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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ㅣ 그림이 있는 옛이야기 2
김원익 지음 / 지식서재 / 2019년 8월
평점 :
세 권째 북유럽 신화 개설서다. <에다 이야기>를 포함하면 네 권째인 셈이다. 덕분에 생소했던 신들과 거인들의 이름도 이제는 비교적 친숙해졌고, 북유럽 신화 체계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올 정도가 되었다. 이 책에서 기대하는 점은 두 가지다. 먼저 ‘그림이 있는’이라는 표제와 같이 풍요로운 도판이 주는 효과다. 아무래도 글자보다는 이미지가 이해도와 흥미도를 높이는데 유리한 게 사실이다. 다음은 저자다. 김원익은 그리스신화 전문가다. 신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소개하는 입장에서 북유럽 신화를 어떻게 다룰지 기대감을 품게 한다.
책의 만듦새는 매우 좋다. 특히 고급용지를 사용하여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데 컬러 그림 130점을 수록하기 위해 선택으로 보인다. 이 도판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만하다. 중세와 근대의 유럽인들이 북유럽 신화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일목요연하게 그림으로 생생하게 입증된다. 굳이 책 내용을 살피지 않더라도 그림만 보더라도 북유럽 신화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라고 하면 과언일까.
북유럽 신화는 크게 두 가지 줄기로 구성되는데, 세계 창조에서 라그나뢰크로 이어지는 신들의 이야기가 하나이고, 통상 반지 이야기로 불리는 뵐숭 가문과 니플룽 가문의 이야기가 다른 하나다. 이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싣고 있어 초심자가 북유럽 신화 전반의 구조와 흐름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이 책에 다소나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저자의 과도한 친절이라고 하겠다.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이 완전무결하고 논리적으로 구축된 신화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앞뒤 맥락이 맞지 않고 시간순서도 제멋대로 인 점을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작자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소간 과한 점이 있다. 작자 자신도 이를 인식하고 있어 머리말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북유럽 신화의 원전에서는 이야기의 단절이나 비약이 자주 보인다.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도 많다. 중요하지만 너무 짧은 이야기도 허다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만 했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필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런 빈 공간들을 채워 보려고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핵심을 해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잘못이 있다면 필자의 지나친 상상력 탓이다. (P.11)
기존 책들과는 전개와 해석을 달리하는 대목이 간혹 존재하는데 무엇이 더 원전에 가까운지, 더 올바른 해석인지 알 수 없다. 잘못하면 운문 에다마저 펼쳐 들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우려스럽다. 몇 가지만 간단히 살펴본다.
오딘 형제가 거인 이미르를 죽여서 세계를 창조하는 대목 중 이미르의 시체 구더기에서 난쟁이와 요정을 만들었다고 한다(P.29). 땅속의 난쟁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요정마저 구더기의 변신이라고 하니 의외다. 다른 책에서는 그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없는데, 확인이 필요하다.
북유럽의 신들이 단일 신족이 아니라 아스 신족과 반 신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전 단계로서 두 신족 간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오딘이 두 신족의 왕이라고 하면서 오딘의 통치 아래 두 신족이 존재한다고 기술한다. 그러면서 사이가 벌어지면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한다(P.38). 오딘이 신들의 왕이라면 누가 감히 왕에게 반역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전혀 별개의 두 신족의 결합과 최고신 오딘을 함께 연결하기 위한 무리수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앞서 읽은 최순욱의 책에서는 로키를 불의 신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김원익은 로키와 불의 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단언한다(P.83). 불의 신 로기를 로키와 동일시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로 이해할 것인지의 차이점이다. 로키를 신족이 아닌 거인으로서 장난과 말썽의 화신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지나쳐 마침내 신족과 등을 돌리는 존재로 해석할 것인가? 또는 로키의 불안정한 속성을 쉴 새 없이 형체를 바꾸는 불의 본질로 이해하여 그의 변덕스러운 본성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 대목은 조금 더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로키가 토르의 아내 쉬프의 금발을 잘라버려 발생하는 사건은 신들에게 여섯 가지 절대 보물을 안겨다 주는 해피엔딩으로 연결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로키가 대장장이 난쟁이들을 꾀어 신들의 보물을 만들게 하는 장면인데 앞선 책들과는 내용상 차이가 있다.
난쟁이들은 로키의 말이 별로 실속은 없지만 약간의 황금과 수고만 들이면 되는 일이었기에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P.128)
로키의 단순한 감언으로 난쟁이들이 이렇게 엄청난 보물을 만들어 신들에게 선물로 준다고 하는 설정은 신빙성이 미약하다. 두 대장장이 집단 간 자존심을 건 경쟁이라고 하는 게 보다 설득력이 높다.
토르와 티르가 히미르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서도 의문점이 존재한다. 우선 히미르와 티르의 관계가 모호하다. 티르는 히미르의 친아들인가 아니면 의붓아들인가. 친아들이라면 히미르가 티르를 죽이려고 그렇게 사납게 날뛴다는 게 상황에 맞지 않는다. 의붓아들로 보는 게 그럴 듯하다. 한편 토르와 요르문간드의 낚시 대결에서 요르문간드가 간신히 풀려난 게 누구 덕택인가 하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요르문간드 자신의 필사적 노력 때문이라고 하는데(P.172), 다른 책에서는 겁에 질린 히미르가 낚싯줄을 끊어서라고 풀이한다.
마지막으로 우트가르드에서 토르가 거인들과 힘 대결을 벌이면서 고양이를 들어 올리려고 애쓰는 대목을 보자. 토르가 끙끙거리며 온갖 힘을 쏟았지만 겨우 고양이 뒷발을 살짝 들어 올렸을 뿐이다(P.192). 이 책에서는 거인들이 이를 바라보며 조소를 날리지만, 이 고양이가 사실 요르문간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살짝 들어 올린 것만 해도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때 우트가르드-로키의 반응이 매우 심각해야 함이 마땅하다.
한편 뵐숭과 니플룽 가문의 수 대에 걸친 우여곡절은 잘 정리되어 ‘니벨룽의 반지’ 이야기 전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신의 손바닥에 좌우되는 영웅의 생을 포함하여 최고 신 오딘의 음울한 의지가 인간계를 완전 좌우하고 있어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