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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쓴 편지 ㅣ 반올림 10
장 프랑수아 샤바스 지음, 정혜용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몇 년 동안 어떤 아이를 구타한다면, 더욱이 그 아이가 바라는 거라고는 평화뿐인데 그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건 강제로 아이의 목구멍 속에 두꺼비 한 마리를 쑤셔 넣는 것과 같답니다. 폭력의 두꺼비. 순수한 증오의 두꺼비. (P.40)
살인죄로 복역 중인 죄수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자원 봉사자. 오렐리앵은 안느 앞으로 편지를 쓴다. 자신의 공책에 꾹꾹 눌러서. 안느가 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편지를 쓸 대상이 필요했고 써야 할 이유도 충분했다. 그뿐이다.
감옥에서 십삼 년을 살아온 청년은 처음엔 안느의 방문을 거부한다. 그의 현재까지의 삶과는 전혀 이질적인 그녀의 존재는 익숙해진 감옥에서의 일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점차 조심스레 안느에게 마음을 여는 화자의 모습이 독자에게 기쁨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주는 건 왜일까.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한 어린 영혼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다.
일상화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속수무책으로 계부에게 당하고만 사는 엄마와 아이. 반복적 폭력에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계부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의 심리는 무엇일까? 사랑이나 두려움 같은 일반적 감정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차라리 길들여진 무기력과 자포자기에 가깝다. 반면 아이는 자라난다. 증오의 두꺼비를 품고서.
짧게 보면, 증오는 우리가 꼿꼿하게 등을 세우는 원동력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요. 증오는 강하다는 환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당신을, 당신 손이 닿은 것들을 전부 파괴합니다. (P.162)
오렐리앵의 인성이 어떠한 지 독자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으면서도 타락하지 않았으며,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잊지 않은 점. 보티첼리를 통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꾸준히 안느를 향한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입증한다.
이 작품의 다른 미덕은 감옥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데 있다. 죄수들끼리의 폭력, 죄수의 간수 폭행, 동료 죄수들의 절절한 사연과 기이한 행동들. 화자 말마따나 감옥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는 영화 속과는 전혀 다른.
오렐리앵은 안느를 자주 보고 싶어 한다. 그의 나날에서 안느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만 간다. 독자는 안느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전적으로 오렐리앵의 눈과 손에 의해서만 안느를 대할 수 있기에. 안느의 사소하고 우연한 언행도 그에게는 커다란 의미로 부풀어져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안느의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화자의 만기 출소를 앞두고 둘의 만남은 끝을 맺는다. 안느의 방문 종료 통보에 충격을 받지만 이내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화자를 통해 독자 또한 화자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음을 짐작한다. 오렐리앵이 바깥세상에 부디 잘 적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