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네버랜드 클래식 16
찰스 디킨스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표제보다도 주인공 이름으로 더 기억되는 작품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서는 한층 인기가 높다.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나서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 명작을 이제 새삼스레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역시 읽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소설과 타 장르 간의 차이점은 물론이고, 표피적인 줄거리가 아닌 원작의 의도와 표현을 음미할 수 있다.

 

, 그러나 스크루지는 맷돌 봉을 움켜쥔 손아귀처럼 그악스럽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였다. 스크루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남 등쳐먹기 좋아하고, 교활하고, 악랄하고, 치사하고, 탐욕스럽고, 추잡한 늙은이! 무정하고 냉정하기로는 쇠망치로 두들겨 대도 불똥 하나 튀기지 않을 부싯돌 같고, 음험하고, 제 생각만 하기로 치자면 꽉 다문 굴 껍데기 같다. 내면에 들어앉은 냉혹함 탓에 스크루지의 생김새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P.11-12)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을 이렇게 혹평한 작가가 달리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업에만 매달려 사랑과 이별하고 일체의 인간적 감정과 교우를 단절하는 스크루지. 가난한 이웃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거부하고 조카의 초대를 차갑게 거절하는 스크루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면서도 문득 요즘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스크루지와 대동소이할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게 세속적으로 성공의 왕도라고 인정받고 있으므로. 그렇기에 스크루지 영감은 평생을 그 길을 따른 것이리라.

 

스크루지가 바랐던 삶은 바로 그런 삶이었던 것을! 복잡한 인생의 길에서 이리 비집고 저리 비집고 해서 제 갈 길을 헤치고 살아가려면 인간적인 동정심 따위는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세상 이치에 밝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실속이라고 스크루지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P.13)

 

대다수 우리네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지 공휴일로 인식될 뿐이나 서구사회는 의미와 분위기가 이 작품에서처럼 확연하게 다르다. 예수 탄생의 의미, 그리스도가 세상에 설파한 교훈은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이다. 일 년 내내, 평생을 이를 실천하면서 살면 최선이겠지만 최소한 크리스마스 무렵만이라도 그 정신을 되새기자는 생각이다. 작중에서 이는 스크루지 조카의 말로 명료하게 표현된다.

 

세상에는 굳이 그 덕을 보지 않아도 그냥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참 많아요. 크리스마스가 특히 그렇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요, 크리스마스가 갖는 어느 한 가지 의미를 따로 떼 놓고 생각할 수 있다고 치고요, 크리스마스라는 신성한 이름이나 크리스마스의 유래에서 절로 우러나는 친절과 용서와 자비와 기쁨이 가득한 때라고 생각해 왔어요.” (P.18)

 

그래도 스크루지는 운이 좋았다. 개심 여부는 최종적으로 본인에게 달렸지만,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만과 타성에 물들어 주변의 관심과 조언을 곡해하고 거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외로움에 젖은 스크루지의 어린 시절, 그리고 가족의 온기를 유일하게 남겨준 여동생과의 추억이 남겨준 한 가닥 희망의 끈이 아니었을까.

 

과거 크리스마스의 유령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잊고 있던 젊은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과 교훈,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가게 만든 그의 잘못된 선택이다. 현재 크리스마스의 유령이 보여준 서기 가족과 조카네 가족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바라보면서, 여러 면에 걸쳐 작가가 길게 서술하고 묘사한 크리스마스의 유쾌한 분위기와 장면들. 일상적인 냉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아닌 감사와 축복을 보여주는 그들. 약했던 여동생을 연상시키는 가냘프고 연약한 꼬맹이 팀을 바라보는 스크루지. 그리고 스크루지를 향한 유령의 통렬하기 그지없는 비판.

 

하느님의 눈에는, 저 아이처럼 수백 만의 가난한 자의 아이들보다 네가 더욱더 쓸모없고 살리기에 적당치 않은 인간이니. , 신이시요! 나뭇잎에 붙은 벌레 같은 인간이, 굶주리고 있는 제 형제들 가운데에 쓸데없이 남아도는 인구가 있다는 소리를 하다니!” (P.120)

 

의외였던 점은 스크루지의 개심이 겉으로 표출된 시점이 현재 크리스마스의 유령과의 만남 이후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아무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회상되지 않는 미래의 불쌍한 인간의 실체를 아직 목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반복해서 자신이 변할 준비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유령들이 잇따라 그에 출몰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목적을 이해하고, 심지어 미래 크리스마스의 유령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르겠다고 할 정도다.

 

스크루지는 줄곧 마음 속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 보고 있는 환영 속에서 새 사람이 되겠다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P.156)

 

이쯤에서 그쳐도 충분할 텐데 디킨스는 스크루지를 왜 끝까지 미래의 유령과 동행시켰을까. 이왕 뺀 칼이니 휘둘러야 한다는 뜻은 아닐 텐데. 그것은 시체의 장면에서 명확해진다. 버림받은 시체의 정체를 예감하지만 인정하길 부인하는 스크루지는 변명하고 회피하고자 애쓴다.

 

유령은 그 흔들리지 않은 손가락으로 여전히 시체의 머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의 뜻은 알았습니다. 제가 할 수만 있으면 그 뜻을 실천하겠고요. 허나 제겐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어요.”

그러자 유령이 스크루지를 보는 듯이 느껴졌다. 스크루지는 몹시 고통스러웠다. (P.168)

 

자신의 암울한 과오와 비참하지만 엄연한 진실을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시체의 교훈은 스크루지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리라. 굳건한 토대 위에 차곡차곡 쌓은 개심과 신심이야말로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변함없이 초심을 지켜나갈 것이므로.

 

나 혼자만이 아닌 더불어 즐겁고 행복한 삶. 그것은 비단 크리스마스에만 국한된 정신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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