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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틴 강가에서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3
필리파 피어스 지음, 유기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정감을 자아내는 표제와 달리 이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는 어슴푸레하다. 케이트네 가족의 이런저런 일상이 묘사되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밝고 따뜻한 화기애애한 느낌은 전혀 없다. 가족 간 사이가 특별히 나쁘거나 한 건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서먹하고 데면데면하다거나 할까. 기대 밖 전개에 다소 당혹스러움을 품은 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케이트네 아빠가 부재한 사실이 드러난다. 가족들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아빠의 부재는 그들에게 일상의 화두조차 되지 않는다.
사라진 묘비와 관련된 해프닝을 통해 케이트는 비로소 알게 된다. 아빠가 돌아가신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음을. 과거형의 아빠로 회상에 그치지 않는 현재형의 아빠를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와 할머니는 그에 대해 언급하길 꺼리며 케이트보고 빨리 잊으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케이트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닐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다. 아빠는 죽었으니까. 하지만 달라진 것은 있었다. 케이트는 아빠를 알고 지낼 수 있을 뻔했다. (P.147)
새틴 강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케이트의 과감한 행동으로 새틴 강가는 과거의 망각에서 벗어나 현재와 접점을 가지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랜달 오빠를 통해 새틴 마을의 친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지난날의 새틴이 슬프고 끔찍한 기억을 남긴 장소였다면 이제는 케이트와 아빠가 조우하고 잃어버린 가족과 가정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모든 게 케이트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때도 아니고, 더 이전도 더 나중도 아닌, 왜 하필 지금일까? 예전에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지금인가? 오랜 세월 동안 불가능했던 일이 왜 이제 와서 갑자기... (P.200)
독자는 프레드 트랜터에 대해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작중에서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요약하는데,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프레드가 매우 나약하고 소심한 인물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렇게 보면 외할머니가 케이트의 아빠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자신의 딸과 손주를 나 몰라라 방치해 두고 훌쩍 사라져버린 딸의 남편이자 손주의 아빠로서.
아빠의 귀환. 그것은 케이트와 가족들에게는 기쁨인 동시에 전환점이다. 동시에 외할머니의 권력 상실을 의미한다. 작중에서는 외할머니를 비판적으로, 친할머니를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독자 입장으로는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긴 시간 비밀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인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아빠의 실종이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리라. 남편의 부재에 따른 실망과 좌절이 시댁과의 인연을 끊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남편과 시댁에 대한 언급을 철저하게 회피하였을 것이다. 어찌 외할머니만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작가는 밥 삼촌의 죽음에 연관된 진실을 말미에 슬쩍 보여준다. 진범을 알게 되었다면 응당 실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의외로 인물들의 반응은 담담하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결국 밥 삼촌 자신이 자초한 셈이다. 케이트의 친할머니가 그를 용서하고 포용하려는 심정을 케이트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지만, 독자로서는 바닥에 깊이 깔려있는 정서를 외면하기 어렵다.
아빠가 돌아오자 케이트네 식구들은 달라졌다. 케이트는 걷혀가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산처럼 크나큰 변화가 찾아왔음을 알아차렸다. 세월이 지나면 아빠를 비롯해서 식구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P.294)
케이트네 식구는 이제 온전한 가족을 꾸리게 되었다. 아빠의 부재에 따른 공허감도 사라질 것이며, 랜달과 레니도 롤모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가족의 완성이 맞는 것인지. 케이트네는 호주로 이민을 떠날 예정이다. 친할머니와 시럽은 영국에 남아 있을 것이며, 외할머니도 홀로 남는다. 아빠의 일자리로 인한 불가피한 사유이지만 결과적으로 프레드는 새틴에 자리 잡지 못하는 셈이다. 케이트의 외할머니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연로한 모친을 홀로 남겨두고 친숙한 인간관계를 벗어나 생소하고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는 케이트네. 외관상 이 소설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복잡미묘한 뒷맛을 남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