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 할아버지 - 제3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2
김나무 지음, 강전희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음에도 의외로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하였는지 현재는 품절(절판) 상태다. 사유는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린이의 흥미를 끌기에는 극적인 사건이 부재하고, 작품이 내거는 주제 의식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어린이의 감성과는 차이가 있어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부모-자식 관계가 절묘하게 병행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살던 화자 영철이는 외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상경하여 부모와 함께 살게 된다. 가족 상봉이니 행복한 나날이 예상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영철은 생활에 급급한 부모에게서 따스한 관심을 받지 못하자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은 할아버지와 서서히 친하게 된 영철이는 오히려 그에게 일종의 가족애를 품게 된다.

 

베짱이 할아버지는 슬픈 가족사를 지닌 인물이다. 과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자식의 주변을 맴돌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의의를 찾을 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초라한 차림에도 상관없이 친밀하게 다가오는 어린 영철은 그에게 놓쳐버린 자식과도 같은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다. 아래는 베짱이 할아버지가 장님 아저씨에게 건네는 조언이지만, 실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주제 문장이다.

 

절대로 아이들을 포기하지 마세요.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P.51)

 

대학생 딸아이에게 무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는 베짱이 할아버지를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분홍우산을 건네주며 뒤돌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졸업식 날 초라한 꽃다발을 전달할 기회를 놓쳐 기운 없어 하는 그의 모습. 그가 영철이에게 털어놓는 옛날얘기는 회한으로 점철된 자화상이리라.

 

부모의 사랑이란 건 말이다......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엄하게 꾸중하면서 혼내는 사랑도 있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랑도 있을 테고, 잘 입히고 좋은 것 멕이는 사랑도 있을 테고. 그런가 하면......아무것도 못 해 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못난 사랑도 있지. 있고말고.” (P.113)

 

가족의 사랑은 물질적 요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고난을 더불어 헤쳐나갈 때 끈끈한 유대가 생겨난다. 그것이 온갖 어려움에도 가족을 맺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짱이 할아버지는 바로 이것을 몰랐기에, 그저 어린 딸아이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선택의 결과가 두고두고 회한을 남기게 되었다. 오늘도 그는 딸아이와 손주를 멀리서 바라보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낼 것이다, 평생토록. 늙어가는 그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므로.

 

문구점에서 편의점집 아들로 성장한 영철에게 베짱이 할아버지와의 우정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는 추억이다. 비록 한철이지만 영철은 그에게서 진짜 할아버지 못지않은 따스한 감정 교류를 하였으며, 영철과 부모가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는 영철의 친구였다. 할아버지의 비밀을 깨닫게 된 영철의 각오가 남다른 것은 이런 까닭이다.

 

할아버지의 슬픈 눈빛이 또렷하게 생각났습니다. 가슴 한쪽이 더욱 아렸습니다. 그러다 차츰, 나는 깨달았습니다. 베짱이 할아버지와 난 아주 특별한 친구였다는걸...... 나는 중요한 일을 한 사람만이 갖는 뿌듯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옛 친구의 비밀을 꼭 지켜 주겠다고...... (P.197)

 

이 작품은 첫인상과 주제 의식을 볼 때 얼핏 보면 진부하고 지루하게 비쳐질 여지가 많다. 실제로는 잔잔한 전개 속에 독자의 미소를 끌어낼 장면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이것은 성인 독자의 관점이다. 주 대상이라고 할 만한 초등학생 어린이 독자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이야깃거리를 한꺼번에 확 드러내 놓지 않고 실타래를 풀 듯 조금씩 조금씩 늘어놓는다. 이 작품을 통해 영철이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성장하듯이 어린이 독자의 내면도 나날이 영글어 가게 되기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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