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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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초판 간행 이후 20년 이상 꾸준히 대표적 교양 과학서로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책으로 개정증보 2판까지 나왔다. 400면에 가까운 분량 중 커튼콜이라는 명칭으로 10년 주기의 증보 후기를 상당 부분 덧붙이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본문 내용 자체를 건드리기 어려우므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전한 과학지식 또는 저자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커튼콜에 담고 있다.

 

이 책은 과학서이지만 과학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복잡한 세상을 조망한다. 자연과학에서 구축한 과학적 방법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적용하여 참신한 관점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다방면의 최일선 현장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로써 저자는 독자의 시선도 기존의 제한적 틀을 벗어나 더 폭넓은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도 복잡하고 카오스적이다. 앞으로 물리학자들은 이 혼돈스러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 속에 숨은 질서와 법칙을 찾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다. (P.299)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많고 예측도 어렵기에 자연과학자들은 인문 사회 분야에는 분석의 칼을 들이밀지 않았다. 20세기 후반부터 복잡계 과학이 대두되면서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은 세상을 일종의 복잡계로 간주하면 과학적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사회법칙, 예술문화 및 사회과학 제 분야의 사례들은 그 연구 성과라고 하겠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예를 기억 차원에서 언급한다.

 

머피의 법칙은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말해주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법칙이었던 것이다. (P.47)

 

언어학에서 지프의 법칙, 경제학에서 파레토의 법칙, 베키의 법칙과 무수한 멱법칙. 이들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불평등과 불균형이다. 경제나 맥주 소비, 웹페이지 사용 빈도, 도시 인구 등 시스템은 다르지만 각 시스템은 특정한 몇몇 개체에 대부분의 숫자가 몰려 있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의 역할(빈도)은 미약하다는 것이다. (P.142)

 

결국 생명체는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불규칙하지만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태를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제 심장 박동은 규칙적이다라는 상식은 과감히 던져버리자. (P.156)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무지와 맹신은 양자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학의 시대에 인정하지 않고 외면만 하는 행위는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숨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바람과 인정 여부에 무관하게 이미 과학 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과학 자체를 만능으로 여기고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과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론으로 도저히 해결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접근방법의 일환으로 과학적 시각과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증권시장에 뛰어든 물리학자들 덕택으로 시장은 더욱 정교화되고 규모는 팽창하였지만 동시에 불안정성과 위험성이 가중되어 금융위기를 가져왔다는 내용을 통해 수단으로서 과학의 한계와 제약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P.89). 즉 이 책은 과학 지식 자체와 성과를 독자에게 전파하여 교양 수준을 제고하는 목적도 있지만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적인 관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다양하고 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 따라서 과학적 사고방식의 의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더욱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혁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중요하다.

 

혁신은 엉뚱한 두 개념을 연결해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연결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과정이다. (P.350)

 

앞서 언급한 지프의 법칙 및 파레토의 법칙은 사회 체계 내 불평등과 불균형은 태생적이고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20 80의 구조가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면 자연과학은 모르더라도 개인적으로든 사회적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기서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의 차이가 시작된다. 후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고착구조를 개선하거나 깨뜨리기 위한 노력과 수단의 발견 내지 발명이 요구된다. 파레토의 법칙에 좌절만 하고 있다면 롱테일 법칙은 찾아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저자는 복잡계 물리학자로서 자연과학의 시선을 자연현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돌려볼 때 새로운 조망과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는 인문 사회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신성불가침한 고유한 절대 영역이 있다고 단단한 방어막을 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자연과학이 만능이라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문 간, 학제 간 소통과 협업이 무수한 변수들이 들어찬 복잡계로서의 세상과 사회 이해에 필요할뿐더러 그것이 연구자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윈-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은 인문·사회과학과 만나서 새로운 학문으로 거듭 태어나고, 사회과학의 주제에 자연과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접근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자연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를 전 사회적 범위로 확장해야 하며,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손에 테크놀로지의 연장을 쥐어주어야 한다. (P.313)

 

초판이 씌어진 지 오래되어 내용에 언급하거나 인용한 사례가 올드한 느낌이 있다. 젊은이들 중 O. J. 심슨 살인 사건을 아는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문화와 프랙털을 소개하는 장에서 서태지 헤어스타일을 연관시키는데 당대에서야 서태지가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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