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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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장 문제작이다. 작가 당대에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을 텐데 이것을 보면 문학 해석에 있어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예술의 외양을 한 꺼풀 벗길 때 내면에 드리워진 인간성의 진정한 의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원제보다는 <베니스의 유대인>이 표제명으로 보다 적합하다. 아마 말로의 작품명과 유사성을 꺼리려는 조치일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작품 내에서 사건의 핵심인 동시에 유이하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서 샤일록의 압도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바사니오와 안토니오는 유감스럽게도 그다지 매력적인 주인공이 못 된다. 샤일록과 포셔에 비교하면.

 

극 중에서 샤일록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로 나온다. 샤일록에 대한 안토니오의 미움은 그가 우선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유대인은 종교적으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이들을 향한 탄압의 결정판이 나치 히틀러임은 자명하지만 역사적 배척은 뿌리 깊다. 일상적인 생업을 가질 수 없게 된 그들이 금융업에 매진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극 중에서 샤일록은 고리대금업자로 비난받지만 그의 구체적 영업 행태는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에 대한 안토니오의 비난 대사만 등장할 뿐이다. 안토니오의 비난이 당대에는 정당하지만 현대의 시각에서는 터무니없는 비난에 불과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시각이라면 금융업은 존재의 의의를 상실한다. 결국 안토니오의 비난은 근본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의 소산이다.

 

(샤일록) 저자는 우리의 신성한 나라를 미워하고 / 상인들이 운집한 곳에서도 나와 내 장사와 / 정당한 내 소득을 이자라고 부르면서 / 욕을 했어. 내 민족이 저주를 받더라도 그를 용서 않으리라! (1막 제3, P.28)

 

(샤일록) 당신은 날 오신자, 무자비한 개라 하고 / 내 유대인 저고리에 가래침을 뱉었는데 / 그 모두가 내 것을 사용하는 대가였죠. (1막 제3, P.31)

 

(샤일록)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 없어요? 유대인은 /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3막 제1, P.69)

 

작품 곳곳에는 유대인 차별과 멸시에 대한 샤일록의 억압되고 축적된 분노를 표출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누구라도 샤일록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분개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결국 안토니오를 향한 샤일록의 증오를 유발한 사람은 안토니오 자신이다. 그를 파멸시킬 욕심에 샤일록은 무리수를 감행하였고 그것은 포셔의 판결 덕분에 실패로 돌아갔다.

 

이 작품에서 유대인 차별을 강화하는 설정은 더 있는데, 샤일록의 딸 제시카다. 그녀는 기독교도 남자와 사랑에 빠져 가출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재물을 갖고 도망치며 이에 대한 죄의식은 없다. 게다가 유대인으로서의 아버지를 부인하고 오히려 비난한다.

 

(제시카) , 아버지의 자식임을 부끄러워하다니 / 내게는 이 얼마나 가증스런 죄인가! / 하지만 내가 비록 혈연으론 딸이지만 / 성향은 물려받지 않았어. , 로렌초, / 당신이 약속을 지키면 이 갈등을 끝내고 / 기독교인, 당신 아내, 둘 다 될 거예요! (2막 제3, P.47)

 

재판에서 진 샤일록의 전 재산은 몰수당한다. 베니스 시민의 정당한 생명을 노린 범법자로 취급받은 것이다. 이 혐의의 적법성 여부는 극 중에서 시비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쨌든 샤일록이 그나마 일부 재산이나마 보전할 방법을 안토니오는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안토니오) 그 조건은 둘인데, 우선 이 호의의 대가로 / 그가 곧장 기독교 신자가 될 것이며 / 또 하나는 죽었을 때 소유한 모든 것을 / 사위인 로렌초와 딸에게 선물한단 기록을 / 여기 이 법정에서 남기는 것입니다. (4막 제1, P.114)

 

여기서 안토니오는 변함없는 유대인 혐오를 보여준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등은 인간미 없고 박제된 성격을 꾸준히 유지한다. 바사니오가 포셔와의 결혼을 추진하는 의도의 순수성을 확인해 보자. 작품의 주인공이 그들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샤일록과 다른 의미에서 매력적인 주인공인 포셔는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다. 남편에게 순종적인 전통적 여성으로서의 포셔와, 남편 친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변신한 법학자 발타자르로. 발타자르는 샤일록의 계약서 맹신주의에서 약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빌미로 재판을 뒤집는 데 성공한다. 샤일록의 과도한 욕심이 부른 일대 참사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흠결을 찾아낸 발타자르, 즉 포셔의 날카로운 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샤일록과 그라티아노 모두 발타자르를 공정하고 박식한 판관으로 거듭 평가한다, 전혀 다른 의미에서지만.

 

(샤일록) 계약서에 그렇게 지정돼 있습니까?

(포셔)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오? / 그쯤은 자선으로 하는 게 좋을 거요.

(샤일록) 그런 건 못 찾겠소, 계약서엔 없소이다. (4막 제1, P.108)

 

바사니오는 재판 도중에 감정에 북받쳐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하고야 만다. 제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린 우정이 소중하다고 해도 아내와 사랑보다도 더 우위에 두는 발언은 예나 지금이나 금물이다. 이를 듣게 된 포셔가 발끈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결혼반지를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후일담은 결혼 생활에서 바사니오에 대한 포셔의 우위를 예고하는 서막이다.

 

이 작품은 단지 희극이라고 하기에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작품 해설에서도 역자가 언급하였듯이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향한 우리의 평가는 다면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악인임은 분명하지만 비난보다는 오히려 동정의 마음을 갖게 되는. 유대인이라는 자리에 지금의 시점에서 흑인, 이슬람인 등 주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놓인 사람을 대치하면, 세상을 향한 샤일록의 외침은 안토니오와 포셔 부부, 그라티아노 부부, 로렌초와 제시카의 유쾌하고 행복한 장면보다 독자에게 더욱 진한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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