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곰 왑의 삶 시튼의 동물 이야기 2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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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두 편의 동물기 중 <회색곰 왑의 삶>은 이전에 읽었기에 비교적 친숙하지만 후자인 <샌드힐의 수사슴>은 이번에 처음 접하는 이야기다. 양자 모두 단독으로 발표되었고 시튼의 여타 동물기에 비하면 제법 많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회색곰과 수사슴의 삶의 단편적 면모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그네들의 희로애락을 긴 호흡으로 기술하였으리라.

 

1. 회색곰 왑의 삶

 

회색곰 왑의 일생에서 독자가 발견하는 특징은 우선 최상위 포식자임에도 어린 시절 그가 겪었던 고난과 고통이다. 어미를 비롯한 가족을 모두 잃은 새끼 곰은 무력하기 짝이 없고 그를 괴롭히는 모든 짐승은 그에게 결국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 우정을 기대할 수 없을 때 그에게 남는 감정은 오로지 분노와 증오일 따름이다.

 

무뚝뚝하고 까다롭고 난폭하며 성질 나쁜 왑의 일면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보호구역 안에서의 순하고 얌전한 회색곰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 연유도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야생 동물의 모습이 참으로 편린에 불과함을 강조할 뿐이다. 아울러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갖는 미덕과 존재의의이기도 하다.

 

이 보호구역 안에 사는 동물들은 사람을 피하려 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거나 공격하지도 않았고, 서로에게도 훨씬 더 너그러웠다.

평화와 풍요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P.79)

 

야생곰은 어떤 최후를 맞이할까?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거나 다른 곰과 영토싸움을 하다 부상 당해 죽기도 하고 드물게는 늙고 병들어 자연사할 것이다. 고독하지만 강력한 회색곰 왑의 권력도 영원하지는 못하니 그것 또한 자연의 순리라고 하겠다. 젊은 곰 로치백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제왕으로서 장렬한 전개를 바랐던 이들에게 왑의 최후는 기대에 반하는 것이었다. 독자는 동물 영웅을 기대하지만 왑의 선택은 고요와 평안이다. 병약하고 노쇠한 왑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일까?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죽음. 야생 동물로서는 드물게 찾아오는 선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왑의 선택에 실망해서도 안 되고 실망할 수도 없다. 일생을 쉴 틈 없이 치열하고 숨 가쁘게 살아 온 그로서는 최선의 죽음일 것이므로. 독자의 값싼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일생을 망칠 수는 없으니.

 

2. 샌드힐의 수사슴

 

사냥꾼에게 쫓기기는 오히려 수사슴이 더욱 심하다. 회색곰 사냥은 자칫 사냥꾼의 목숨을 교환해야 할 중대사인 반면 겁 많은 사슴은 여러모로 스포츠로서 사냥에 적합한 대상물이다. 게다가 수사슴의 뿔은 얼마나 멋진 장식물이던가. 작가가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냥이라는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과 대상으로서 동물의 관계다.

 

타 존재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의 정당성은 자기 존재의 생존 차원에 기인한다. 수많은 자연 다큐에서 매번 보게 되는 살상 또한 먹이사슬의 불가피성으로 자연법칙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우리네가 기르고 도축하는 가축들도 인간의 생명 유지라는 관점에서 일부의 맹렬한 반대주장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얀이 샌드힐의 수사슴을 쫓고 잡으려는 목적은 단지 정복욕과 소유욕이다. 그것의 힘차고 아름다운 몸뚱이에서 피를 뿜어낼 때의 쾌감을 즐기고, 빼어나게 멋진 뿔을 영원히 박제하여 소유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오로지 나 혼자만의 것으로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 사냥꾼이라면 대체로 유사한 동기와 목적을 갖게 마련이다. 동물에게 생명체의 감정을 가져서는 뛰어난 사냥꾼이 되지 못한다. 언제 어느 순간이건 오로지 대상물로서만 인식해야 한다.

 

얼마나 당당하고 생명력이 넘쳐나는가! 존귀하고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임금이었다. 가죽 옷을 입고 그에 어울리는 왕관을 쓴......그 티 하나 없이 맑고 평화로운 눈동자를 보자 총을 든 암살자는 용기를 잃었다. (P.130)

 

얀은 성공적인 사냥꾼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감정적 측면이다. 인간과 대등한 개별적 생명체로서의 존재를 의식할 때 누가 감히 살상을 감행할 용기를 갖겠는가. 죽이고자 하는 대상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더구나 이 수사슴처럼 왕자다운 당당함과 고귀한 품격을 갖춘 동물에게 말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동안,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는 동안 얀은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 얀은 눈을 마주치면서 녀석의 생명을 빼앗을 자신이 없었다. (P.158)

 

얀이 진실로 수사슴을 통해 성배를 발견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다. 3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발자국을 통해 깊은 통찰을 얻게 될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얀은 절대로 그 수사슴을 죽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시튼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냥꾼이 실패의 쓴맛을 본 사례라고 하겠는데, 그럼에도 사냥꾼 자신도 글쓴이도 독자도 모두 흐뭇한 마음으로 실패를 축하하게 됨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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