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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와 검의 노래 ㅣ 레인보우 북클럽 20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지음, 이병렬 옮김, 표정수 그림 / 을파소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서트클리프의 작품을 내처 읽는다. 솔직히 이 작품이 아동도서로 분류될 성격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비록 12세 이상 권장 연령이지만. 서사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다만 11세기 잉글랜드의 컴벌랜드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역사적, 지역적 친연성이 우리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데서 생소함과 이질감을 안겨준다. 생경하기 그지없는 호수 지역의 인명과 지명은 성인인 내게도 적응하기 어려운 데 과연 어린 독자에게 쉽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작품의 주된 축은 호수 지역을 둘러싼 스칸디나비아인들과 노르만족의 대립에 있다. 원주민 바이킹족과 신흥 노르만족의 영토 점령 전투가 작품 내내 처절하게 전개된다. 후대의 시각에는 양자가 동일한 바이킹족으로 분류되지만 여기서 그네들에게 동족 의식은 찾아볼 길 없다. 동족이라고 하기엔 이미 수백 년 전에 갈래가 흩어져 나갔기에 남과 다를 바 없으리라. 더구나 동족 간에도 무수한 살상이 벌어지는 마당에. 혈연적, 문화적 유대에 호소하기에는 목전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중요함을 우리는 역사적 체험으로 뼈저리게 학습하였다.
주인공 비요른은 천부적으로 하프 연주에 소질을 보인다. 색슨족에 속하는 그는 시대가 허락했다면 음유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당시 호수 지역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전사를 필요로 하였다. 압도적 다수의 적과 맞서 물러남이 없는 강력한 사수대. 노르만족에 평화 협상단으로 간 아리 크누드손 일행은 참혹한 시신으로 돌아왔고, 어린 비요른은 두려움에 떤다. 스스로 그런 고문에 의연함을 유지하며 당당한 죽음을 감내할 전사로서의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다. 이것이 에를란드가 그를 비겁하다고 비웃고 얕잡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한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무용지물이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세상을 압도할 수 있다고 떠벌린다. 그들의 진면목은 현실적 위기와 고통이 눈앞에 닥쳤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며 행여 털끝 하나 다칠까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나름대로의 이겼다는 표정이 어렴풋이 어렸다.
“입을 열지 않을 거야.” (P.270)
비요른도 자신을 믿지 못하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눈앞에 닥치기까지는. 고통의 순간, 그가 이를 악물고 버텨냈던 것은 자신의 한마디로 가족과 친구, 동족이 몰살당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바람이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였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상처를 남긴다. 인명과 재산 같은 물질적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외상조차도 승자를 비껴가지 않는다. 비요른은 ‘새로운 시작의 노래’를 짓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전과 똑같지는 않을 거야.” (P.331)
“우리가 알던 유일한 삶은 끝나게 될 거야.” (P.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