체의 존재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어찌 보면 기쁨과 즐거움보다 슬픔과 아픔이 지배적으로 되기 쉬운 극 중 상황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온갖 언어유희와 재담은 긴장을 완화하는 동시에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으로서의 필수적 인물이다. 어릿광대와도 같은 그들의 재치와 해학이 없었다면 이 작품을 희극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확실히 셰익스피어는 말장난에 능숙하다. 말꼬리 잡기처럼 이어지는 언어유희와 더불어 엉뚱하게 이어지는 대화는 초기작부터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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