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럼포의 왕, 로보 - 내가 만난 야생 동물들 시튼의 동물 이야기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시튼 동물기를 다시 읽는다. 이전에 읽은 책이 아동용으로 분류된다면 이번부터 읽게 되는 책은 일반독자를 위한 것이니 보다 시튼의 원형에 가까울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야생 동물 이야기를 다룬 시튼의 첫 번째 책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 수록된 대표작이라 할 만한다. 수록된 이야기 목록은 아래와 같다.

 

1. 커럼포의 왕, 로보

2. 세상에 둘도 없는 까마귀

3. 달려라, 솜꼬리토끼

4. 내 괴짜 친구, 빙고

5. 여우의 눈물

6. 야생마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7. 낮과 밤의 두 얼굴, 양몰이 개 울리

8. 아름다운 메추라기, 빨간목깃털

 

시튼이 등장시키는 동물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늑대, 여우, , 토끼, 말은 물론 까마귀, 메추라기(보다는 들꿩이 적절하다)처럼 들짐승과 날짐승은 물론, 반드시 야생 동물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직간접으로 겪은 동물들을 각각의 고유한 개체로서 존중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 시선이 동물들을 개별 종으로 환원하여 각자의 독자적 개성을 박탈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자연사가 동물들을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다루는 바람에 많은 것을 잃었다고 믿고 있다. 열 쪽 분량의 소묘로 인간의 관습과 풍습을 얼마나 그려 낼 수 있겠는가? 그 정도 분량이라면 차라리 어느 위인의 삶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하려는 동물들에게 적용한 원리이다. (P.7)

 

여덟 편의 이야기에 대해 하나하나 기술하지는 않으련다. 이전에 읽은 논장 판 5권 세트에 전편이 분산 수록되어 있으며 개별적 촌평은 다시 읽어보아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시튼의 태도는 분명하다. 그는 동물 사냥에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기술의 도움을 얻지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상대 동물에 맞서는 사냥꾼에게도 정당한 찬사를 보인다. 그가 안타까워하고 동정하는 경우는 단순한 재미와 탐욕으로 무자비하게 목숨을 앗아가는 인간의 몰지각한 행위와 그에 따라 속수무책으로 스러지는 생명의 고귀함이다. 비교적 객관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시튼도 이때만큼은 분노를 표출한다.

 

야생 동물들에게는 정녕 아무런 도덕적. 법적 권리가 없는 것일까? 단지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그토록 심한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 (P.312, ‘아름다운 메추라기, 빨간목깃털’)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한치의 방심은 곧 생명 박탈로 이어진다. 야생은 엄혹하다. 비록 연민의 마음을 갖지만 그것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임을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 종의 생존은 다른 종의 생명을 대가로 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피식자의 목숨은 시한부에 가깝다. 새끼일 때 잡아먹히거나 운 좋으면 늙고 병들었을 때 그러할 뿐. 그래서 시튼의 동물 이야기는 항상 슬픈 결말을 맺는다. 이 책의 까마귀와 솜꼬리토끼, 야생마와 메추라기의 최후는 비극적이다. 포식자도 마찬가지다. 늑대와 여우조차도 슬픔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튼은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최후까지 생존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불쌍한 영혼들에게 헌사를 바친다. 그는 감히 영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불쌍한 솜꼬리토끼 몰리! 몰리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자신들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다 간 수많은 영웅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했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몰리가 행한 전투는 매우 훌륭했다. 몰리는 뛰어난 동물이었고, 그 바탕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122-123, ‘달려라, 솜꼬리토끼)

 

어디 몰리뿐이겠는가! 자유의 상실 대신에 기꺼이 죽음을 감내한 로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벼랑 아래 몸을 던진 야생마. 새끼의 구출이 불가능함을 깨닫자 노예의 삶 대신 죽음을 안기는 어미 여우의 모성. 그들 모두가 진정한 동물 영웅이라고 할만하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로보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여우는 눈물 흘릴 필요가 없으며 야생마도 자유롭게 평원을 달릴 수 있었으리라. 아름다운 메추라기도 총탄에 숨이 끊어질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들이 문명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생활 영역을 확장하여 자연의 경계를 침범할수록 야생은 위축되고 멸절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야생 동물의 삶을 더욱 비극으로 만든 것은 인간의 존재라고 하겠다. 동물 이야기를 읽으면서 갖게 되는 양가적 감정이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