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 프로메테우스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모에 학원은 요즘 말로 대안학교이다. 토토처럼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 수업과 체험학습 위주의 학교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에 대안학교를 모색한 고바야시 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셨다는 점은 전혀 의외다. 게다가 철저한 군국주의 체제에서. 한편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임에도 퇴학을 요구하는 점은 매우 비교육적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다. 토토의 부모가 당시로서는 서구적으로 열린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토토의 장래는 암울해졌을 것이다.

 

도모에 학원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누리는 토토를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떤 심정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토토를 부러워할까 아니면 이상한 나라의 별세계를 바라보듯 무심하게 받아들일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는 걸 손꼽아 고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지만 도모에 학원이라면 가능하겠다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부터 공부하면 되는 곳. 일과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되면 자연 산책이 날마다 가능한 곳,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는 것으로 식사가 재밌어지는 곳,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농부가 일일교사로 직접 농사 수업을 가르치는 곳, 아이가 화장실 용변을 뒤엎어도 스스로 처리하게끔 하는 곳, 다리가 불편한 아이도 운동회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는 곳. 도모에 학원은 이런 곳이다. 이 학교를 운영하는 고바야시 교장의 교육관이기도 하다. 여기에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리드미크 수업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나간다.

 

리드미크는 이런 식으로 몸과 마음에 리듬을 이해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이것이 정신과 육체와의 조화를 도와, 이윽고 상상력을 깨우치고 창조력을 발달시키게 되었으면 하는 발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P.96)

 

도모에 학원이 초등학교니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안학교가 필요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그나마 수업 진도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덜할 테니. 중학교나 고등학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다. 아직까지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의 낙오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반적인 경로로는 대학진학을 도모하기 어려운 곳도 사실이다. 사회적 인식도 당사자 자신의 생각도 비슷하리라.

 

요즘 교육의 본질을 되짚어보는 일이 많다. 대학진학, 그것도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게 삶의 목표가 되는 게 마땅한 건지. 정상적인 학교 수업이란 미명 하에 수행평가와 과제평가의 짊에 허덕이며 학교생활기록부에 안 좋은 내용이 기록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생활. 대학진학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자신의 진로를 발견하지 못한 아이에게 참다운 학창 생활의 방향은 무엇이 올바를까. 다수가 따라가는 길을 맹목적으로 좇아가도록 요구하는 게 사회와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이 맞는지 등등. 그 과정에서 아이의 행복과 즐거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무조건 대학진학 이후로 넘기고 꾹꾹 참으라고 하는 게 타당한가.

 

토토는 지갑은 찾지 못했어도 만족스러웠다. 제 힘으로 이렇게까지 찾아보았으니까. 실은 그 만족스러움 속에는 교장선생님이 자기가 한 행동을 야단치기는커녕 신뢰해 주었으며, 또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었다는 충족감이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당시의 토토로서는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P.58)

 

토토를 비롯한 도모에 학원 출신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어린아이를 아이로 간주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것을 아이들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깨닫는다. 그런 선생님과 학교를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모에 학원은 너무 일찍 핀 꽃이었다. 일찍 핀 꽃은 찬란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아픔과 희생의 과정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참된 봄이 다가오는 법이다. 아쉽게도 고바야시 선생님은 화재 이후 제2의 도모에 학원을 재건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학교 모델이라고 하겠으니 도모에 학원을 운영하는 교장으로서 노심초사가 컸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였으리라.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부족하나마 고바야시 선생님이란 존재, 그가 아이들을 얼마나 큰 사랑으로 대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P.230)

 

그렇다. 아이들이 더 큰 존재로 쑥쑥 커나가기 위해서는 곁에서 물을 주고 가꾸는 정성이 필요하다. 부모와 교사의 관심과 칭찬은 아이가 어떤 곤경에도 굴하지 않고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미혹과 갈등의 순간에도 올바른 방향을 놓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타를 제공해 준다. 도모에 학원의 다채로운 교육방식은 물론이지만, 토토가 무엇보다도 강하게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 사실, 인정과 존중이었다.

 

저로서는 <, 정말은 착한 아이>라고 끊임없이 말씀해 주셨던, 이 한 마디가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만약 도모에 학원에 다니지 않았고, 고바야시 선생님도 못 만났더라면 저는 아마 무엇을 하든 못된 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콤플렉스에 고뇌하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 어른이 되었을 것입니다. (P.230)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볼 때 토토와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훗날 떠올려보면 뭐 특별하고 대단한 교육철학을 전개한 게 아님에도 아, 나를 믿어주시는구나 하는 그 느낌이 학교에 정을 붙이고 안착할 수 있던 계기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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