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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타 ㅣ 아시아클래식 4
R. K. 나라얀 엮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5월
평점 :
오래전 민족사 출간본으로 <마하바라타>의 축약본을 읽은 적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책 역시 나라얀이 엮은 축약본이며, 분량은 더 적다. 보다 대중 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전공자에 의한 완역본이 순차적으로 출간 중에 있는데 완결이 가능할지 현재 추세로는 심히 우려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보다 여덟 배나 길다고 하는 이 작품을 삼백 면이 안 되게 줄여놓았다. 응당 원작의 굽이마다 펼쳐있는 신비하고 기묘하며 심오하면서 때로는 정신을 놓을 정도로 지루하기조차 한 방대한 전모는 재현 불가능하다. 독자는 고속도로를 타고 종결부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기에 급급하다. 친족인 판다바들과 카우라바들 간 사생결단의 전쟁은 표피적 흥미만을 제공할 뿐이니 결국 주마간산에 불과한 셈이다. 인도인들이 자부심을 품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단순한 서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반목하던 양 집단의 불화는 두르요다나와 유디스티라 간 주사위 노름으로 촉발된다. 두르요다나를 대신한 사쿠니가 서투르기 짝이 없는 유디스티라를 상대하는 장면은 도박에 중독되어 이성이 마비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애초부터 주사위 놀이를 거절하면 될 테지만, 초대 거절은 크샤트리야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하니 판다바 형제들이 나라를 잃고 13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며 그 후 크샤트리야 전체가 파멸될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다.
작중 인물 모두가 그러하다. 작품 내내 답답하기 그지없는 드리타라슈트라 왕의 우유부단도 결국은 숙명을 거역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냄에 불과하다. 반신반인에 가까운 비슈마, 현명한 비두라, 양 집단의 무예 스승인 드로나 모두가 카우라바들이 그릇되고 판다바들이 정의로움을 알지만 의무와 계율을 벗어날 수 없어 판다바들과 대적하여 죽는 운명을 감내한다. 무엇보다 카르나의 처지가 딱하다. 판다바들과는 형제간임을 알지 못한 채 대립하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예정된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다. 요컨대 카우라바들과 판다바들의 공존 불가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숙명으로 두르요다나와 유디스티라는 이를 이해할 수밖에는 없는 주연배우라고 하겠다. 유디스티라의 회한은 이를 웅변한다.
<마하바라타>에는 인도의 종교, 철학, 문학, 정치, 윤리, 역사 등 모든 것이 백과사전처럼 들어 있다고 한다. 축약본의 한계는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데 있다. 판다바 형제들의 특이한 혼인, 친족과의 알력과 분쟁,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 가까운 이들과 생사를 건 전투를 벌여야 하는 고뇌 등 작중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상황 하나하나가 모두 선택을 요구하며 무엇이 옳은 길인지 고민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바가바드 기타>도 아르주나와 크리슈나 간의 대화다. 죽어가는 비슈마가 유디스티라에게 들려주는 왕의 책무에 대한 기나긴 강론이 <샨티 파르바> 즉, ‘평화의 책’이다.
작품의 결말은 매우 종교적이다. 시간이 흘러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모두 세상을 떠나자 이승에 흥미를 잃은 판다바 형제들이 고행을 떠나 하나씩 스러지고 마지막 남은 유디스티라가 인간의 육신을 벗고 신이 되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찾는다는.