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반할 지도 - 박물관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고지도 이야기, 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알고 보면 반할 시리즈
정대영 지음 / 태학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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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박물관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고지도 이야기

 

어릴 적부터 지도를 좋아했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세계지도가 집에 있었는데, 전지에 그대로 베낀 기억도 있다. 요즘도 책이나 미디어에서 특정 도시나 지역이 소개되면 네이버 지도나 구글맵으로 찾아보곤 한다.

 

우리나라의 옛 지도하면 상식적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떠올린다. 나 역시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기껏해야 국사 시간에 배운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정도 추가될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뜻밖에 옛 지도가 많이 남아있음에 우선 놀라고, 옛 지도가 매우 다채로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세계지도, 전국지도, 그리고 지역지도 등. 휴대용 지도인 <수진일용방>와 특수목적 지도인 <삼남해방도><강화도이북해역도> 등도 있다.

 

오늘날 지도는 정확성과 사실성이 제일의 미덕으로 간주된다. 그런 점에서 옛 지도는 일부를 제외하면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오늘날과 옛날은 지도의 필요성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조선 시대만 해도 대다수 서민은 태어난 고장을 벗어날 일이 별로 없었다. 즉 지도의 수요가 미약하였고 일부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지도가 크게 발달할 동기가 부족하였다. 그럼에도 이미 서양의 과학적 지도가 유입되었으나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천하도, 천하고금대총편람도, 대청일통천하전도 등을 고집하였음은 주목할 만하다. 현실보다 관념에 치우친 편협한 사고와 인식으로 왜곡되고 퇴행한 지도를 낳게 한 낙후된 시대정신은 조선과 중국이 똑같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옛 지도는 저자의 설명과 같이 현실적인 지도와 회화적 지도로 나눌 수 있다. <대동여지도> 등과 같이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실성에 주력한 지도를 오늘날의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으나 아무래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회화식 지도가 자체로서 더욱 흥미롭다. 이는 지도인 동시에 한 편의 그림이니 기능성과 아울러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어서다. 오늘날 지자체에서 발간하는 관광지도 중에는 주요 포인트를 입체적으로 구현하면서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는 사례가 있는데 회화식 지도는 이와 유사하다. 소개된 <완산부지도>와 여러 지방지도가 여기에 속한다.

 

과거의 아름다운 옛 지도를 무조건 찬미할 수는 없다고 본다. 미적 요소에 대한 높은 평가는 후세의 관점일 따름이다. 정확하고 사실적인 지도의 기본 요소를 충족시킨 가운데 심미성을 부가하였다면 예술성이 한층 돋보였겠지만 이를 결여한 아름다움은 당대의 기술과 지식의 역부족을 드러내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여기에 옛 지도의 허실이 있다. 그럼에도 회화적 지도는 현대의 기능적이며 과학적인 지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중의 관심을 유인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 안에는 상상과 사람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관련한 역사적 왜곡은 단지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운 것이 어쨌든 그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진 바탕에는 지도를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긍정과 부정의 인식이 병존한다는 의미이리라. 그런 열악한 시대적 배경에서도 지도 제작에 헌신한 선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무척 뜻깊고 흥미롭다.

 

[정상기]의 지도는 조선 후기에 폭넓게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경준, 정철조, 황윤석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지도를 고쳐 나갔으며, 정상기의 아들과 손자, 증손자 역시 끊임없이 수정을 했다. 그야말로 지도 제작의 르네상스가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김정호가 있었다. (P.86)

 

저자는 이중 정철조와 황윤석의 교류를 특별히 소개한다. 그리고 하백원이란 인물도. 남쪽 시골에서 나 홀로 세계지도와 조선 전도를 그려 낸 그의 노력은 단지 호사가의 것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사서삼경과 시문을 달달 외우고 써 내려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인정받던 시절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초심을 유지하고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그들에 대한 저자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한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나의 길을 가겠다는 말. 수많은 고지도 제작자들도 그러했으리라......그들이 당대에 부귀영화와 인정을 원했다면 이런 일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들의 헤아릴 길 없는 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P.182)

 

옛 지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야 마땅하다. 우리 역사, 특히 고대사를 보면 지도와 지리에 대한 인식 부족의 경우를 가끔 접하게 된다. 과거의 지리와 지금의 그것이 동일하다는 무언의 가정이 발견된다. 과거의 평양이 지금의 평양인지, 지금의 강릉이 옛날에도 여전히 동해안의 지역인지는 엄정한 지리 고증을 통해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깊이 있는 역사 연구와 이해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연구부터 느리지만 꼼꼼히 선행되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발걸음은 행정구역을 모두 표시한 정밀한 역사 지도의 완성이라 생각한다(P.160).”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 책은 옛 지도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일깨우고 다양한 옛 지도를 알리는 데 목적을 두었다. 소개된 지도가 좀만 더 크고 지도의 내용 자체에 대한 설명이 좀만 더 상세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후속 저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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