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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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제재와 전개는 일단 논외로 하자. 등장인물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대한 도덕적 판단도 잠시 유보하자. 오로지 순수하게 소설로서의 읽는 재미에 집중하자. 근래에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은 소설은 없었다. 이 책의 장점은 단연 이러한 재미에 있다.

 

평범하고 무난한 가정과 사람들의 내면이 겉보기와 달리 얼마나 복잡하고 뒤틀려 있는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학생도 모두 그러하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와타나베 군은 어머니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자 기행을 벌인다. 어머니에게 다가갈 용기는 내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고통과 목숨에는 무감각하기 그지없다. 뛰어난 지력과 냉혹한 감정이 결합한 그에게서 소시오패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기우일까. 나오키는 어떠한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유코 선생님은 어머니로서의 감정과 교사로서의 윤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가 벌이는 제3의 선택이 작품 전체의 전개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법적 구제 대신 선택한 사적 복수.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논리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일부 청소년들은 법망을 방패막이 삼기에 피해당사자의 개인감정으로야 충분히 공감 가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의 직업이 교사이기에 그리고 복수 방법이 상식적이지 않기에 놀라움을 안겨준다.

 

6장의 구성인데 각 장마다 다른 인물들을 화자로 선택하여 마나미의 살해와 유코 선생님의 복수를 둘러싼 제반 상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에게 제시한다. 유코 선생님, 미즈키, 나오키의 누나와 어머니, 나오키, 슈야(와타나베 군), 그리고 다시 유코 선생님. 미즈키는 나오키와 슈야와 개인적 관련을 맺으면서 베르테르와 나오키를 잇는 연결점 역할을 맡는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는 그는 슈야의 잔혹성을 입증하는 희생자가 되고 만다. 작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나오키와 슈야의 어머니는 독자에게 모성애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유발한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개입의 결과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자식의 양육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으로 재단한다면 가정과 개인에게 행복은 머나멀게 느껴진다. 한편 어머니를 향한 슈야의 그리움은 차가운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어린 자식을 내팽개치고 그녀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야망의 실현 아니면 나락에서의 탈출?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철저한 이기심은 유코 선생님이 마지막 대목을 실행하게끔 유도한다.

 

1학년 B반 학생들. 슈야와 미즈키를 대상으로 한 학생들의 이지메는 학교 내 왕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성적 판단을 내릴 능력도 없는 처지에 섣부른 감정적 대응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섬뜩하여 오히려 와타나베 군이 순교자로 비치게끔 할 정도다. 게다가 슈야가 한번 발끈하자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일시에 꼬리를 내리는 꼴이라니.

 

등장인물 중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거나 보호소에 끌려가든지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품고 여생을 살아갈 뿐이다. 흥미로우면서도 암울함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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