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디미언
존 릴리 지음, 임성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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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서 제재를 가져온 판타지풍의 동화 스타일의 희곡이다. 원작은 달의 여신이 엔디미언을 사랑하지만, 작가는 엔디미언이 달의 여신을 일편단심 사랑하는 것으로 전개를 달리하였다. 달의 여신 신시아는 그리스신화의 아르테미스, 로마신화의 다이애나와 동일하다.

 

(엔디미언) 내 다정한 신시아가 바로 그렇다네. 신성한 존재이기에 시간이 건드리지도 못하고, 섬세하기에 해를 끼치지도 못하지. [1막 제1]

 

(엔디미언) 나는 온전히 겸허하게 신시아를 흠모하오. 아무도 그분을 감히 사랑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아니 되오. 그분의 사랑은 불멸이고 그분의 미덕은 끝이 없다오. 그러니 내가 달을 쳐다보게 놔두시오. [2막 제1]

 

이 작품에서 신시아는 중의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물리적 존재로서 달 자체인 동시에 달의 여신을 지칭한다. 엔디미언은 유한한 인간을 초월한 천상의 또는 신비적 존재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인간적 의미의 사랑이 아닌 존경과 숭배에 가깝다. 그래서 텔러스가 질투하고 분개하자 시녀 플로스큘라는 오히려 분노하지 말고 경탄하라고 조언한다. 엔디미언을 사랑하는 텔러스는 대지의 정령이다. 마녀 딥서스가 텔러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텔러스의 권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지상의 산물을 생존케 하고 살찌우게 할 수 있는 그녀의 권능과 미모에도 불구하고 엔디미언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텔러스의 사랑은 증오와 원한으로 변한다. 신시아와 텔러스에 대한 엔디미언의 감정과 태도를 통해 독자는 주인공이 지상이 아닌 천상을 지향하며, 현실보다는 이상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사랑 못지않게 유메니디스와 엔디미언의 우정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마법의 샘물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메니디스와 그에게 조언하는 게론을 통해 사랑의 변덕과 대비되는 우정의 영원성을 예찬하고 있기도 하다.

 

엔디미언에 대한 신시아의 입맞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는 사랑으로 진전되지 않는다. 엔디미언의 사랑은 지극히 관념적 속성이라는 점 외에도 양자의 지위상 차이는 극복하기에 너무 크다는 점도 있겠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당대의 작품들에서 신시아는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를 지칭한다. 여왕 앞에서 공연하는 작품이니만치 임의적으로 연인으로 결합시키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엔디미언) 신시아 말고는 누구도 제 눈을 즐겁게 하지 못하고, 신시아 말고는 누구도 제 귀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며, 신시아 말고는 누구도 제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신들이 우리의 지위에 차이를 두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의무요, 충성이요, 존경이어야만 하지요. [5막 제3]

 

한편 작품 내에서 서브플롯을 배역하는 토파즈 경은 지극히 희극적인 인물이다. 아둔하며 우직한 그는 극적 긴장을 완화하며 관객에게 여유와 웃음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 마녀 딥서스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로부터 독자는 사랑의 맹목성과 변덕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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