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의 아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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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는 사회적 메시지 전달 매체로서 희곡을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장르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것이 그가 소설이 아닌 희곡에 주력한 까닭이리라. 자신이 사회에 대하여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대사의 형식으로 직접적 표현이 가능하므로. 이것이 소설과의 근본적 차별점이다. 그의 대표작인 사회극 작품들이 모두 그러하다.

 

이 희곡에는 몇 가지 가치 선택의 갈등이 잠복하여 있다. 먼저 가장 커다란 축인 켈러의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위의 동기다. 켈러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는 자신의 가족들, 나아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결함 있는 부품을 선적하였다. 전시 상황에서 조금만 삐끗하거나 약점을 노출하면 몰락하고 만다는 강한 불안감이 내적 동기가 되었으리라.

 

(어머니) 가족을 위해서 그 일을 했다는 게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

(켈러) 이유가 된다고!

(어머니) 그 애에겐 가족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어요.

(켈러)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P.129)

 

켈러는 자신의 도덕률에 당당하다. 가족과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면책이라고 주장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난하더라도 가족들에게서만 이해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그가 전후 기간을 꿋꿋하게 버티고 가족과 사업을 지킨 기반이다. 장남에게서, 그리고 마지막에 편지를 통해 차남 래리로부터 자신의 행위가 전면적으로 부인 받게 되자 켈러는 스스로의 앞선 발언처럼 자살을 선택한다. 그로서는 자기 삶의 목표와 존재 이유를 잃었으니 살아있을 이유가 없었을 테지만 이런 면에서 그는 구질구질한 유형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래리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지극한 모성애의 산물이 아님을 극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낸다. 마당에 쓰러진 나무를 래리의 운명과 결부시킨다거나 기적처럼 귀환하는 전시 군인의 기사를 철석같이 믿는 그녀에게서는 사실 수용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그에게서는 수용이 가져올 두려움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다.

 

() 왜 아주머니 마음속은 래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하는 걸까요?

(어머니) 왜냐하면 살아 있어야만 하니까.

() 그렇지만 왜요, 아주머니?

(어머니) 왜냐하면 어떤 일들은 그래야만 하고, 또 어떤 일들은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이야. 태양이 떠올라야만 하듯, 그래야만 하는 거야. (P.47)

 

래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는 그녀의 말에서는 비이성적인 집착과 강박감이 느껴진다. 그녀에게 래리는 다른 가족 구성원보다 월등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크리스와 앤의 결합 계획을 인정하지 않고 앤을 래리와 굳이 묶어놓으려는 그녀의 시도에 안타까움과 어처구니없음을 품으면서도 일말의 동정심을 발견하는 것은 그녀의 간절함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 얘야, 네 동생은 살아 있어. 왜냐하면 그 애가 죽었다면 네 아버지가 죽인 게 되기 때문이야. 이제 날 이해하겠니? 네가 살아 있는 한 그 애도 살아 있어. 하느님께서는 아들이 제 아버지 손에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단다. 이제 알겠지, 안 그래? 알겠지. (P.117)

 

독자는 크리스와 앤에게서도 의문을 품는다. 무엇보다도 크리스는 진정 자신의 아버지가 무죄이며 정당하다고 믿는지를. 조지의 추궁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 아버지의 고백으로 진실을 접하게 되자 법의 심판을 받도록 권유하는 장면 등을 통해 우리는 크리스가 윤리적으로 양심적으로 선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독자 역시 크리스의 입장이라면 아버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샅샅이 파헤치려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 비록 수는 크리스를 가식적 이상주의라고 비난하지만 개인적 감정 이외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짐이 대사가 그의 성품을 잘 알려준다. 크리스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재능이 없다는.

 

(켈러) 물론이지, 그 애는 내 아들이었어. 하지만 래리는 그들 모두가 내 아들이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내 생각에도 그들이 내 아들이었던 것 같군. 그들이 내 아들이었던 것 같아. (P.141)

 

래리의 죽음과, 크리스의 절규가 주창하는 바는 동일하다. 그것은 이 작품의 주제이자 표제이기도 하다. 켈러가 크리스와 래리만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편협한 인식을 확장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사망한 21명의 젊은 조종사들이 모두 자신의 아들이었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비도덕적인 행동 선택은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작가는 켈러의 과거와 현재의 행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켈러와 크리스의 극중 대사처럼 전시 상황에서는 쓰러진 시신들 위에서 부를 걸머쥐는 게 성공한 삶이며 그것에 도덕적 책임을 지니지 않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작가는 크리스의 입을 통해 이를 비판하고 싶었으리라. 가장 가까운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크리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단 한 번만이라도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다는 것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아는 것 말이에요.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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