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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이야기 ㅣ 시튼의 동물 이야기 6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6년 2월
평점 :
은여우는 붉은여우의 변종이라고 한다. 은여우로 불리는 까닭은 털빛이 검정과 회색이 섞여 있어 외관상 은색으로 빛나 보여서라고 한다. 은여우는 아름다운 모피 덕분에 사냥꾼의 집중적 관심 대상이 된다는데 그들로서는 반갑지 않은 관심이라고 해야겠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도미노 또한 은여우로서 숱한 사냥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택된 여우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겨울이 다가오면서부터였다......그 여우를 왜냐하면 그 귀족은 지금 자신에게 걸맞는 호사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었으므로. 겨울옷을 입고 서 있는 도미노는 장대한 은여우였던 것이다. (P.38)
인간의 눈에 비친 여우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인간과 영역을 접하면서 농장 등에서 손쉬운 먹잇감을 구하는 여우의 행태는 인간에게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활할 정도로 영리함은 그들을 잡고 싶어 하는 인간의 눈에 좋게 비칠 리 없다. 기존의 시튼 이야기에서도 여우에 대한 묘사는 부정적이거나 양가적 감정이 혼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이 작품 속의 도미노에 대해 작가는 시종일관 공감과 동정의 따스한 시선을 드리우고 있다. 도미노 부부가 합심하여 기러기 사냥에 성공하는 장면은 그들의 근육과 지성, 끈기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낸 성과로 상찬받아 마땅하리라.
이들 부부는 한몸이다. 새끼들은 잊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잊어야만 한다. 죽음만이 이들 부부를 갈라놓을 수 있다. (P.99)
여기서 도미노 부부는 일부일처제의 바람직한 전형으로 치켜올려져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짝에 헌신하는 장면을 작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들의 대대적인 여우 추적 대목을 보라! 추적에 지친 암여우가 위기 상황에 놓이자 도미노는 자신을 일부러 드러내어 모든 사냥꾼과 사냥개가 자신을 쫓도록 유도한다.
야생동물의 삶은 언제나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도미노의 인식처럼 낯선 짐승은 모두 적이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인간은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 그들의 잘못은 단지 인가 근처에 거주하는 데 있다. 아니, 사람들이 여우굴 가까운 곳으로 접근하였다는 게 보다 사실에 가깝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새끼 도미노. 모피를 탐내는 사냥꾼의 덫, 독, 그리고 사냥개. 무수한 여우들이 목숨을 잃는다. 우리의 도미노도 죽음의 목전에 다다른다. 작가의 외침을 들어보라! 이것은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 모두의 심경이리라.
오! 사시나무 골짜기의 강이시여, 최후를 맞을지도 모를 도미노의 흔적을 지켜 주세요. 울타리가 되어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P.129)
은여우의 생존을 단지 운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도미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십분 발휘했고 여기에 운이 더해졌을 뿐이다. 도미노 가족은 끝내 살아남았고 그것으로써 성공하였다. 작가가 아름다운 도미노 찬사를 말미에 덧붙인 것은 과연 응당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