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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 ㅣ 사계절 1318 문고 118
최나미 지음 / 사계절 / 2019년 1월
평점 :
교통사고로 엄마가 사망한 이후 석균이는 학교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아빠와의 대화도 꺼리며 낯선 이가 집안에 들어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품으며 정상적 식사를 마다한 채 햄버거 등의 급체로 숨이 막히기 일쑤다. 작품 초반부에 독자가 석균에게 갖는 태도는 유보적이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동정적 감정이다. 엄마와 사이가 돈독한 만큼 심적 충격도 컸을 테니까. 그럼에도 석균이의 반응이 지나치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이번에도, 너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P.65)
엉뚱한 할머니의 등장과 석균 가족과의 티격태격이 있지만 그래도 평이하게 전개되나 싶던 작품은 한 통의 소포 배달과 함께 요동친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엄마의 휴대폰과 함께 발견한 문자메시지 하나. 석균이는 이것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은 재빨리 망각하는 편리한 기제를 갖고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자구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의식의 맨밑에 가라앉아 자신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석균이가 6학년 시절의 사진 사건에 대해 처음에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태까지 독자는 석균이를 피해자로 인정하였는데, 이것이 한순간에 뒤바뀐다.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친구들과 피해자의 시선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연락을 끊고 전화번호를 바꾸며 졸업앨범을 버리려 하고 초등학교 시절의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새출발하고자 하는 숨겨진 이유를 비로소 드러난다.
“네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거, 나는 믿어. 하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엄연한 결과가 있고 피해를 본 사람이 있잖아. 무엇보다 넌 피해자가 아니고. 당사자는 그 일로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어.” (P.141)
독자는 인정한다. 석균이가 직접적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할머니도 석균이의 진심을 믿는다. 그는 단지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일까 추리한 결과의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그는 지목당한 친구를 비난할 의도도 없었고 다른 아이들의 몰지각한 괴롭히는 행위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비난받는 당사자가 당당하게 항의하고 이의를 제기했다면 더 빨리 가라앉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석균이가 억울해 하는 이유도 납득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모순된 변명임을 그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다.
“아들, 만약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누군가 힘들어졌다면, 그런데 그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어?”
“아빠가 기억에 없는 일이라고 자긴 책임 없대? 진짜 어이없다.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괜히 그러는 거야, 사과하기 싫으니까. 안 봐도 알겠다.” (P.160)
애초에 사진의 당사자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을 때 사과하였다면 사안은 이렇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석균이의 엄마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말은 쉽지만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수치심과 함께 무너진 자존감, 거기에 사죄 이후의 후속 처리에 따른 대가 등은 더더욱 사과를 망설이게 만든다. 어른도 그러할진대 아이들에게 마냥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이제 지난 1년간 석균이의 생활을 되돌아 볼 때, 석균이의 은거가 단순히 엄마의 사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미 세상과 절연하려는 퇴행적 성향을 지닌 석균에게 엄마의 죽음은 기폭제 역할을 한 게 아니었을까. 스스로 구축한 굴 속에 틀어박힌채 아무도 참된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위장 전술을 사용하는 것. 그래서 도우미 아주머니는 물론 고모조차도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 물론 이 모든 행위가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잘 생각해라, 피한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거 아니다.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이 상태로 두고 떠나는 건 도망가는 거나 다름없어. 그런 곳이 낙원일 리도 없고.” (P.153-154)
석균의 용기는 친구 가람이와, 무엇보다 유사한 아픔을 겪은 할머니의 도움이 크다. 아빠의 진심어린 고백의 영향도 있다. 당장 모든 상처가 아물 수 없다. 언젠가 상처가 낫더라도 흉터자국을 없애버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할 용기를 냈다는 것, 용서와 화해를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적어도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고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할머니의 말처럼 회피한다고 해서 있는 일이 사라지지는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