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여행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신들의 이야기
최순욱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앞서 읽은 <에다 이야기><북유럽 신화>는 전자는 원전이고, 후자는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신화 이야기라는 각자의 미덕이 있다. 다만 북유럽 신화를 더 깊이, 더 넓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로서는 다소간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무척 시의적절하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의아하지만 지적 호기심에 충만한 열정적 아마추어리즘의 산물은 건조한 프로페셔널보다 대중성과 흡인력에서 대체로 우위에 있다고 언급하고 싶다. 오히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가려운 점을 적절히 잘 긁어주고 있다라고.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평설이라는 점이다. 산문 에다와 운문 에다를 고루 활용하여 북유럽 신화의 전반을 훑고 있으며, 전체로서 신화의 일관된 틀과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의 창조에서 라그나뢰크로 이어지는 신화의 선형 체계를 존중하되, 그리스 신화 또는 인도 신화 등 타지역의 신화도 소개하고 비교함으로써 보편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신화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의 판타지 소설과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에 깃든 북유럽 신화의 요소도 건드리고 있다. 북유럽 신화의 초심자, 그리고 심화 이해를 희망하는 독자에게는 유용한 책이다. 후반부에는 북유럽 신화의 파생으로서 반지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는데, 게르만 부족의 내부적 다툼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이 제재가 지니는 중대한 의미와 함께 라그나뢰크로 이어지는 신호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과거에 일독은 단지 겉핥기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미처 간과했던 인상적인 몇 가지 사항을 검토해본다.

 

아스가르드의 신은 아제 신족과 바네 신족의 혼합이다. 뇨르드와 자식인 프레이야, 프레이르는 바네 신족에 속한다. 두 신족은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평화조약을 맺고 하나가 된다. 이는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서로 다른 신을 섬기던 집단 간의 융합 과정을 신화화한 것이니, 우리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도 동일한 의미다.

 

북유럽 신화에서 거인은 신과 대등한 지위와 능력을 지닌다. 토르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스가르드는 진작에 거인들에게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오딘과 지혜 대결을 벌인 바프투르드니르, 토르 일행을 농락한 우트가르드-로키만 보더라도 그들의 지혜 또는 힘은 참으로 막강하였다. 이런 거인들이 신들-엄밀히는 토르에게 쉽사리 제압당하는 것은 당대인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비평은 함의가 매우 깊다.

 

이렇게 강력한 거인들이 왜 비슷한 능력을 가진 신들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는 걸까. 이것은 고대 북유럽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북유럽 신화의 거인들은 북구의 혹독한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다. (P.363)

 

이에 따르면 망치 묠니르를 휘두르는 토르는 단지 싸움꾼 천둥 신이 아니다. 토르가 죽인 거인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거친 자연의 형상화이며, 따라서 토르는 농업의 신이요, 농부의 수호자”(P.79)라는 점이 흥미롭다.

 

토르 못지않게 로키에 대한 해석 역시 관심이 쏠린다. 로키가 아스가르드에 머물게 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책에서는 로키를 불의 신으로 설명한다. 불은 인간에게 매우 유용하지만 잘못될 경우 전부를 불살라버리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다. 아스가르드에 필요하지만 위험한 존재인 로키와 동질성을 지닌다. 저자는 트릭스터의 관점으로 로키를 설명한다. 로키는 아제 신들과 함께 지내지만 그의 본성은 거인이다. 신과 거인은 존재론적으로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볼 때, 로키는 언젠가 신들을 배반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봐야 한다.

 

로키는 불의 신이면서도 불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로키가 종종 들불이라는 뜻의 로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도 짐작이 갈 것이다. 로키가 불의 신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있으면 앞장에서 설명한 로키의 성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P.132)

 

이 책에는 앞선 책들에서 간과하거나 깊숙이 다루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럿 있다. 앞서 소개했던 오딘과 지혜 대결을 벌인 바프투르드니르, 인간의 신분을 만든 헤임달, 신과 결혼하려다 목숨을 잃은 난쟁이 알비스, 브리징아멘을 갖고자 하는 욕망에 굴복하여 난쟁이들과 밤을 보낸 프레이야 이야기는 흥미로운 동시에 완전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신들의 일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예전에 <니벨룽겐의 반지>를 읽었지만 단지 독일 중세의 전설 또는 서사시 정도로만 이해하였다. 이제 북유럽 신화의 시각에서 반지 이야기를 바라보니 전체적 구도와 저작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옴을 이해할 수 있다. 게르만 일부 종족에서 벌어진 갈등과 분쟁, 그리고 몰락 정도가 아니다. 북유럽 신화사에서 라그나뢰크의 전조이다.

 

뵐숭 가문과 니플룽족, 그리고 훈족과 구드룬이 벌이는 혼돈으로 가득한 핏빛 이야기는 이제 곧 라그나뢰크가 일어날 것이라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P.449)

 

신과 거인의 대립, 아스 신들과 로키의 갈등, 그리고 이어지는 발더의 죽음으로 인한 혼란은 어디까지나 아스가르드와 요툰헤임에 국한된다. 세계 전체를 뒤흔들 대사건이 되려면 인간들의 세상, 즉 미드가르드조차도 살육과 배반, 혼돈으로 뒤섞여 세상의 정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화와 전설, 역사가 혼재된 반지 이야기가 라그나뢰크에서 갖는 의미라고 하겠다.

 

라그나뢰크는 절대로 사악하거나 어두운 것이 아니다. 물론 밝은 것도, 선한 것도 아니다. 라그나뢰크에는 그저 창조와 죽음이 하나로 얽혀 있을 뿐이다. (P.497)

 

파괴를 통한 창조, 창조를 위한 파괴. 이것이 라그나뢰크다. 타락한 세상을 태초의 불꽃 거인 수르트르의 불로써 정화함으로써 이제 신과 거인의 시대는 끝났다. 물론 신들의 후예는 잔존하였지만 그들은 더 이상 불멸의 존재로서 권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후 세계는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로 변모할 것이다. 오딘과 프레이야가 대비했지만 막지 못했고, 토르와 로키조차도 벗어나지 못한 운명의 굴레. 독자의 안타까운 심정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바퀴는 거스를 수 없음을 북유럽 신화는 뚜렷하게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