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즐링
토머스 미들턴 지음, 조성관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기 영국의 희곡은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는 불꽃 같은 정념이 빚어내는 결과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 결과가 비이성적 광기로 치달아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이 전형적인 사례다.

 

약혼자 알론조와 결혼하고 귀족 부인으로서 예정된 행로를 밟아나갔을 베아트리스의 삶은 알세메로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알세메로 또한 그녀에게 호감을 갖지만 그것은 통상적인 귀족의 윤리 내에서다. 반면 그녀의 눈에 도덕이니 윤리는 더 이상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고 알세메로와 결혼하겠다는 목표가 최우선적 행위 기준이 된다.

 

드플로레스는 특이한 인물이다. 젠틀맨 신분의 그가 귀족의 하인으로 전락한데다 외모는 제2막 제1장에서 자신도 인정하듯이 꽤 추하고 혐오스러울 정도다. 베아트리스의 과민한 박대와 구박은 그녀에 대한 드플로레스의 사랑을 집착으로 강화하는 기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육체를 쟁취하고자 하는 욕정을 위해서라면 그 역시 도덕과 윤리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알론조와 다이아판타를 죽이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갖지 않는다.

 

베아트리스의 경솔한 과신은 스스로를 수렁에 빠뜨리게 하며 혐오하던 드플로레스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빼앗기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베아트리스에게 애정을 품게 될 정도다. 그토록 진절머리내던 앞 대목과 상반되는 태도의 변화다. 그들의 타락한 사랑은 최후의 장면에서 벽장 속 교성과 신음으로 절정을 이룬다. 타락한 몸과 죽음을 앞둔 처지에서 수치도 불사하는 그들의 무조건적 정념과 욕정은 경이로울 정도이며 인간 이성의 한계를 절감케 한다.

 

<왈가닥 여자>처럼 이 작품도 독립적인 서브플롯을 지니고 있다. 알리비우스와 이사벨라, 그리고 롤리오가 진행하는 정신병원 이야기다. 젊은 아내 이사벨라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병원에 가두는 알리비우스, 이사벨라를 유혹하기 위해 미치광이로 변장하고 접근하는 남자들. 이들 간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지는 정신병원 내부. 이사벨라와 베아트리스의 차이는 결말에서 드러난다. 다만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인물 희화화와 행동은 오늘날 관점에서는 그다지 공감을 사기 어렵다.

 

봉건사회는 여성의 정조에 지고지순의 가치를 부여한다. 신부는 처녀성, 부인은 정절을 목숨처럼 중시한다. 비단 17세기 영국뿐만 아니라 우리네 과거사 역시 그러하다.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권위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적 도덕률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시각에서 인간이란 이성과 정념의 양면적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적절한 배분으로 삶의 기울기를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베아트리스와 디플로레스처럼 이성과 도덕을 무시하고 자기 파괴적으로 정념과 애욕을 맹렬히 추구했던 그들의 삶은 경이와 공포와 동정이 뒤섞인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알세메로) 여기 아름다운 아가씨가 추악한 창녀로 변해 있어요. 여기 충실한 하인이 죄의 주인인, 오만한 살인을 저질렀죠. [5막 제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