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희곡집
아서 밀러 지음, 김윤철 옮김 / 평민사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아서 밀러의 작품집이다. 유명한 <시련> 외에 <대가>, <추락이후>가 수록되어 있다. 최초에는 <시련>이란 표제로 출간되었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지금과 같은 제목으로 변경하였다. 적절한 변경이다.

 

1. 시련 (The Crucible, 1953)

 

<시련>은 앞서 민음사 판을 읽은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건너뛴다. 솔직히 당분간은 재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인간 이성의 던전을 다시 헤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진실의 적나라함이란. 아서 밀러는 타협하지 않는다.

 

2. 대가 (The Price, 1968)

 

등장인물이 4명에 불과한 단출한 희곡이지만, 내용이 뿜어내는 무게감과 박력은 남다르다. 대공황으로 몰락한 집안과 무능력자가 되어버린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학업과 꿈을 희생한 차남 빅터. 집안을 뛰쳐나가 개인의 성공에 매진한 장남 월터. 전반부를 통해 독자는 빅터의 자기희생에 공감하며 연락도 되지 않는 무정한 월터를 매도한다. 아울러 빅터와 의견 대립을 보이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에스터도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반전은 월터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월터의 저의를 의심하며 가족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빅터. 월터의 반문은 충격적이다.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고. 사업은 실패했지만 비참한 생황을 영위할 정도로 몰락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을 빅터 자신도 알고 있다는 점. 자기희생은 불가피하게 의무가 아니라 빅터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 아버지는 자신을 돌본 빅터보다도 자신을 버리고 의사로서 성공한 월터를 더 높이 평가하였다는 것 등.

 

물질적 부의 추구와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여부는 각자의 선택이다. 자기희생의 삶, 의무의 삶은 경제적 성공을 포기한 비싼 대가였다. 빅터는 자신의 선택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희생과 책임의 두꺼운 갑옷으로 자신을 변호하였다. 에스터의 반응을 통해서 그리고 처분을 기다리는 고가의 살림살이를 통해 독자는 월터의 발언이 진실에 가까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를 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빅터에 대한 동정과 화해에 실패한 형제를 향한 연민을 품는다.

 

(에스터) 당신이 언제까지나 모든 잘못을 형님이나 체제나 그 밖의 다른 것에 전가할 수는 없는 거예요! 당신은 자유로운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 하고 있어요. 그게 나를 미치게 만들어요! (P.214)

 

(월터) 지금 이 순간까지 넌 진실을 대면할 배짱을 갖지 못했던 거야! 너의 실패가 너한테 도덕적인 권위를 주는 줄 착각하지 마! (P.244)

 

3. 추락이후 (After the Fall, 1964)

 

<시련><대가>가 지극히 사실주의적 작품이라면, 이 희곡은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표현주의 요소가 많이 혼합되어 글자로보다 실제 무대에서 상연되는 연극을 봐야 더욱 극 이해에 수월할 것이다.

 

작가가 몸소 겪은 매카시즘의 충격은 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미키의 변절과 루의 자살, 그리고 내적 갈등을 겪는 쿠엔틴. 작가가 <시련>에서 비이성의 광기와 인간의 양심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매카시즘이 한 축을, 그리고 마릴린 몬로와의 결혼 생활의 체험이 다른 축을 형성하여 이원적 구성으로 혼합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해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사건도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으며 인물들의 대사도 모호하거나 생략된 형식이어서 마치 빈 간극은 독자 또는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메꾸라는 작가의 의도인 듯도 하다. 실제 연극이라면 무대 자체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극은 쿠엔틴의 마음과 생각과 추억 속에서 이뤄진다. 의자 하나가 있을 뿐 무대엔 전통적인 의미의 가구가 전혀 없다. 벽도 없고 실제적인 경계도 없다. (P.251)

 

배우들은 마치 우리들 마음속에서처럼 순간에 나타났다가 순간에 사라진다. 이들이 사라질 때 꼭 무대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대화의 내용이 주어진 순간에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어있는지를 분명히 밝혀줄 것이다.

그러므로 무대는 소용돌이치고 훨훨 날아다니는데 이는 마음이 자신의 표면과 심층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P.251)

 

아서 밀러는 매카시즘 광풍을 에덴동산의 추방에 비길만큼 중차대한 사건으로 간주한다. 추방 이후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갖게 되었고 결백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결백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타인에게 결백을 요구하며, 결백하지 않을 경우 단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게다가 요구하는 진실이 개인의 양심과 이성에 반하는 성격일 경우 우리는 이를 용인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 집단 폭력과 위세 앞에서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루의 자살에 쿠엔틴이 기쁨과 해방감을 느끼는 이유 또한 지극히 인간적이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루의 변호를 맡았지만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해야 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루는 쿠엔틴의 내면의 배반 심리를 알아챘던 것이기에 최후의 순간에 그의 이름을 외쳤으리라.

 

(쿠엔틴) , 이게 제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요!......결백한 사람들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 영혼의 어딘가에 그 기쁨의 공범자, 자신에게 짐이 되었던 사람이 죽었을 때 느끼는 그 안도감, 그 기쁨의 공범자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것을 이해하겠습니까? (P.306)

 

쿠엔틴을 둘러싼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결백과 진실은 상존한다. 루이즈는 훌륭한 여인이지만 쿠엔틴은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단. 쿠엔틴 못지않게 지적이고 성취욕이 있는 그녀는 전통적 아내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루이즈의 이미지는 훗날 <모르간 산을 내려가다가>에서 데오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쿠엔틴과 매기의 만남은 우연에서 비롯되었지만 필연적이다. 쿠엔틴은 굳이 순결한 체하지 않는 매기에게서 오히려 참된 진실을 발견한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쿠엔틴에 비하면 매기는 보잘것없는 신세였으나 나중에 매기가 가수로서 성공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매기의 단물을 빨아들이는 업계와 그 안에서 지쳐가는 매기를 바라보면서 이미 영향력을 상실한 쿠엔틴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홀로 남은 쿠엔틴 앞에는 아직 홀가가 남아있다. 홀로코스트의 죄의식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여인. 대학살의 희생자 앞에서는 누구도 결백하지 못함을 깊이 공감하는 홀가. 쿠엔틴은 홀가를 향해 다가간다.

 

이 작품은 복잡한 관계망을 중첩하고 있다. 쿠엔틴의 가족관계, 부부관계, 친구관계, 그리고 사회관계. 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결백과 진실이다. 작가는 사실주의적 기법만으로는 적절한 표현이 어렵다고 판단하였기에 단순하고 상징적인 무대와 함축적인 대사. 그리고 여러 관계를 쉼 없이 들락날락하는 다층적 구조를 통해 진실이 일차원적이 아니며 완전한 결백은 선천적으로 불가능함을 보는 이에게 적시한다.

 

(쿠엔틴) 인간은 자기를 용서해야 돼! 우린 아무도 결백할 수 없어. 더 이상 뭘 원해?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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