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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수업
조혜진 그림, 신현주 글, 김선욱 감수, 마이클 샌델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11월
평점 :
유명한 원저를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편집한 책이다. 많은 그림과 커다랗게 강조하는 글꼴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듯하지만, 각 장의 끝에 ‘마이클 샌델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원저의 내용이 압축, 요약된 대목은 분명 중학생 이상의 수준에 가깝다. 아직 원저를 읽지 않은 나로서는 이 책이 원저에 얼마만큼 충실하였을지 판단할 수 없다. 감수자가 꼼꼼히 봤을 테니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저자의 말처럼 원저를 읽기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고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매우 민감한 질문이다. 답변자의 가치관과 정치적 견해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에 토론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우리나라처럼 이념, 지역, 세대 간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구분되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공개하는데 더더욱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원저자는 이러한 공개적 논쟁이 바람직하다고 옹호한다.
의견 충돌의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을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을 미루거나 피해서는 안 됩니다. 정의에 관해 경쟁하는 여러 원칙들을 두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은 성숙하고 자신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원저자의 말’에서)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대한 주요한 견해를 크게 세 가지 소개하고 있는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제레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행복의 질적인 부분에 주목한 존 스튜어트 밀의 질적 공리주의가 그것이다. 공리주의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데 사회적 의사결정에 완벽한 동의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다수결의 원칙 또한 공리주의와 멀지 않다.
행복의 질은 개인마다 똑같을 수 없기에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사결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자유롭게 거래되고 교환되는 곳을 시장으로 보면, 자유시장주의자가 등장한다. 여기서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고 완벽한 정보가 제공된다면 모르겠지만, 시장의 무결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다. 원저자도 이렇게 언급한다.
흔히 우리가 시장에서의 정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선택과 합의를 강조해요. 바로 여기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어요. 사람들 사이의 선택과 합의가 정말 공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거예요. (P.87)
이어서 원저자는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소개하면서 존 롤스에 이른다. 그는 마이클 샌델에 앞서 ‘정의론’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자인데, 서가에 꽂혀 있는 두 사람의 책을 보면 뿌듯함과 동시에 갑갑한 심정이다. 샌델은 존 롤스의 정의의 원칙 중 차등의 원칙에 근거하여 미국의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의 정당성을 의제에 올린다.
우리 사회도 양성평등 또는 사회적 약자 배려의 차원에서 차등적 보상을 실행하는 정책을 실행할 때면 특히 근래 들어 굉장한 논쟁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구조적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조치가 역차별에 해당하는지는 이해당사자마다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지금 여기에서 피해를 보는 나는 앞서 말한 차별과는 관련 없는데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할 때 쉽게 용납하기 어렵다. 마이클 샌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닌 공동체 내에 소속된 개인의 의무로서 공동체주의를 제시하여 타당성의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나를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보는 연대의 의무는 아주 특별해요. 그 의무에는 우리가 떠안아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거든요. 이 책임은 역사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찾는 도덕적인 인식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우리를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보고 연대의 의무를 찾는 것이 정의로워 보입니다. (P.183)
공동체주의의 논거로 불만을 잠재울 수 있지만 완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공동체주의는 자칫 개인을 억압하는 집단주의화 우려가 잠재되어 있다. 원저자 또한 개인의 선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부언함은 이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개인의 선택에 있어 도덕성의 가치를 강조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정의가 도덕과 종교적 가치와 결부되어 있다면, 정의를 실현하는 방안 또한 도덕과 종교와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정의는 어떻게 보면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서로가 자신들의 대답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면 분쟁의 화약고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갈등 확대를 우려하여 정의에 대한 논쟁을 외면하고 회피할 것인지, 아니면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정면으로 정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할 것인지.
정치와 법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기에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는 정치를 해야 해요. 공동체의 삶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야 해요. 도덕과 가치를 고민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P.211)
마이클 샌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원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귀결에 이른다. 다만 그것이 실행이라는 현실적 과제와 맞닥뜨렸을 때 여전히 앞길에 커다란 어려움이 드리워져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