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연발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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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The Comedy of Errors

 

번역본의 표제는 다채롭다. ‘실수 연발또는 실수연발외에 헷갈려 코미디’, ‘착오 희극’, ‘오해 연발 코미디’, ‘실수연발의 희극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극의 내용을 반영하면 실수보다는 오해 또는 착오가 더 적확한 표현이지만, 이로 인한 실수가 빚어내는 해프닝을 염두에 둔다면 실수라는 표현도 무난하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초기작에 속한다. 전성기의 작가에게 발견할 수 있는 잘 짜인 구성과 개성 넘치는 인물, 긴장감 높은 극적 전개와 같은 요소를 동일하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작품을 무대에서 상연하면 쉴 새 없이 뒤바뀌는 인물들의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관객마저 머리가 얼얼해지고 말 것이다. 게다가 말장난과 더불어 때를 가리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기다란(무려 5면에 걸친다!) 농담을 주고받는, 특히 제2막 제2장에서 시라쿠사의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가 그러한데, 대목은 이 작품의 본질적 요소로서의 희극과 해학을 맛보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착오의 희극은 성립할 수 없다.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가 각각 쌍둥이라서 외모가 똑같다고 하지만, 살아온 지역과 환경이 다르므로 옷차림, 말투 및 태도 등이 분명히 구별될 터이므로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헷갈린다는 것은 지나친 설정이다. 다만 이 작품은 comedy. 표제에 대놓고 희극 또는 소극이라고 적시했으므로 작품도 장르에 충실하다. 여기서 독자는 희극 정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에서 팔짱을 끼고 지나치게 까탈스럽게 굴면 웃음은 사라지고 만다.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코미디로 너그럽게 봐주고 웃을 심신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라쿠사의 안티폴러스) 저분들은 /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모르겠어. / 저분들 말에 맞장구치면서 참아 보자. / 위험을 감수하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 보자. (P.52, 2막 제2)

 

주변 인물들의 착오와 오해에 대해 두 명의 안티폴러스는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어리둥절할 뿐이다. 특히 타지에 와서 모두가 아는 체하는 당혹스러움 가운데서도 혼돈을 부추기는 것은 시라쿠사의 안티폴러스의 모호한 태도다. 그는 아드리아나에 이끌려 함께 식사하며, 앤젤로가 전해주는 목걸이를 주저함 없이 받아든다. 그의 판단은 일단 상황에 따라가면서 지켜보자는 것인데.

 

(루시아나) 신과 같은 남자들은 여성들의 주인이요 / 지배자라는 걸 몰라? 만물의 영장으로 / 이 광활한 세상과 거친 바다의 지배자이며 / 물고기나 새보다 뛰어난 지성과 / 영혼을 타고난 인간이야. / 그러니 남자들 뜻에 따르는 게 좋아. (P.30, 2막 제1)

 

주인공들의 오인된 정체성에 기름을 붓는 것은 에베소의 안티폴러스와 아내 아드리아나 간의 불화다. 남편의 부정에 대한 의심에, 오해 연발로 인한 인물들의 배배 꼬이는 사건들로 부부 간 갈등은 증폭되고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품게 된다. 여기서 아드리아나의 비교적 평등주의적 부부관에 맞서 봉건주의적 부부 윤리가 강조되고 있는데 루시아나와 수녀원장은 여성의 복종을 강조한다.

 

시라쿠사의 드로미오의 희극 정신이 작중에서 유달리 돋보인다. 그는 안티폴러스와 틈날 때마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주인으로부터 농담이 지나치다고 핀잔을 들을 정도이다. 4막 제3장에서 보여주는 경관에 대한 풍자는 풍자가, 해학가로서 드로미오의 일면을 잘 드러낸다.

 

(시라쿠사의 드로미오)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해 주겠다고 속여 구속하고 / 쇠약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면서 / 죄수복을 입히고, 더 많은 것을 착취하기 위해 / 무어인들이 쓰는 창을 휘두르진 않지만, / 곤봉을 휘둘러 사기를 치면서 /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잡놈 말입니다. (P.97, 4막 제3)

 

마지막 막에서 헤어졌던 부부와 부자, 형제들이 모두 상봉하며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이지언은 사면을 받는다. 이렇게 모든 오해와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전형적인 희극답다. 게다가 이 모든 소동이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것 역시 전통적 미덕의 수용이다.

 

작품해설은 이 작품의 특성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작품은 가치관의 갈등이나 인물 대립보다는 착오와 오해를 기반으로 사건을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인물의 개성이나 가치관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들의 성격이 아니라 정체성 오인과 착오에서 생겨난 소동이 희극성의 근거로 작용하는 소극(笑劇)이란 말이다. (P.151)

 

어릴 때 집에 십여 권의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출판사는 동서문화사였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나름 열심히 읽은 기억이 있다. 이제는 읽었는지 아닌지도 가물가물해졌기에 올해 상반기에 셰익스피어를 본격적으로 탐독하자는 큰 목표를 정했다. 최종철 번역본으로 주요 작품을 읽고 이제 미번역본은 시기순으로 출판사, 번역자별로 선별하여 차근차근 나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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