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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평점 :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아련한 기억에 따르면 당시 나는 이 작품을 옳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직은 세상사를 이해하기 위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여 이름값에 휩쓸린 매우 표피적인 감상에 불과하였다. 지금은....? 의외로 생소하거나 이질적인 요소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뫼르소의 사고와 행동, 그에 대한 사형판결이 대체로 이해된다고나 할까.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런 게 나한테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고 말했다......나는 결코 인생을 바꾸지는 못하며, 아무튼 모든 인생이 가치있고, 여기서의 내 인생도 전혀 마음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답했다......내 인생을 변화시켜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P.54)
뫼르소는 타인과 굳이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자기 자신의 일상생활에만 관심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발전시키거나 반추하는 모습은 없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그의 덤덤한 태도, 마리의 결혼 의사에 대한 그의 건조한 반응. 그렇다고 그를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삶에 특별한 매혹과 애정을 지니지 못한 그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노력이다. 단조롭지만 평온한 일상의 안분지족과 허무주의적 삶의 태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그는 휘청거리고 있다. 그는 선구적인 현대인이다.
타인의 죽음이, 어머니의 죽음이 나한테 뭐가 중요해요? 당신의 하느님이나 사람들이 선택하는 인생, 그들이 고르는 운명이 나한테 뭐가 중요해요? (P.143)
뫼르소의 현대인으로서의 특성이 요즘이라면 그런가 하고 수용되겠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1940년대라면 사정이 다르다. 전통적, 기독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뫼르소는 별종이자 이단이다. 뫼르소의 생각과 행동은 사회 구성의 근본을 뒤흔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의 반응에 대해 예심판사와 검사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격렬하게 추궁하는 사유는 분명하다. 썩은 싹을 초기에 도려내지 못하면 전체로 퍼져나가 걷잡을 수 없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을 본능적으로 예감한다. 아랍인의 살인 자체는 오히려 경미하다. 그의 반사회적, 반기독교적 가치관이 더욱 중죄다. 뫼르소에 대한 사형판결은 이로써 정당하다.
저 인간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마음의 공백이 하나의 심연이 되어 사회가 궤멸할 수 있을 때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P.122)
내가 한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규칙들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는 아무런 유대가 없으며, 또 내가 인간 심성의 기본적인 반응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것에 따를 줄도 모른다고 그는 공언했다. (P.123)
뫼르소는 햇빛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되었다고 해명한다. 이 무슨 생뚱맞은 터무니 없는 변명이란 말인가? 당대 사람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그의 주장을 배척한다.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기에. 독자라면 그의 해명에 타당성이 있음을 수긍하게 된다.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햇빛은 의식의 명료성, 이성의 합리성을 흐물거리게 한다. 그 순간 무언가에 의한 번뜩임과 충동적인 선택은 사후에 제아무리 뒤돌아봤자 설명은 요령부득이다. 뫼르소로서도 햇빛 외에 다른 사유를 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 내리쬐는 햇빛은 강렬한 생명의 의지인 동시에 그 “작렬하고 파열하는” 맹렬함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자 동시성을 지닌 존재다.
제2부는 법정 드라마로서 제1부보다는 훨씬 흥미진진한데, 당대 프랑스의 사법제도의 허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검사와 변호사가 주고받는 공방전을 떨어져서 바라보는 뫼르소의 태도는 청중 및 독자와 다름없다. 법정은 뫼르소와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다투는 뫼르소는 뫼르소에서 타자화된 다른 뫼르소다.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뫼르소의 부도덕성이다. 장례식장에서 카페오레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 것처럼 당대의 관습이나 도덕률에 위배된 행동을 한 그 자체가 되돌릴 수 없는 중죄의 증거로 제시된다.
나는 엄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나는 잠을 잤다, 나는 카페오레를 마셨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뭔가가 법정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내가 유죄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P.108-109)
뫼르소는 항소를 포기한다. 항소로 구할지도 모르는 구차한 삶에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부의 면담도 거절한다. 종교는 자체의 독선성으로 그에게 특정 가치관을 강요하므로 그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가 신부의 옷깃을 거머쥐며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 대목은 웅변적이다. 이렇게 뫼르소는 사회와도 종교와도 타협을 거부한다. 그에게 남은 길은 오로지 사형집행, 즉 죽음뿐이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이야말로 처절할 정도로 솔직하고 진실한 영혼 아니겠는가.
사형 집행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요컨대 그가 정말로 한 인간의 이해관계가 걸린 유일한 관심사다는 걸 어째서 나는 몰랐단 말인가! (P.131)
내게 남은 일은 나의 사형 집행일에 구경꾼이 많이 와 주기를 바라는 것, 그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P.145)
이 작품에서 유독 주목되는 인물이 있는데 법정 안의 젊은 기자다. 그는 재판 내내 그를 주시하는데 사형판결이 확정되는 순간에 그를 외면한다. 뫼르소는 그 기자에게서 자신의 분신 같은 인상을 받는데, 또한 작가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다. 카뮈가 기자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자. 법정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작가는 뫼르소를 이해하고 있음을 기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은 소설 본문 외에 50면에 가까운 방대한 주석을 추가하고 있다. 단순한 부가 설명에 불과한 예도 있지만 작품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깊이 있는 해석을 추가하고 있어 매우 유익하다. 또한 40면에 이르는 풍부한 작품해설도 새삼 독자가 이 작품의 심층적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이방인>같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면 매우 유용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